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2017년 5월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주지역 노동단체 출신 4명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을 수사하는 국정원과 검·경이 이들이 한국 체제 전복을 위해 만든 북한 추종 지하당 ‘자주통일충북동지회’에서 각자 ‘여당 인맥 이용’ ‘민노총 전직 간부 포섭’ ‘지역 청년 의식화’ ‘보육 교사 의식화’ ‘충북 간호사 조직화’ 등 다양한 임무를 부여받아 활동한 것으로 파악한 사실이 7일 확인됐다. 미군 스텔스기 F-35A 도입 반대 활동 이외에도 국내 여러 분야에 침투해 북한 지령에 따라 활동했다는 것이다.

◇보육교사·간호사·대기업 노조 등 장악 임무… “여당 인맥 이용하라”

본지가 확보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고문인 A(구속)씨는 지하당 조직원들의 사상 교육을 책임지고, 충북지역에 있는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화 작업을 맡았다. 특히 A씨는 민노총 전직 간부 등과 연계해 지역 노동 운동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도대로 전개하는 임무도 맡았다.

일당 4명 중 유일하게 구속을 면한 손모씨는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위원장을 맡았다. 민노총 조직국장 출신인 그는 국내 대기업 노조를 장악하고, 충북 지역 청년들의 의식화 작업을 담당했다고 적혔다. 손씨는 2016년 4·13 총선 당시 대전에서 무소속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민노총 여성연맹 사무처장 출신인 B(구속)씨는 손씨가 부재할 시 이 조직을 책임지는 부위원장을 맡았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B씨는 충북 지역 내 보육 교사들에 대한 의식화 및 포섭 임무를 담당했다. 2013년 11월 안철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실행위원을 지내고, 2014년 지방의 한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권 진입을 시도했던 그에게는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충북도의회 여당 인물들 인맥관계 이용’이라는 임무도 주어졌다.

A씨의 아내로 간호사인 C(구속)씨는 북한과의 연락 담당책으로, 충북 지역 간호사에 대한 조직화 및 포섭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 일당은 이러한 각자의 임무를 적은 문건을 2017년 8월 작성해 북한 측에게 보고했고, 2018년 2월 북한으로부터 해당 임무를 수행하라는 지령문도 수령한 것으로 국정원 등은 파악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수님과 함께” 혈서로 충성 맹세

국정원 등이 확보한 자료에는 이들이 자주통일충북동지회를 결성하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충성을 다짐하려 쓴 혈서도 포함됐다. A씨는 ‘영명한 우리 원수님!! 만수무강 하시라!’, B씨는 ‘위대한 원수님의 영도 충북 결사옹위 결사관철’, C씨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수님과 함께’, 손씨는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라는 혈서를 썼다.

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혈서들은 A씨가 2017년 5월2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문화교류국(225국의 후신) 공작원 조모씨를 만나 지하당을 결성하라는 지령을 수령하고, 같은해 8월13일 청주 모처에서 조직을 결성한 직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노동당 산하 통일전선부 소속 문화교류국은 한국 시민·노동 단체 인사들을 포섭해 남한 내 지하당을 만들고 이를 통한 국가 기밀 수집 및 북한 체제 선전 활동을 목표로 한 조직이다.

이들이 결성한 자주통일충북동지회의 강령 역시 북한 노동당 규약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강령 제1조에서 자신들의 조직을 ‘한국사회의 민족민주주의적 변혁운동의 선봉에서 투쟁해 나아가는 충북지역 전위투사들의 비밀조직’이라고 규정했다. 이외 이들은 강령에 ‘민중제일주의를 이념으로 삼는다’ ‘당의 영도체계를 확고히 세운다’ ‘수구적인 사상정신적 요소를 배격한다’ ‘숭고한 민중관을 지닌다’ 등 북한 노동당 규약과 같은 용어를 반복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령받아 정당·시민단체 포섭 대상 정보 수집”… 최대 사형 간첩죄 적용

이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찬양·고무, 잠입·탈출, 금품수수 등 혐의 이외에도 이른바 ‘간첩죄’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혐의도 적용됐다. 목적수행 혐의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대범죄다.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B씨와 손씨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한국 합법정당인 민중당의 의사결정 과정 등 내부 동향을 수집하고, 포섭대상자로 지목된 민중당 및 시민단체 간부 등에 대한 신상을 파악해 북한에 보고했다. 검찰은 이들의 행위가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 등을 탐지·수집·누설·전달하는 목적수행 혐의에 해당한다고 봤다.

실제 국정원 등이 확보한 보고문과 지령문 등에는 포섭대상 등으로 언급된 한국인만 60명에 이른다. 이중 북한이 직접 포섭을 시도한 인물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2018년 “민중당 안에 산하당 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면밀히 하라”는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이들이 실제로 이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발견된 보고·지령문만 84건… 檢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렵다 ”

국정원 등이 확보한 이들의 대북 보고서와 지령문만 84건에 달한다. 이 파일들은 모두 북한 문화교류국이 과거부터 써왔던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화 기법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구속영장청구서에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려운 분량”이라고 표현했다.

이 파일들은 지난 5월27일 B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B씨는 보고서와 지령문을 저장한 USB파일을 이불 사이에 봉투·은박지 등으로 4중 밀봉하여 숨겨 놓았다.

이들은 북한 문화교류국이 지시한 ‘보안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이들이 지하당을 조직하기 직전 지령문을 통해 ‘컴퓨터 등 장비는 중고로 구입해 실명 등록이나 구매 흔적을 최대한 피하라’ ‘컴퓨터는 3년에 한 번, 무선 모뎀과 심카드, 연락용 메일은 6개월마다 교체하라’ ‘암호화프로그램 보관에 안전성을 가하고, 중요 내용은 은어로 메모만 하고 철저히 삭제하라’ 등의 보안수칙을 지시했다.

이들은 북한 지시에 따라 서로를 ‘A사장’ ‘B사장’ ‘C부장’ ‘신사장’(손모씨) 등으로 불렀다. USB에 저장한 지령문과 보고서 등도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은 스테가노그라피 해독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게 했다.

국정원 등이 이들이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들과 직접 만나는 모습을 촬영물 등 증거로 포착한 것은 두 차례다. A씨는 201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B씨는 2018년 4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해외에서 공작원과 접촉할 때 서로 얼굴을 인지한 뒤 다른 택시를 타고 약속된 장소로 이동해 접선하는 등 은밀하게 만남을 진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당국은 A씨 등이 2002년부터 수십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하는 등 과거부터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한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이들이 A씨가 2017년 5월 북한 지령을 받아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결성을 준비한 때부터 수차례에 걸쳐 공항과 사설환전소 등에서 한화로 환전한 2만4800달러를 북한이 준 공작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손씨와 이들의 변호인은 이날 본지의 통화에 응하지 않았다. 손씨는 지난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정원 등이 얘기하는 북한 공작원은 조작해 만든 가상의 인물로, 마녀사냥을 하려는 것”이라며 “수사기관이 얘기하는 모든 국보법 위반 혐의는 입증이 불가능한데, 강제수사를 통해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