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인 이래진씨(왼쪽)와 김기윤 변호사가 지난 5월 25일 청와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서류를 대통령기록관에 전달하기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당해 숨진 고(故)이대준씨 유족이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 소송을 냈습니다.

사실 유족은 이미 국가안보실장과 해양경찰청장을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에 대한 소송을 내 작년 11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정보공개 소송은 ‘가집행’이 없기 때문에 판결이 확정돼야 공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국가안보실 등이 항소해 2심이 진행되면서 확정이 미뤄졌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대한 변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대통령지정기록물’입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민경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물 등은 대통령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써 최장 15년(사생활 관련 기록물을 30년)까지 비공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도중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서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이 이뤄졌습니다.

유족 측은 대통령기록관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기록관 측은 지난달 “일반기록물에는 해당 정보가 존재하지 않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경우 법에 따라 열람이 금지되므로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권 교체 이후 국가안보실 등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판결은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확정된 승소판결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공개대상 정보가 국가안보실 보유 정보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그 ‘신분’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할 경우 패소는 예정된 결론입니다. 정보공개법은 9조에서 비공개 대상 정보를 정하고 있는데, 1호가 ‘다른 법률에 의해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한 정보’입니다. 즉 대통령기록관이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른 대통령지정기록물로서 비공개대상’이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 소송은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하라”는 것이 아닌 “대통령기록관의 ‘부존재’통지를 취소하라”는 다소 애매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소송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행위에 대한 헌법소원과도 연계돼 있습니다. 유족 측은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지정행위는 확정판결마저 무력화하는 위헌적 공권력 행사라며 헌법소원을 낸 상태입니다.

같은 문제에 부딪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과 관련한 소송입니다.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후 특활비 지출 내역 및 김 여사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의전비용과 관련한 정부의 예산편성 및 지출실적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지난 2월 1심에서 일부 개인정보 등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이 항소하면서 확정이 미뤄졌고 그 사이 정권이 바뀌면서 대통령지정기록물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2심이 진행중인데, 승소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역시 ‘대통령지정기록물’ 의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납세자연맹도 대통령지정기록물 근거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상태입니다.

현행법상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은 국회 의석수 3분의 2이상이 동의하거나 수사기관이 관할 고등법원장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국회 일반 의결정족수(재적 과반수 출석 및 출석 과반수 찬성)나 일선 법원 영장전담 판사(혹은 부장판사)의 영장발부에 비해 한층 더 가중된 요건입니다. 현재까지 ‘고등법원장 영장’으로 공개된 사례는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 2013년 남북정상회의록 사건이 전부입니다. 이처럼 특정 기록물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봉인’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 입법 취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원이 판결로써 공개를 명령한 정보에 대해 당시 청와대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도피’ 하면서 법원 판결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민감한 정보를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만들어 버리면 법원 판결은 물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정보공개 제도 자체가 형해화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법문과,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입법취지가 모두 무색해집니다. 이처럼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면이자, 행정권력이 사법권을 무력화하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위헌성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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