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직무정지 일주일만인 1일 오후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1일 오후 5시 13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윤석열 검찰총장을 태운 검은색 관용차가 대검 1층 현관에 도착했다. 법원이 그의 직무 집행 정지가 부당하다고 판단을 내린 지 40여분 만이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윤 총장은 푸른색 넥타이에 짙은 남색 정장 차림이었다. 윤 총장 자택이 대검에서 가까운 서초동이란 점을 감안해도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옷을 갖춰 입고 출근했음을 알 수 있다.

윤 총장은 일주일간 총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와 복두규 사무국장의 마중을 받았다. 두 사람과 짧은 악수를 나눈 후 곧바로 30여명의 취재진 앞에 섰다. 그의 직무 복귀 첫 일성(一聲)은 ‘헌법 정신'과 ‘법치'였다. 윤 총장은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이 발언은 자신의 직무 정지 사태가 ‘검찰 개혁’이 아닌 헌법과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위법 행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자신에 대한 징계를 ‘검찰 개혁’의 일환이라고 표현한 현 정부와 여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4일로 연기한 징계위에서 자신에 대한 해임 결정이 나더라도 불복 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헌법 가치와 정치적 중립 지켜야”

윤 총장은 출근 후 곧바로 검찰 공무원 전체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여러분의 열의와 법원의 신속한 집행 정지 인용 결정으로 다시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며 “검찰이 헌법 가치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정하고 평등한 형사법 집행’을 통해 ‘국민의 검찰’이 되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의 단체 이메일을 보냈다. 전국 59개 모든 일선 검찰청 검사들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 및 징계 청구는 위법·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 자신의 복귀에 큰 힘이 됐다고 화답한 것이다.

윤 총장은 그러면서 “저도 여러분의 정의로운 열정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했다. 여권에서 제기되는 ‘추미애·윤석열 동반 사퇴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총장 주변에선 그의 거취 문제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법치 수호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나온다.

윤 총장은 이후 대검 간부들로부터 대전지검이 수사하는 월성 1호기 사건 등 업무 보고도 받았다. 그의 업무 복귀는 월성 1호기 수사 등 잠시 주춤했던 주요 사건 수사에 힘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대전지검은 지난달 23일 산업통상자원부 전·현직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구두로 대검에 보고한 뒤, 24일 영장 청구서를 대검에 송부했다. 그러나 24일 윤 총장은 직무 배제 조치로 인해 이를 확인하지 못했고, 친(親)정권 검사가 포진한 대검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윤 총장이 이를 결재하면 이 사건 관련 윗선 수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해임 결정 나더라도 불복할 듯

법무부 징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을 예정이었던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2일 열릴 예정이던 징계위는 4일로 연기됐다. 법조계에선 추미애 법무장관이 징계위에서 윤 총장의 해임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징계위는 7명으로 구성되는데 법무부 장관이 위원 전원을 자기 사람으로 꽂아넣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징계위에서 해임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바로 해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 결정은 추 장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해 대통령이 승인하는 방식으로 집행된다. 윤 총장 측은 문 대통령이 자신의 해임을 재가하더라도 이에 대한 취소 소송과 함께 해임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 정지 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다.

윤 총장도 이 소송을 낼 경우 자신이 대통령의 결정에 불복하는 모양새가 되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추 장관의 감찰과 직무 정지 및 징계 청구가 모두 불법·부당하기 때문에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