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불법 출국금지 조처'를 한 의혹을 받는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수원지법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의 구속영장에 법원이 ‘발부’ 도장을 찍었다가 이를 지우고 ‘기각’으로 수정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법원이 구속영장에 수정 흔적을 남긴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담당 판사의 단순 실수인지, 외압에 의해 결과가 바뀐 것을 반영한 것인지 여러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수원지방법원 오대석 영장전담 판사는 6일 새벽, 차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과 법무부, 검찰 등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법은 6일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반환할 때 서류 상단 결과란의 ‘발부’ 쪽에 도장을 찍었다가, 전체를 화이트(수정액)로 지우고 다시 칸을 만들어 ‘기각’란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실질심사 후 청구서에 발부·기각 결과와 사유를 적어 검찰에 반환하는데, ‘발부’를 ‘기각’으로 수정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차 본부장은 2019년 3월 긴급 출국금지 권한이 없었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가짜 사건번호를 붙여 낸 긴급 출금 서류를 승인하고, 김 전 차관의 출국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승객 정보 사전분석 시스템을 불법적으로 이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수원지법은 지난 6일 새벽 2시쯤 “엄격한 적법 절차 준수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사안이 가볍지 않다”며 중대성을 인정해놓고도 “현재까지의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 자료,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여 온 태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5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뉴시스

그러나 검찰에 반환된 영장에는 애초 ‘발부’란에 도장이 찍혔다가 수정액으로 지우고 다시 ‘기각’란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물론 이것은 판사가 기각이라고 판단했지만 도장을 ‘발부’란에 잘못 찍은 실수를 수정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정권 핵심부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는 중요 사건의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 날인을 정반대로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겠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본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오 판사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까지 남겼으나 답이 없었다. 대신 수원지법은 “날인을 잘못한 단순한 실수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오 판사와 수원지법의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 판사가 애초 ‘발부’ 결론을 내렸다가 마음을 바꿨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결정 시각(새벽 2시)을 볼 때 오 판사가 늦게까지 고민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오 판사가 영장 기각 사유로 밝힌 내용이 사실상 ‘발부’에 가까운 것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만에 하나 오 판사가 ‘발부’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가 법원 안팎의 압력으로 마음을 바꿨다면 심각한 ‘사법 농단’이 될 수 있다.

2017년 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구속영장에 ‘발부’ 도장이 찍혔다가 ‘기각’으로 수정한 흔적이 발견됐다. 당시에도 담당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려고 했는데 외압이 들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전담판사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후 중앙지법은 영장 발부·기각 결과만 전산에 입력하고 청구서에는 날인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를 바꿨다. 중앙지법과 달리 수원지법은 여전히 ‘날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독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날인을 수정한 일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법원이 구속 여부를 정치적으로 결정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차 본부장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를 놓고도 논란이 있다. 구속영장은 ①사안의 중대성이 인정되고 ②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③증거인멸 혹은 도주 우려가 있으면 발부된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하고도,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한 고위 법관은 “권력형 범죄는 사안의 중대성이 인정되면 지위를 이용한 증거인멸 가능성이 커서 구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지 않다면 고위층 범죄는 거의 구속할 일이 없어진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차규근 본부장은 현직에 있어 증거인멸 가능성을 크게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