지난 15일 대법원이 불법 파업으로 피해를 본 기업이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노조원 각자의 가담 정도에 따라 책임제한을 달리해야 한다고 선고한 판결을 두고 여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야당과 노조가 추진중인 ‘노란봉투법’의 핵심 조항과 유사한 취지의 이 판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대법원이 나흘 만인 19일 이례적으로 ‘사법독립권 침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어 추가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판결의 법리를 적용한 것”이라며 “기업에게 새로운 입증책임을 지우거나 입증책임이 가중되는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 비판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꼼수 판결” “무법 천지”등의 강도높은 표현까지 썼습니다. 경제단체가 대법원의 특정 판결을 두고 이렇게까지 나서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사법 독립’까지 거론한 대법원, “기존 법리 따른 것…입증 책임 변화 없다”
먼저 대법원이 ‘사법 독립’ 까지 거론하며 낸 입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이란 제목으로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하여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판결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채 특정 범관에 대해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잘못된 주장은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사법권의 독립이나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습니다.
대법원은 별도로 낸 보도자료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자들 간 책임제한 비율만을 개별화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A,B,C가 가담한 불법파업으로 20억원의 손해를 입었고, 법원이 책임을 50% 제한해 10억원 배상판결이 났다면 기업은 A,B,C중 누구에게라도 10억원을 청구할 수 있고 이들이 공동으로 10억원을 물어내야 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 누구에게라도 전액을 물어낼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부진정연대책임’의 기본 법리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 따르면 피고들이 개별적으로 부담하는 책임 비율이 달라집니다. 일률적으로 50%를 책임제한하는 게 아니라 노조에서의 위치, 파업 가담 정도에 따라 A는 50%, B는 40%, C는 30%와 같이 개별화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이 배상받는 금액 10억원 중 A는 10억원을, B는 A와 공동으로 10억원 중 8억원을, C는 A,B와 공동하여 10억원 중 6억원을 물어내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기업이 받는 돈은 10억원으로 같기 때문에 ‘배상액 축소’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대법원 입장입니다. 또한 이처럼 책임 제한 비율을 정하는 것은 법원의 재량이고 기업에 입증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 판결로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봉쇄, 제한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아울러 ‘부진정연대책임’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판례 변경도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왜 노동분야만 특별취급?” 반발하는 재계
재계가 판결 이후에도 계속 반발하는 이면에는 “대법원이 노동분야만 특별취급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진정연대책임’은 가해자가 여럿 있을 경우 피해자가 이들 중 누구에게라도 전액을 물어낼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법리입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것입니다. 교통사고, 공동폭행 등 불법행위 분야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일일히 책임비율에 따라 책임을 묻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불법의 공동’이 인정되면 가해자 어느 한 사람에게 손해액 전액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가해자 중 한 사람이 전액을 물어 냈다면 자기 잘못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가해자들에게 구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조합원 개인별로 책임 제한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책임 제한’은 불법행위가 성립된 후 개별적 사정을 고려해 책임을 깎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재계 쪽에서는 “이중, 삼중의 제한”이라는 불만이 나옵니다. 현행법에 따르더라도 합법파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는데 그나마 불법성이 인정된 파업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조합원들의 책임을 개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 왜 다른 공동불법행위는 그대로 두고 불법파업 분야에서만 이런 법리를 적용하느냐는 겁니다.
책임을 개별적으로 제한하는데 고려하는 요소 또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발생에 대한 기여와 함께 ‘현실적인 임금 수준’을 언급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떻게 노조원의 임금 수준이 책임제한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나옵니다. 적게 버는 사람은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적은 돈을 물어내는게 맞느냐는 겁니다.
대법원은 ‘입증책임 문제가 아니다’고 했지만 책임제한 문제에서도 입증의 부담이 더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만일 기업이 ‘주범’으로 지목한 근로자가 “나는 망만 봤다”고 했을 경우 기업은 그가 쇠파이프를 들고 기계를 부순 사실을 입증해야 부당한 책임제한을 막을 수 있다”며 “가만히 있으면 법원이 정해주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고 합니다.
◇사법신뢰 훼손 책임, 과연 어디에 있나
불법 파업의 경우 헌밥상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불법행위와는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현직 판사는 “2심에서도 책임제한을50%나 한 것도 그런 특성을 고려한 것”이라며 “그동안 대법원 판결의 편향성 등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불법파업 분야의 책임제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결을 보도하는 입장에서 느꼈던 적잖은 혼란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원래 ‘노란봉투법 유사사건’으로 주목받았던 사건은 2013년 울산 생산라인 일부를 63분간 점거한 비정규직 근로자 5명을 상대로 현대차가 낸 손해배상 소송입니다. 작년 11월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15일 판결 선고를 앞두고 이 사건은 재차 소부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판결 선고 전 고지하는 사건의 쟁점에서 노란봉투법 쟁점인 책임제한의 개별화가 빠졌고, 원래부터 소부에 있었던 다른 사건, 즉 2010년 울산 생산라인 일부를 278시간 동안 점거한 근로자 4명을 상대로 한 이번 사건에서 해당 쟁점이 고지된 후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법조를 출입했지만 대법 소부 판결 하나를 선고하면서 이정도로 혼란스러웠던 기억은 없습니다. 대법원은 ‘판례를 바꾼 것이 아니어서 소부에서 선고했다’고 하지만 형식적인 판례 변경 여부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노동계와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할까요. ‘전원합의체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에 따르더라도 ‘중대한 공공의 이해관계와 관련되거나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사건’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 등에서는 전원합의 심리 기일을 열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국회 입법이 진행중인 데다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공개변론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숙고 없이 소부판결로 선고하고, 비판이 잇따르자 입장문과 추가 보도자료까지 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한 현직 판사는 “대법관들은 최종적으로 법적 판단을 하는 우리사회 정의(Justice)의 표상”이라며 “그걸 감당할 능력도 배포도 느껴지지 않는 입장표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법행정의 무능의 반영”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대법원이 입장문과 추가 보도자료를 내기에 앞서, 나아가 이 판결을 선고하기에 앞서 한번쯤 짚어봤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