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1시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에 발신자 번호 표시가 제한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직원들이 급히 사무실 밖을 나가 보니 모금회 사무국 모금함 뒤에 현금 5352만7670원과 함께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손편지에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 간다”며 “난치병으로 힘겹게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내년에는 우리 이웃들이 웃고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 더 많아지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고 했다.
경남모금회에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온정을 담은 ‘천사’의 선물이 도착한다. 몇 년째 신분을 철저히 숨겨 직원들도 누군지 모른다. 연말이나, 사회적인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기부금을 전해올 뿐이다.
경남모금회 직원들은 이날 성금 역시 손편지 필체,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 전화 등을 근거로 같은 기부자라고 보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됐다. 이웃 돕기 성금으로 약 2억5900만원 기부를 시작으로 매년 연말 수천만원을 기부했다. 또 2022년 서울 이태원 참사,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과 호우 피해, 경기 화성 공장 화재 등 때도 그는 손편지와 함께 거금을 냈다.
이날까지 총 누적 기부 금액은 약 7억4600만원에 달한다. 성금에 10원짜리 동전까지 들어있는 걸 보면 매년 기부를 위해 적금을 넣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모금회는 이날 성금을 기부자의 뜻대로 난치병 환자와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다.
경남모금회 관계자는 “매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이어지는 익명의 나눔이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며 “기부자의 뜻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