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시 약 1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청와대와 당시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는 내용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공소장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산업부와 한수원은 조기 폐쇄를 하려면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는데, 청와대는 ‘원전 조기 폐쇄는 국정 과제’라며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월성 1호기/조선일보 DB

2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하자 원전 운용사인 한수원에서는 ‘월성 1호기 즉시 폐쇄’ 등 탈원전 대선 공약을 검토했다. 한수원은 이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시 약 1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한전의 대체 전력 비용이 약 6500억원 증가하는 등 가동 중단으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社益)이 중대하고, 입법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독일 사례 등을 참고했을 때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가동 중단 조치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냈다. 산업부는 한수원의 결론을 바탕으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세 차례에 걸쳐 업무 보고를 했다. 이와 별도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에게도 ‘탈원전 정책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정책 방향을 보고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 보고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고 산업부에 탈원전 정책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입장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산업부는 기존 입장을 바꿔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한수원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권 출범 초기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총 네 차례에 걸쳐 업무 보고를 했다. 2017년 5월 24일 1차 보고와 그해 6월 2일 2차 보고에서 산업부는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시 약 1조8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한수원의 결론을 언급하며 ‘한수원의 입장 및 독일 사례 등을 참고하여 월성 1호기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적법 절차를 거쳐 계속 운전 운영 허가를 받아 가동 중이므로 이를 폐쇄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월성 1호기 즉시 폐쇄를 위해서는 즉시 폐쇄와 보상 등을 명시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 1호기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폐쇄하는 방안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대통령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산업부는 이와 별도로 2017년 5월 30일에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에게 ‘월성 1호기 등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인프라를 배제하는 탈원전 정책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정책 방향을 보고했다.

하지만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통령 공약을 과감하게 이행해 달라’고 요구하자, 산업부는 2017년 6월 10일 3차 업무 보고에서 특별법 제정을 통하지 않은 월성 1호기 폐쇄 방안을 보고했다. 기존에 고수하던 ‘원전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런 내용은 백 전 장관의 공소장에도 담겼다.

2017년 7월 6일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또 산업부에 ‘탈원전 정책은 60년 이상 하는 것이고,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력 수급이나 전기 요금 인상 등의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조속히 수립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 등의 공소장에서 “(장 실장의 지시 이후) 탈원전 정책을 반영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이 산업부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모든 일은 청와대 주도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017년 7월 19일 신규 원전 백지화, 원전 설계 수명 연장 금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내용으로 하는 방안을 산업부 국정 과제로 확정했다. 대통령 비서실은 청와대에 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을 팀장, 기후환경비서관, 산업정책비서관 등 총 7명을 팀원으로 하는 ‘에너지전환 TF’를 만들어 탈원전 정책 이행을 시작했다.

한편 백 전 장관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반대했던 이관섭 전 한수원 사장에 대한 교체 검토를 산업부에 지시했다는 내용도 백 전 장관 등의 공소장에 적시됐다. 백 전 장관은 이 전 사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탈원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 따르면 백 전 장관은 2017년 8월 2일 산업부 회의에서 “한수원 이관섭 사장도 임기가 많이 남았지만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이 전 사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을 경우 행동 방침이 담긴 1~3안 등 산업부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 전 사장은 임기를 1년 10개월이나 남겨둔 2018년 1월 돌연 사직했다.

또 백 전 장관이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이 전 사장뿐만 아니라 탈원전에 반대하는 인사 등을 분류해 퇴출시키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사실상 ‘탈원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