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찾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상상길. 2000년대 초만 해도 청년들로 붐볐지만 한산한 모습이다./ 김동환 기자

지난 17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상상길. 2000년대 초만 해도 청년들이 몰려 ‘젊음의 거리’로 불렸던 곳이다. 그런데 가게 4곳 중 1곳 꼴로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대형 헬스장이 있던 건물은 5개 층이 전부 비어 있었다. 근처 롯데백화점은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문을 닫았다. 서문병철 창동통합상가상인회장은 “청년들이 사라지니 거리가 순식간에 죽었다”고 했다.

2023년 합성동 맥도날드가 폐점한데 이어 지난 2월 스타벅스 마산터미널점도 철수했다. 의창구의 CGV창원점도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모두 창원 청년들이 자주 가던 곳이다.

국내 대표 산업도시 창원에서 청년이 빠져 나가고 있다.

2010년 34만9052명이었던 창원시 청년(19~39세) 인구는 지난달 22만6144명으로 감소했다. 15년 만에 12만2908명이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창원시 인구는 9만8547명 줄었는데 청년 인구 감소 폭이 유달리 컸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10년간(2014~2023년) 전국에서 청년 유출이 가장 심각한 기초자치단체가 창원이었다”고 했다.

2010년 창원은 평균 연령이 36.7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였지만 이젠 45.7세로 전국 평균(45.6세)을 웃돈다. 지난 6월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청년이 빠져나가면서 2010년 109만181명이었던 창원의 주민등록인구는 지난달 99만1634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이미 100만명 선이 붕괴됐다.

특례시 지위도 불안하다. 주민등록인구와 외국인 인구를 더한 총 인구가 2년 연속 100만명 미만이면 특례시 지위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창원시는 외국인 근로자 덕에 지난달 101만4405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청년 유출 속도가 빨라 이르면 내년, 늦어도 2027년에는 100만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창원시는 예상하고 있다.

창원에는 LG전자, 두산에너빌리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기계·방산 대기업이 몰려 있다. 덕분에 경남은 지난해 지역내총생산(GRDP) 15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충남을 밀어내고 16년 만에 전국 3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창원 청년들은 “일할 곳이 없어 수도권이나 부산으로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고용 전문가들은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구본우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장은 “산업이 전통적인 제조업에 집중돼 있어 청년의 일자리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계, 방산 등 제조업 일자리는 넘치지만 IT(정보통신),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등 요즘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10년 전 창원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는 최정아(38)씨는 “창원에 살고 싶었지만 영상 콘텐츠 관련 일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상경했다”고 했다.

창원에 있는 대기업들도 지역 인재보다 수도권 인재를 선호한다고 청년들은 지적했다.

창원의 한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김모(31)씨는 “동기 중에 창원 지역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은 10%도 안된다”며 “대기업들이 서울 지역 대학 졸업생이나 석·박사 인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창원의 한 대학교 취업센터 관계자는 “인문·사회 등 문과생들은 취업이 너무 어렵다”며 “사기업은 거의 갈 곳이 없고 공기업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창원에는 의대나 로스쿨도 없다.

올해 고3 딸이 수능을 봤다는 이상호(50)씨는 “문과생은 창원에선 ‘인 서울’ 아니면 안되는 분위기라 재수·삼수도 많이 한다”고 했다.

정주 여건도 문제다. 공원이 많고 살기는 좋지만 그만큼 집값 부담이 크다. 대기업 사업장이 가까운 성산구의 한 아파트는 지난달 전용면적 84㎡ 집이 11억 4500만원에 거래됐다. 전세가는 6억원이 넘는다. 수도권 못지 않게 비싼 것이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창원 대신 경남 김해에서 출퇴근 하는 경우가 많다. 김해와 창원을 연결하는 창원터널은 출퇴근 시간대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직장인 김모(40)씨는 “아침에 출근하는데만 1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창원은 대도시지만 전철도 없다. 출퇴근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정원호(40)씨는 “원하는 일자리, 집값, 교통비, 문화시설 등을 수도권과 비교해보면 굳이 창원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창원시도 고민이 크다. 인구가 계속 줄어 특례시 지위를 잃으면 인·허가 등 자치 권한이 경남도로 넘어간다. 창원시 관계자는 “정부에 비수도권 지역은 특례시 인구 기준을 80만명으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8년까지 청년주택 2000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송광태 국립창원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제조업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등 산업 구조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