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뉴시스

법무부가 16일 논란이 되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대해 또 다시 입장문을 내고 “김 전 차관 긴급 출국금지 일부 절차와 관련한 논란은 출입국관리법상 법무부장관이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점에 비춰볼 때 부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수사 권한 없는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검사가 과거 무혐의 처리된 사건번호와 가짜 내사번호 등을 기재한 허위 출금 요청서를 작성하고, 법무부 출금 요청서가 접수되기도 전에 민간인 신분이었던 김 전 차관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인천공항 법무부 직원들이 출동하는 등 온갖 불법으로 점철됐다는 문제 제기를 ‘부차적 논란’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법조 관계자는 “사실상 김 전 차관 같은 파렴치범은 불법을 동원해 출국금지해도 괜찮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입장이 법치 수호 주무 부처인 법무부 명의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박상기 전 장관. 그는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뉴시스

◇법무부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출국금지 할 수도 있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A4 용지 5장 분량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발표 주체가 누군지 명의가 없었다. 추미애 법무장관 입장인지 법무부 대변인실 입장인지 등이 일체 적혀있지 않았다. 입장문의 요지는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뿐이라 실무선에서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하며 벌어진 논란은 부차적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 “법무부장관은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하여는 1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출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법무부는 “법무부장관의 출국금지 권한에 관한 기본 조항인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은 ‘관계기관의 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란 문구가 없으며, 단지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법무부장관 직권으로도 출국금지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요청이 접수되기 전인 2019년 3월 22일 오후 11시 39분 인천공항 법무부 출입국 직원들이 김 전 차관을 찾아 출국을 제기하기 위해 탑승구로 이동하고 있다(오른쪽). 거의 같은 시간인 오후 11시 40분 김 전 차관은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뒤 탑승구 앞에서 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왼쪽)./인천공항 CCTV

현재 허위 출금 요청서를 작성해 문제가 되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으로 수사 권한이 없었다. 그는 애초 이를 인식해 대검에 김 전 차관 출금을 요청했지만 아직 김 전 차관이 수사 기관에 입건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 이 역시 여의치 않자, 동부지검 명의의 가짜 내사번호를 만들어 동부지검장 관인 대신 자신의 서명으로 출국금지 승인을 요청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법무부는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도 출국금지를 할 수 있고, 해당 법 조항에는 ‘관계기관의 장의 요청이 있을 경우’란 문구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문제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 엉뚱한 해명”이라는 반응이다.

법무부는 “김 전 차관의 경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에 대한 국민적 비판, 국외 도피 가능성 등이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출국금지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따라서, 김학의 전 차관의 심야 해외출국시도 사실이 적발된 이후에 이루어진 긴급출국금지의 일부 절차와 관련한 논란은 출입국관리법상 법무부장관에게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하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출국금지 자체의 적법성과 상당성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부차적인 논란”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이를 두고 “사실상 여론이 좋지 않고 언론에서 비판을 하니까 절차를 신경쓰지 않고 출국금지를 했다는 것”이라며 “김 전 차관 출금이 정치적 목적에서 진행됐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당시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8일 “검찰 조직 명운을 걸라”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닷새 뒤 이뤄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文 정부 검찰개혁위, 법무부 예시 조항 “문제 있다”며 개정 권고

더욱이 법무부가 이날 ‘법무부 장관은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없다’며 예시로 든 출입국관리법 4조 2항은 작년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족된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출국금지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광범위한 출국금지가 가능하다”며 콕 집어 개정을 권고한 바로 그 조항이다.

조국 전 장관이 임명한 민변 변호사 출신의 김남준 위원장이 이끌던 법무·검찰개혁위는 추 장관 체제인 지난해 6월 8일 ‘출국금지 제도 개선’ 권고안을 발표하고 “범죄수사를 위한 출국금지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그 대상을 ‘범죄수사가 개시’되어 출국이 적당하지 않은 피의자로 한정하고, 다만 피의자 이외의 사람에 대하여는 수사기관이 구체적으로 필요성을 소명한 경우에 한하여 출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2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김 전 차관은 수사기관에 입건되지 않아 당시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김남준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조선DB

개혁위는 “출입국관리법 4조 2항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1개월 이내 출국을 금지하고 있다”며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수사 개시 전 내사 단계에서는 물론 참고인까지 ‘범죄 수사를 위해’ 광범위한 출국금지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개혁위는 “출국금지 대상을 피의자로 한정하고 다만 피의자 이외 사람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구체적으로 필요성을 소명한 경우에 한해 출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규원 검사는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에 김 전 차관 출국 필요성과 관련 “구체적 사유는 보안상 적시하지 않는다”고 썼다.

법무부가 지난해 산하 기구에서 개정하라고 권고했던 법 조항을 들고 나와 현재 벌어진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이 문제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 정권이 발족한 검찰개혁위원회의 법 개정 권고 사항도 무시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장관 직권 출국금지, 법무부 스스로 논의하다 포기

2019년 3월 김 전 차관에 대한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의 직권 출국금지는 실제 법무부가 내부적으로도 논의하려다 전례가 마땅치 않아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다. 2019년 4월 8일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이었던 김용민 변호사(현 민주당 의원)는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차관 출국 사흘 전인 3월 20일 이용구 법무실장(현 법무부 차관)이 김 전 차관에 대한 선제적 출국금지 필요성을 강조하자, 과거사위가 출금을 권고하면 법무부가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검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취지로 밝혔었다.

국민권익위와 대검 등에 접수된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공익신고서에도 “2019. 3. 20. 점심, 피신고인 이용구 → 피신고자 김용민, ① 대검 진상조사단이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에 김학의 출국금지요청에 대한 권고요청, ②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법무부장관에게 출국금지를 권고하는 방식으로 출국금지 방안 협의”라고 돼 있다.

2019년 4월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김용민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위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 금지 논란 사실 확인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고운호 기자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실무선에서 전례도 없고 부적절하다고 판단돼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법무부는 현재 알려진 대로 이규원 검사를 통한 허위 출금 요청서를 가지고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했다. 한 검사는 “법무부장관 직권으로 출금 권한이 있다는데 당시엔 그럼 왜 그 권한을 사용 안했다는 것이냐”며 “위법 논란을 무릅쓰며 다른 출금 방법을 찾아야할 만큼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는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내부적으로도 알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2013년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출국금지를 한 전례도 있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그런 전례가 2013년에 한 번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조항이 사문화 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법관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국금지는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기관의 장이 요청하면 법무부가 이를 토대로 승인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직접 대상을 선택하고 출국금지까지 하는 것은 사실상 ‘판사가 스스로 사건을 만들고 이를 심판하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 검찰 수사 ‘가이드 라인’ 제시하나

현재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은 윤석열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수원지검에 사건이 배당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조만간 수사팀이 법무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이날 “문제 없다”고 입장을 낸 것은 지휘권이 있는 검찰에 대해 수사 가이드 라인을 낸 부적절한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고위 간부는 “법무부 입장문은 사실상 검찰에 대한 수사 지휘”라고 했다.

입장문에는 ‘법리오해 및 사실오인에서 비롯된 것’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판사가 판결문에 주로 쓰는 표현이다. 이 때문에 이날 입장문 작성에 판사 출신인 이용구 법무차관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차관 역시 당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간사이자 법무실장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 법무부 직원들이 긴급 출금 요청서가 접수되기도 전에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제지하기 위해 출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조선DB

한 변호사는 “입장문의 모든 법적 주장이 사실상 불법이고 무효로 보인다”며 “사안의 법리 관계를 잘 모르는 대중을 상대로 법리 공방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일선 부장검사는 “요건이 안되는 긴급출금을 했으면 사후에 장관 직권 출금이 가능했더라도 위법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법무부가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얘길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법무부 입장이 나오기 전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사실상 법무부 입장과 같은 주장을 페이스북에 올려 여권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에 “긴급출국금지는 법무부 장관이 직권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