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대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매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출판사 대표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동서문화동판 대표 고모(80)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소설 ‘대망’은 일본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가 일본 전국시대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소설이다. 일본 내에서 단행본 판매만으로 1억부를 넘긴 베스트셀러다.
동서문화동판의 전신인 동서문화사는 이 소설을 1957년 4월부터 출간·판매했다.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외국인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규정이 미비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 따라 국내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개정법에 따라 외국 책을 번역해 출판하려면 원작자 또는 한국어판 발행권자인 다른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만 해당 법은 개정 전인 1995년 이전에 만들어진 2차 저작물에 대해 예외 규정을 뒀다.
솔출판사는 199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 원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소설을 번역해 2000년 12월 ‘도쿠가와 이에야스’ 1권을 펴냈다.
그런데 동서문화동판은 2005년 ’1975년판 대망'을 일부 수정해 재출간했다. 솔출판사는 이를 문제 삼아 “동서문화사 측이 허락 없이 책을 출판했다”며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1심은 고씨가 저작권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고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출판사에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고씨 측은 “‘2005년판 대망'은 1975년에 나온 책의 단순 오역이나 표기법, 맞춤법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해 새로운 저작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저작권법 예외 규정에 따라 1995년 전에 만들어진 2차 저작물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1975년판과 2005년판의 수정 정도, 표현 방법의 차이 등을 보면 같은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며 고씨 측의 혐의를 인정했다.
2심도 고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고씨와 고씨 출판사가 저작권법 개정으로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며 각각 벌금형 700만원으로 형량을 줄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1975년판과 2005년판 대망이 다른 책이라고 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05년판 대망에 인명, 지명, 한자발음 등을 개정된 외국어 표기법이나 국어맞춤법에 따라 현대적으로 수정한 부분들이 다수 있다”며 “그러나 이런 부분이 양저작물 사이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2차 저작물인 1975년판 대망의 창의적 표현들이 2005년판 대망에 상당수 포함돼 있어 수정본을 새 저작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2005년판 대망은 1975년판 대망을 유사한 범위에서 이용했지만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