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채용 시험 지원자 수가 최근 4년간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판사 채용 땐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법관의 아들과 부부 검사가 합격하기도 했다. 판사가 되면 간섭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법조계의 ‘판사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20일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를 뽑는 판사 채용 시험 합격자 157명 명단을 발표했다. 합격자 중엔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전 실장의 아들인 노해준씨가 포함돼 있다. 노씨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민일영 전 대법관 아들인 민경준 변호사, 부부인 강모·조모 검사도 올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부 검사가 동시에 판사로 전직(轉職)한 건 처음이다. 작년엔 당시 검사로 일하던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 김서현씨와 ‘드루킹 특검’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수사한 이신애씨도 판사로 이직했다.
법조계의 판사 쏠림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대법원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판사 시험 지원자 수는 2017년 168명, 작년 383명, 올해는 515명이었다. 4년 만에 지원자 수가 3배로 급증한 것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국내 5대 로펌 변호사들도 대거 판사로 이직했다. 올해 김앤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20명이 판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다음은 세종(12명)·태평양(5명)·율촌(5명)·화우(5명)·광장(3명) 변호사 순이었다. 올해 판사 시험 합격자(157명) 중 31%가 5대 로펌 변호사였던 것이다. 검사 지원자 수도 2017년 7명이었다가 올해 26명으로 늘었다.
판사 시험 지원자들은 지원 이유로 ‘자율성’을 많이 들었다. 한 6년 차 변호사는 “로펌에 있으면 위의 지시에 따라 밤 12시를 넘겨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라며 “판사는 내 마음대로 재판 결론·일정을 정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직후 시작된 ‘사법 적폐’ 수사에서 100명이 넘는 판사가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요즘 법원에선 사실상 지시나 감독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는 판사가 많다.
또 올해 2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폐지되면서 법원엔 개인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려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판사 쏠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중견 판사는 “승진도 없는데 굳이 몸 상해가며 일할 이유가 있느냐는 기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올 초 저녁 시간에 후배 판사에게 업무차 전화를 했다가 ‘자제해 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실수를 할까 봐 아예 그 판사의 전화번호를 지웠다”고 했다. 수도권의 다른 지방법원에선 배석 판사가 금요일에 판결문 초고를 재판장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뒤 칼퇴근을 해, 재판장이 혼자 판결문을 다듬기도 했다. 부장판사를 지낸 한 변호사는 “판사를 거쳐 다시 변호사로 나오면 몸값이 뛴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법원의 재판 기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 1분기에 선고된 형사 합의부 1심 사건의 경우 평균 처리 기간이 215.3일로, 4년 전인 2017년(162.5일)보다 52.8일이 늘었다. 같은 기간 민사 합의부 1심 사건도 처리 기간이 43.6일 늘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받는 사람에게 재판 기간이 길어진다는 건 ‘고통의 기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