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을 비롯해 자신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 판사들을 주로 중용했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법원행정처 간부를 보내 인사 배경을 해명하는 상황에까지 왔다.

법원행정처 간부는 이날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관대표회의에 출석하거나 화상으로 참여해 “인사의 일반 원칙에 반(反)하지 않는 인사”라고 주장했지만, 일선 판사들은 수긍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코드 인사’를 꼽자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는 법관 대표 123명 가운데 105명이 직접 또는 화상으로 참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관대표회의가 문제 제기한 ‘코드 인사’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법원장 2년 재임’이라는 인사 기준과 관행을 깬 부분이다. 법원장을 각각 3년씩 지낸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박종택 전 수원가정법원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 전 원장은 우리법연구회, 박 전 원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며 김 대법원장은 두 모임의 회장을 모두 지냈다.

법관대표회의는 김 대법원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판사들이 지방 지원장, 가정법원장 근무 후 곧바로 선호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옮긴 것에 대한 해명도 요구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을 지낸 이성복 부장판사, 수원가정법원장을 지낸 박종택 부장판사가 그 경우였는데 이들은 모두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법관대표회의는 또 법원장 후보추천제 전면 도입을 공언한 김 대법원장이 올해 초 정효채 인천지법원장을 추천 없이 바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 담당 간부들은 “경향 교류 원칙에 따라 인사를 실시했고 기관장인지 여부에 따라 다른 인사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며 “지적된 인사는 당해 연도 인사의 수급 사정 등을 반영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인천지법원장 인사에 대해선 “강영수 전 법원장이 인사 직전 사임해 추천제를 실시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이 정도 인사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나”, “행정처가 이런 인사를 전혀 고민 없이 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법관대표 중 한 명이 추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인사에 대한 문제라 답변하기 어렵다. 앞으로 이런 의견도 귀 기울여 듣겠다”며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김명수 코드 인사’ 논란이 이날로 일단락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전망이 법원 내부에서 제기됐다. 이날 법관대표회의는 의견 채택이나 입장 표명을 위한 표결은 나중으로 미뤘는데, 아직 일선 법원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이번 ‘코드 인사’ 문제 제기를 주도했던 법관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법원행정처 해명은 예상된 답변으로, 제대로 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작년 4월 중도 성향의 함석천 부장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법관대표회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좀 달라졌다고 한다.

전국법관회의 -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총 123명의 법관 중 105명이 참석했다. 코로나 확산 우려로 화상회의로 참석한 사람이 많았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은 현장에 직접 나오거나 화상회의로 참석한 법원행정처 인사 담당 간부들에게 김명수 대법원장의‘코드 인사’논란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일선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특정 모임 출신으로 ‘알박기’ 인사를 한 사례는 법관대표회의가 지적한 것 말고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행정처 요직 상당수를 국제인권법 출신이 맡은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날 법관대표회의에 출석한 법원행정처 신재환 기획총괄심의관, 안희길 인사총괄심의관도 인권법 출신이라고 한다.

‘조국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담당했던 윤종섭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 근무’ 관행을 깨고 각각 4년, 6년간 근무한 것도 논란이 됐었다.

법원 안팎에서는 “법관대표들이 ‘인사 불공정’ 문제를 공론화시키면서 대법원장 권위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인사 문제 외에도 취임 이후 공관 리모델링 과정에서의 예산 유용 의혹, 며느리가 소속된 한진그룹 법무팀의 대법원장 공관 만찬으로 법원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2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법관 탄핵 소추를 추진한다는 이유로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으면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국회 답변도 냈다가 곧바로 거짓말로 드러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