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연합뉴스

6·25 참전유공자 등 국가유공자가 범죄를 저질러 전과자가 됐다면, 사망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전과가 된 범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뺑소니나 군수품 부정매각, 절도 등의 전과의 경우 법원은 ‘국립묘지 안장 불가’ 판결을 내렸지만, 경찰관 폭행이나 불법 게임장 운영 등에 대해선 국립묘지 안장을 허가했다. 현행법상 안장 여부를 가르는 판단 기준은 ‘(범죄로 인한) 영예(榮譽)성 훼손 여부'다. 법조계에선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음주 뺑소니·절도 전과엔 ‘국립묘지 안장 불가’ 판결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은 지난달 4·19 혁명 국가유공자 A씨가 “국립 4·19 민주묘지 안장 비(非)대상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4·19 민주묘지 관리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A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보훈 당국의 국립묘지 안장 거부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40년 전인 지난 1981년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내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작년 A씨가 자신이 국립묘지 안장 대상인지 문의하자, 보훈 당국은 음주 뺑소니 전력 때문에 안장 대상이 아니라고 답했고, A씨가 불복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부는 “음주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0.39%)가 당시 도로교통법이 허용하는 한도보다 거의 여덟배 높았다”며 “이 사건 범행은 사회적·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

절도 전과가 있는 국가유공자도 안장이 거부됐다.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2011년 6·25 참전유공자 B씨의 유족이 국립영천호국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비슷한 소송에서 B씨 유족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B씨가 2009년 사망하자 유족이 국립묘지 안장 신청을 했는데, B씨의 절도 전과가 문제돼 거절된 사안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1963년 자전거 1대를 훔친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1965년 다른 절도 혐의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B씨의 절도) 피해가 경미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국립 묘지 안장을 불허했다. 법원은 이밖에 국가유공자가 위증죄나 무고죄, 군수품 부정매각죄 등을 저지른 경우에도 국립 묘지 안장을 불허한 보훈 당국의 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경찰관 폭행했지만… “우발적 가담”이라며 국립묘지 안장 허가

법원이 전과 있는 국가유공자의 손을 들어준 경우도 있다. 지난 2011년 수원지법은 경찰관 폭행 전과가 있는 6·25 참전유공자 C씨의 유족이 낸 유사한 소송에서 C씨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에 따르면, C씨는 지난 1960년 싸움을 말리고자 출동한 경찰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다치게 한 혐의(공무집행방해 및 상해)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당시)술에 취한 C씨가 (범행에) 우발적으로 가담했고, C씨의 가담 정도도 상대적으로 경미했다”며 C씨를 국립 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한 보훈 당국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봤다.

‘불법 게임장 운영’ 전과가 있는 유공자도 국립 묘지 안장 대상으로 인정됐다. 대전지법은 2015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인 D씨가 대전현충원의 안장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D씨는 2004년 불법 게임장 인근에서 손님들이 딴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전해 줬다는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재판부는 “(D씨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모호한 ‘영예성 훼손’ 기준… “개별 법관 가치관 영향”

법조계 일각에선 “국가유공자의 어떤 범죄 전력은 용서되고, 어떤 범죄는 그렇지 못한지에 대해 예측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국립묘지법에 따르면, 전과가 있는 유공자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인지 판별하는 기준은 ‘(전과로 인한) 영예성 훼손 여부’다. 그런데 무엇이 ‘영예’이고 무엇이 ‘훼손’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내규로 ‘우발 행위 여부’ ‘생계형 범죄 여부’ ‘피해 구제 노력 여부’ ‘유공자가 국가·사회에 기여한 정도’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원도 이런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 변호사는 “결국 무엇이 우발적이고, 어떤 범죄가 생계형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 재판부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죄질이 나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국립 묘지에 안장되는데, 상대적으로 죄질이 가벼운 전과자는 안장이 거부되는 ‘역전(逆轉) 현상’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이에 대해 “특정 범죄가 얼마나 비난 가능성이 큰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죄목보다 각각의 구체적인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개별 법관의 가치관이나 주관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