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언론·미디어단체 기자회견에서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가 차별금지법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을 강행 중인 더불어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신중을 기하고 있어 모순된 입장이라는 법조계의 지적이 나온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나이·학력·종교·성적 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이다. 작년 6월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 청원 1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회부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이상민·박주민·권인숙 의원, 정의당 정혜영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 제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대선 과정에서는 박완주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차별금지법 국회 논의를 시작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또 최근 민주노총과 성소수자·장애인 활동가 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연일 집회를 열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공청회를 여는 등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낼 뿐 안건 심사를 요청하지는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단 한 번의 공청회조차 열지 않고 연일 법사위 소위를 열어 무리하게 검수완박 통과를 강행 중인 민주당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법조인은 “검수완박이나 차별금지법은 국민의 인권을 다루는 민감한 내용의 법안으로, 당연히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입법돼야 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을 가진다”며 “자신들과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검수완박 법안만 무리하게 졸속 추진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23일 시민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의지만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도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추진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모두 알게 됐다”라며 “결국 지난 15년 동안 나중의 나중으로 밀려온 차별금지법 제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더불어민주당의 의지 부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2주 동안 ‘검수완박’과 차별금지법이 다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추진함에 따라, 차별금지법 등 다른 이슈에 있어서도 민주당이 심한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우기면 입법 추진이 얼마든 가능하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된 게 아닌가”라며 “민주당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는 자충수를 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분석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힘차게 시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