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00~600m 산들에 둘러싸인 경남 합천군 초계분지의 모습.(드론 360도 파노라마 촬영을 이용한 변형 사진) /조선일보DB

11일 오후 경남 합천군 초계면 대암산 정상(591m). 산 아래를 쳐다보니 그릇처럼 움푹 파인 분지 지형이 넓게 펼쳐졌다. 주변엔 높이 200~700m 산봉우리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어 커다란 세숫대야 같았다. 합천군 적중면·초계면에 걸친 지름 7㎞의 이 분지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공식 인정받은 운석 충돌구(Impact Crater)다.

구글 어스로 본 합천운석충돌구인 초계분지. /구글어스 캡처

합천군은 이 운석 충돌구를 앞세워 국가지질공원 인증에 나선다. 최종 목표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다. 운석 충돌구로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곳은 세계에서도 독일과 핀란드 외엔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합천 운석 충돌구는 약 5만년 전 지름 200m 이상의 운석이 초속 18㎞로 떨어지면서 생겼다. 깊이 142m까지 파서 암반을 분석해 운석 충돌로 생기는 원뿔형 암석 구조를 확인했다.

합천운석충돌구 시추코어 130m 심도에서 확인된 충격원뿔암(shatter cone).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충격 원뿔암(shatter cone)이다. 운석 충돌 때 발생하는 강한 충격파로 인해 기존 암석과 광물 속에는 흔적이 남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인정받는 증거물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2020년 12월 지질학 국제 학술지 ‘곤드와나 리서치(Gondwana Research)’에 실렸다. 이후 전 세계 학계에서 인정하는 200여 운석 충돌구 중 하나로 꼽힌다. 동아시아에서는 지난 2010년 중국 슈엔 운석 충돌구 다음으로 두 번째로 발견됐다.

지난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지질과학 분야 학술 행사인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합천운석충돌구는 세계에서 온 지질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합천 운석 충돌구의 과학적 증거를 최초로 규명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임재수 박사는 작년 11월 합천에서 열린 ‘제2회 국제 학술 포럼’에서 “전 세계 202개 공식 등록된 운석 충돌구 중 합천 운석 충돌구는 아시아에서 가장 젊고 호수 퇴적층 보존 상태가 가장 우수한 충돌구”라며 “지구 내부 구조 변화, 열수 작용, 퇴적층 발달 등 행성 충돌 이후 지질 진화를 연구할 수 있는 행성 지질 실험실로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높이 200~600m 산들에 둘러싸인 경남 합천군 초계분지의 모습. 약 5만 년 전 최소 지름 200m에 달하는 운석이 떨어져 만들어진 분지로, 동서로 약 8km, 남북으로 약 5km 규모의 크기다./조선일보DB

합천군은 이달 중 한반도 유일의 운석 충돌구를 포함해 합천군 전역(983.51㎢)을 국가지질공원 후보지로 신청할 계획이다. 국가지질공원은 지질학적으로 가치 있는 지역을 보전하면서 교육과 관광에 활용하기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인증하는 제도다. 제주도, 울릉도·독도, 한탄강, 경북 청송 등 전국 16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경남에서는 지금까지 인증받은 곳이 없다.

군은 운석 충돌구를 대표로, 총 12곳의 지질 명소를 발굴했다. 대표적으로 한반도에서는 드물게 합천 가야천 일원에 발견되는 회장암이 포함됐다. 회장암은 달의 표면에서 채취한 돌과 성분이 거의 같아 희귀한 지질 자원으로 꼽힌다. 차별적인 침식과 풍화 작용 등으로 마치 탑처럼 우뚝 솟은 형태의 기암괴석인 해인사 일원 토르(tor), 퇴적암층인 셰일(shale) 지대에 형성된 국내 유일 셰일 동굴인 쌍책면 배티셰일동굴, 황매산 자락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인 모산재(767m) 등도 합천군이 자랑하는 지질 명소다.

경남 합천군 가야천의 회장암과 암맥군. /합천군

합천군은 지질 명소 12곳에 대한 기초 학술 조사 및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면서, 지난 2월부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국가지질공원 인증 공감대 형성을 위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합천군 관계자는 “국가지질공원은 별도의 행위 제한이나 재산권 행사 제약 등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군 황매산 모산재. /합천군

합천군은 또 지질 관광의 허브 역할을 할 ‘합천운석충돌구 거점센터’도 건립 중이다. 59억원이 투입되는 이 센터는 초계면 일원에 연면적 961㎡ 규모로 조성되며 오는 12월 정식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는 합천운석충돌구의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 국내외 지질학자를 모은 국제학술포럼도 열고 있다.

김윤철 합천군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운석충돌구 등 소중한 지질 유산으로 합천을 글로벌 지질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어 나가겠다”며 “향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