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경북 구미 한 빌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보람양 사건 관련 보람양 친모 석모(48)씨에게 내려졌던 징역 8년형이 16일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석씨의 납치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부족하니 다시 재판하라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날 미성년자 약취(납치)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석씨는 작년 2월 딸 김씨가 머물던 빌라에서 보람양의 시신을 발견한 뒤 이를 은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와 2018년 3월쯤 구미의 한 산부인과에서 자신의 딸 김씨가 낳은 딸과 보람양을 바꿔치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석씨의 딸 김씨는 DNA상 실제로는 여동생인 보람양을 친딸인 줄 알고 2018년부터 2년 5개월간 키웠다. 하지만 2020년 8월 전 남편과 이혼 후 만난 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 출산이 임박하자 보람양을 빌라에 방치한 뒤 사망하게 했다.
보람양 시신 발견 직후 석씨는 경찰에 자신을 외할머니로 소개했지만, DNA 검사 결과 보람양의 친모로 나타났다. 석씨가 보람양의 시신을 은닉하려다 미수에 그친 점도 이때 밝혀졌다. 석씨는 1·2심 재판 과정에서 “사체 은닉 혐의는 인정하지만 보람이를 낳은 적은 없고 바꿔치기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석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찰청 등에서 수차례 실시한 DNA 검사에서 한결같이 ‘석씨와 보람양은 모녀 관계’라는 결과가 나온 점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아기 바꿔치기’ 혐의 역시 범행 추정 장소인 산부인과 구조상 외부인이 드나들기 쉬웠던 점, 바꿔치기 추정 기간에 아기의 발목에 있던 인식표가 훼손된 점, 몸무게에 급격한 차이가 나타난 점 등을 근거로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석씨와 보람양이 모녀 관계인 것은 맞다고 판단했지만, 석씨가 보람양을 납치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유전자 감정 결과가 증명하는 것은 이 사건 여아(사망한 보람양)가 피고인의 친자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불과하고, 피고인이 피해자(납치된 여아)를 이 사건 여아와 바꾸는 방법으로 약취했다는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석씨가 여아를 납치했다는 목격자의 진술이나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유전자 감정 결과만으로 쟁점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석씨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료, 수단과 방법, 피해자 상태 등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유전자 검사 결과가 직접 증명하지 않는 별도의 사실 관계인 납치 혐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형사증거법의 일반적인 법리에 따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에 대해 추가적인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유전자 감정 결과만으로 쟁점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피고인의 행위가 약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의 상태 등에 관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