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숨 넘어갈 것 같은데 이 매운 게 또 들어가네!”

지난달 28일 저녁 경남 밀양시 밀양강변에서 이색 마라톤이 열렸다. 5㎞ 벚꽃길을 뛰면서 음식도 맛보는 ‘나이트 런 앤 워크 인 밀양’이다. 올해 주제는 ‘밀양의 매운 맛’. 코스를 따라 1㎞마다 놓인 테이블에는 음료수 대신 ‘땡초 물회국수’, ‘매운 타코야키’, ‘불짜장밥’ 등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지역 식당과 손잡고 밀양 특산품인 땡고추(매운 고추) 등으로 만든 특별 메뉴다. 러너들은 컵에 담긴 물회국수 등을 후루룩 먹으며 걷거나 달렸다. 참가비 2만원을 내고 1만원짜리 밀양사랑상품권도 받았다. 참가자 1000명 중 550여 명이 부산, 대구, 경기 등에서 왔다고 한다. 대구에서 온 정근혁(43)씨는 “가족과 기록 대신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고 했다.

러닝 바람이 불면서 전국 곳곳에서 이색 마라톤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저녁 경남 밀양시 밀양강변에선 ‘나이트 런 앤 워크 인 밀양’이 열렸다. 5㎞ 벚꽃길을 달리며 지역 특산품 등으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회다. 코스 옆 테이블에 ‘땡초 물회국수’가 놓여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아침 서울 도심에선 ‘서울 유아차런’이 열렸다. 5000가족이 광화문광장에서 여의도공원까지 함께 달렸다. /김준호·장경식 기자

요즘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21개가 열렸고 이번 주말에도 20여 개 대회가 러너들을 붙잡는다. 최근 러닝 바람이 불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대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대회마다 러너가 몰려 “전국이 러닝 중”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러너를 유치하려고 지역 특산품을 상품으로 내걸거나 밀양처럼 이색 아이디어를 짜낸다. 서울에 사는 정모(34)씨는 “예전엔 등산을 다녔는데 요즘엔 주말마다 전국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건강도 챙기고 관광도 하고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아침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유모차(유아차) 4000여 대가 모였다. 올해 3회째인 ‘서울 유아차런’이다. 온 가족이 유모차를 밀고 광화문광장에서 여의도공원까지 8㎞를 달렸다. 작년 첫 행사 때 1000가족을 모집했는데 인기가 많아 2회 대회부터 5000가족으로 늘렸다. 참가자들은 “서울 한복판을 언제 당당히 걸어보겠느냐” “아이 낳고 모처럼 신나게 달렸다”며 웃었다. 네 살 딸과 함께 온 김은혜(38)씨는 “숭례문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며 “아이가 더 좋아한다”고 했다. 두 살 아들과 참가한 키셀레바 안나(23)씨는 “세종대로에서 본 서울 풍경이 참 예쁘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 구로구에서는 ‘수육런’이 펼쳐졌다. 안양천 벚꽃길을 따라 5㎞를 완주하면 골인 지점에서 수육과 두부김치, 막걸리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행사다. 최경수(45)씨는 “고기와 김치를 주니 마라톤 대회가 동네 잔치처럼 정겹다”고 했다. 경기 이천에서 찾아온 고진원(29)씨는 “참가비 3만원에 수육까지 주니 가성비가 훌륭하다”고 했다.

중·고교 엘리트 선수가 참가하는 ‘경주 코오롱 구간 마라톤’ 대회는 러닝 열풍을 반영해 2023년 ‘런 크루(Run Crew)’ 부문을 신설했다. 올해 전국에서 온 동호회 40팀이 경주 코스를 뛰었다.

지난달 29일 경남 합천에서 펼쳐진 '제25회 합천벚꽃마라톤대회' 장면. /합천군

마라톤 대회는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경남 합천 ‘합천벚꽃마라톤대회’에는 전국에서 1만1736명이 참가했다.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 위기에 빠진 합천 인구의 4분의 1이 하루에 몰린 것이다. 대회가 열리면 상당수 러너가 합천에 숙소를 잡고 대회에 참가한다. 합천읍에서 한식당을 하는 문정기씨는 “대회 전후 매출이 평소보다 2배 이상 뛴다”며 “마라톤 대회를 매일 열면 좋겠다”고 했다. 합천군은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 가게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과 관광지 입장권을 경품으로 지급했다.

지난달 28일 경북 의성군에서 열린 '의성마늘마라톤'에 참가한 수상자들이 사은품인 의성 흑마늘엑기스와 의성쌀 4kg 상품을 들어보이고 있다./의성군

경북 의성군은 지난달 28일 산수유 축제 기간에 ‘의성마늘마라톤’을 열었다. 지역 특산품인 흑마늘 진액과 의성쌀 등을 상품으로 줬다. 작년 첫 대회 때 800명이 참가했는데 올해는 전국에서 2000명이 몰렸다. 의성군 관계자는 “마라톤 덕분에 산수유 축제 방문객도 역대 최대인 24만4000명을 기록했다”며 “특산품도 홍보하고 관광객도 늘리고 요즘 러닝만 한 게 없다”고 했다.

오는 5일 경북 영주에서 열리는 ‘소백산마라톤대회’는 영주 특산품인 풍기 인견 이불과 고구마 5㎏을 상품으로 내걸었다.

전국 대회를 찾아다니는 러너가 늘자 ‘티머니’는 작년 10월 마라톤 버스 상품을 출시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발한다. 4일 경주벚꽃마라톤, 5일 군산새만금마라톤에 버스를 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