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울산 남구에 있는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높이 60m짜리 보일러 타워가 무너져 있는 모습. 6일 오후 붕괴 사고 당시 근로자들은 타워가 잘 무너지도록 기둥과 지지대 등을 미리 잘라내는 취약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른 타워도 취약화 작업을 거쳐서 아랫부분에 기둥만 남아 있다. /김동환 기자

지난 6일 철거 중이던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가 붕괴된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적절한 철거 계획에 따라 작업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보일러 타워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물을 끓이는 철골 구조물이다. 사고 당시 타워는 오는 16일 폭파를 앞두고 하부에 대한 취약화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취약화 작업은 구조물을 단번에 무너뜨리기 위해 단단한 기둥과 지지대 등을 미리 잘라내는 것이다. 철거 업계에선 이를 ‘밑동 찍기’라고 부른다. 나무를 벨 때 밑동을 도끼로 찍어 쓰러지기 쉽게 하는 원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타워는 한쪽 기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며 붕괴됐다. 원래 타워 하부에는 버너처럼 물을 끓이는 시설 등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기둥만 남기고 전부 철거된 상태였다.

안전 전문가들은 “구조물을 올리는 것보다 철거하는 작업이 더 위험하다”며 “처음에 철거 계획을 짤 때 하중 등을 정확히 계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함은구 한국재난정보학회 연구이사는 “사고가 난 타워는 지은 지 44년 된 데다 4년 전 가동을 중단해 노후화가 심각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간과하고 과거 설계 도면만 놓고 철거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철거 공사는 HJ중공업이 수주했다. 실제 작업은 하도급 업체인 코리아카코가 했다.

그래픽= 김성규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콘크리트 건물과 달리 철골 구조물을 철거할 때는 무게 중심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계획을 세울 때 잘라낼 부분과 자르면 안 되는 부분을 꼼꼼하게 구분해야 하는데 이를 허술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번에 사고가 난 보일러 타워는 바닷가에 있어 40년 넘게 해풍의 영향도 받았다. 함 연구이사는 “철은 생각보다 부식이 잘되는 재료”라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더라도 내부 곳곳이 부식됐을 수 있다”고 했다.

동서발전도 이를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철거 공사 입찰 당시 동서발전이 제시한 기술 시방서에는 ‘다수의 유지 보수로 설계도와 현장 구조가 불일치할 수 있어 해체 전 중량과 구조 안정성 산정 시 여유 값을 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장 작업 순서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타워 하부를 쓰러지기 쉽게 만들어 놓고 작업자들이 왜 상부에 올라가 작업을 했느냐는 것이다. 소방 당국은 “매몰된 작업자 9명 중 8명은 당시 높이 약 25m 지점에서 취약화 등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나머지 1명은 지상에서 사다리차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안전 문제 때문에 보통 상부에 대한 작업을 모두 마친 뒤 하부에 대한 취약화 작업을 한다”며 “작업을 거꾸로 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에 코리아카코 관계자는 “사고 당시 타워 하부의 취약화 작업을 끝내고 방호 작업을 하기 위해 올라갔다”며 “철거 계획서에 따라 했을 뿐”이라고 했다. 방호 작업은 구조물을 폭파하기 전 잔해가 주변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천 등을 씌우는 작업이다. 이에 대해 철거 업계 관계자는 “방호 작업은 취약화 작업 전에 끝내는 게 원칙인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도 작업자들이 사고 당시 타워 내부에서 어떤 작업 중이었는지를 확인 중이다.

높이 60m가 넘는 거대한 구조물을 철거하는 작업이었지만 철거 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 철거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감리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보일러 타워는 땅 위에 세워 놓는 공작물로 분류돼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르면, 건축물을 철거하려면 공사 개요, 해체 공법, 낙하 방지 대책 등을 담은 ‘해체 계획서’를 지자체에 제출해야 한다. 계획서에 따라 제대로 작업을 하는지 감독할 감리도 현장에 배치해야 한다. 공작물은 건축물이 아니라 그러한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철거 계획서를 놓고 감독하는 사람도 없이 작업을 했다는 얘기”라고 했다. 울산 남구 관계자는 “사고가 난 보일러 타워는 건축물에 해당하지 않아 발파나 철거 과정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