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지난 2019년 4월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 앞에서 차량에 탑승해 있다./연합뉴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은 윤갑근 전 고검장의 ‘김학의 연루설’을 보도한 JTBC와 취재기자에게 총 7000만원의 배상판결을 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보기 드문 고액배상이다. JTBC가 보도 근거로 주장한 2019년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면담 보고서’ 내용이 허위라는 판단에서다. 이 면담보고서는 이규원 검사가 작성했다.

이 면담보고서에 대해선 검찰 수사도 진행중이다. 윤 전 고검장이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의 1면 사과로 이어진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오보의 근원도 면담보고서였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 형사 3부(부장 이정섭)가 17일 면담보고서 작성자인 이규원 검사를 소환조사하면서 그간 이뤄졌던 그의 ‘위험한 공보활동’ 이 주목받고 있다.

◇법원 “특정언론에 전달돼 보도되는 과정 적절치 않아”

JTBC는 2019년 3월 건설업자 윤씨가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에서 윤 전 고검장과 골프를 쳤다는 등 친분을 인정했다는 보도를 했다. 윤 전 고검장은 “윤중천과 골프는 물론이고 일면식도 없다”며 JTBC손석희 사장과 취재기자 등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JTBC는 대검 진상조사단이 2018년 12월 및 2019년 1월에 작성한 윤중천씨에 대한 면담보고서에 윤 전 고검장과의 친분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가 윤중천과 면담이라는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데 형사절차상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 적법절차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법원이 이같이 판단한 것은 ‘면담보고서' 자체가 법적 효력을 담보할 수 없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수사권이 없는 기관이어서 수사기관처럼 진술서나 진술조서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다른 진상조사단 단원들이 작성한 보고서와도 달랐다. 이규원 검사는 2018년 12월 말 윤중천씨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면담한 후 면담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윤씨 진술에 대한 녹취도 없었고, 외부 단원들의 참여도 없었다. 법원이 ‘형사절차상 법적 근거가 분명치 않다’며 적법절차 위반을 지적한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윤중천씨는 법정에서 “윤 전 고검장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별장에서 만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면담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법원은 특히 “여기서 나왔다는 불명확한 대화 내용이 특정 언론에 전달돼 보도되는 과정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내용 뿐 아니라 공보 과정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법원이 ‘오보’에 대해 거액의 배상판결을 하자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 전 고검장은 보도 후 이규원 검사를 비롯해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관계자들을 형사고소했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는 2019년 5월 김 전 차관 사건 심의 결과를 발표하며 “윤 전 고검장이 윤씨와 만나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함께 했다는 진술과 정황이 확인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는 최근 윤씨를 소환해 면담보고서 작성 과정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판결로 인해 2년 가까이 묵혀 있던 사건에 대해 본격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앞서 작년 1월 형사 1부장에 부임했던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사실상 방치했었다. 하지만 작년 9월 부임한 변 부장검사는 이 사건이 조사되지 않은 데 의문을 표하며 사건 검토를 시작했다. 한 달 뒤 고소인인 윤 전 고검장을 조사했고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오자 윤중천씨를 소환조사한 것이다. 이 검사가 윤씨가 말하지 않은 내용을 적었다면 명예훼손 혐의 외에도 허위공문서 작성죄가 문제될 수 있다. 본지는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이 검사에게 연락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오보로 드러난 이규원의 ‘위험한’ 공보활동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도 2018년 12월 작성된 이규원 검사의 면담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면담보고서에는 윤중천씨가 김 전 차관과 한 고위 검찰 간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고 진술한 내용이 적혀 있다. 이는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가짜 사건번호로 김 전 차관에 대해 취한 긴급출국금지의 유일한 근거로 활용됐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어떤 형사범죄로도 입건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규원 검사는 피의자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긴급출국금지를 하며 면담보고서 내용 일부를 범죄사실로 적었다. ‘3.25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에서 뇌물 혐의로 수사의뢰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씨 진술은 이 검사가 활동하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내에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윤씨 진술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이 검사가 그를 불렀는데 윤씨는 김 전 차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번복 진술은 첫 면담과 달리 외부 단원도 참여했고, 녹취로 남았다고 한다. 윤씨가 진술을 번복했고, 윤씨 서명도 없었기 때문에 첫 면담보고서는 증거로서도 무효화된 것이다.

그런데 이 검사는 증거 효력이 없고 내용도 사실과 다른 면담보고서를 근거로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긴급 출국금지가 여권 일각의 주장대로 출금 요청서에 가짜 사건번호를 적은 ‘형식적 하자'가 아닌, 범죄혐의가 없는 사람을 사실상 구금한 위법”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이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혐의는 면담보고서와는 전혀 별개의 내용으로 추후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진술자인 윤씨가 곧바로 그 내용을 부인했음에도 면담보고서 내용은 김 전 차관을 비롯한 고위 검찰 간부들이 윤씨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로 일부 매체에서 집중 보도됐다.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 과정에서 이 검사의 ‘수상한’ 공보활동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정 매체 기자들과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통화한 내역이 드러났다. 정상적으로 조사 내용을 알린 것이 아니라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거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특정 매체에 흘렸을 정황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 검사는 윤 검사장을 비롯해 진상조사단과 검찰과거사위가 ‘윤중천 리스트’ 에 연루됐거나 김 전 차관 부실수사에 연루됐다고 지목한 사람들로부터 거액의 민사소송과 형사고소를 당한 상태다. 한 조사단원은 “조사단 활동 당시에도 이 검사의 위험한 공보 방식에 다른 단원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했다.

◇윤석열 오보의 근원도 이규원 면담보고서

2019년 10월 11일 한겨레 신문은 “윤석열 검찰총장도 2013년쯤 윤중천씨로부터 별장 접대를 받았다”는 1면 머릿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조사단이 윤씨 진술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해 과거사위를 통해 수사단으로 남겼으나 수사단이 조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했다. 보도 이후 윤 총장은 한겨레 기자 등을 고소했고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가 진행됐다. 이 사안은 여권 인사들조차 “2013년 당시 윤석열은 대검 중수 1과장으로 댓글수사를 맡아 김학의보다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며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이후 한겨레는 1면에 “부정확한 보도를 사과드린다”며 장문의 사과문을 실었고, 윤 총장은 고소를 취하했다. 이후 형사사건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종결됐다. 보도 시점에 이 검사는 미국 유학중이었고, 기자들의 질문에 “제보 경위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 검사가 한겨레에 직접 제보했다고 보기는 증거가 부족하다. 그러나 보도에서 근거로 든 ‘보고서’역시 이 검사가 작성한 면담보고서였다.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도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규원 검사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할 당시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윤석열 총장이 윤중천에게 별장 접대를 받았다는 한겨레 21의 대형 조작 오보 사건의 원 소스를 제공한 인물”이라고 했다.

윤 총장의 고소취하로 형사사건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 역시 면담보고서의 허위성이 문제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규원 검사가 수사관과 만나서 윤씨를 면담했다고 하지만 당시 수사관은 그 같은 진술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한다”고 했다.

검찰과거사위도 보도 후 면담보고서의 진실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검찰과거사위 위원장 대행이었던 정한중 교수도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윤석열이라고 (보고서에) 한 번 글자가 나온다”며 “(윤 총장을) 봤다는 진술이 아니다. 별장과 관계없는 간접적인 이야기로, (한겨레 보도 때) 기자들에게 보도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서부지검 주변에서는 이 검사가 면담보고서에 윤 총장 관련 내용을 넣은 배경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보도가 난 시점은 윤 총장이 ‘조국 수사’로 현 정권과 불편해진 이후이지만 보고서 작성 시점(2018년 말~2019년 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검사가 무슨 이유로 허위 내용을 면담보고서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검사 혼자만의 결정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