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A씨는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과거 자기 형사사건을 대리했던 B 변호사를 찾아가 “건달 동생들을 데려와 칼질을 해주겠다. 죽기 싫으면 돈으로 메우라”라고 협박해 수임료 만큼인 2000만원을 뜯어냈다. 공갈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2심 재판부는 지난 9일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1심에선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는데, A씨가 B 변호사에게 2000만원을 되돌려주고 합의해 2심에선 4개월이 줄었다.
이 판결이 있던 날, 대구에서는 7명의 사망자를 낸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이 터졌다. 소송에서 패소한 사람이 상대 측 변호사에 품은 앙심에서 비롯된 이 사건을 두고 변호사 업계에서는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만큼 변호사를 상대로 한 위협·폭력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C 변호사는 이달 초 국선변호 사건을 상담하다가 의뢰인으로부터 “쳐다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 내가 칼 좀 쑤시던 놈”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의뢰인은 수차례 편의점 등에서 난동을 부려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였다.
조정희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은 “2018년쯤 재건축 관련 사건에서 조합을 대리하고 있었는데 아파트 철거업체를 운영하던 소송 상대방으로부터 ‘사무실을 찾아가서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D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 중에는 의뢰인의 협박에 자녀를 전학시키거나, 칼을 품고 찾아와 협박당한 경우도 있었다”며 “모욕적인 문구로 플래카드를 걸거나 욕설을 듣는 것은 별것 아닌 축에 든다”고 했다. 최근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의뢰인이 난동을 부리며 변호사를 경찰에 신고했다가 의뢰인 본인이 연행돼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본 변호사들은 오히려 쉬쉬하는 분위기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회원들이 피해 사례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며 “그래서 사례 취합과 실태 파악도 어렵다”고 했다. 당사자들이 ‘모방 범죄’를 우려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경쟁적으로 사건을 수임 해야 하는 변호사 입장에서 무섭다고 의뢰인들을 가려 만나기도 어렵고, 험한 일 당했다는 게 외부로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지 않으냐”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대한변협이 13일 ‘법률사무소 방화테러 사건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변호사 협박·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으로 변호사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변호사들이 어렵게 의뢰인을 고소해도 처벌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법률 서비스의 질(質)에 비해 수임료가 높다는 지적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