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외 경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었다. 2008년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지자 버티지 못한 회사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 쌍용차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고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법원이 평택공장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고 경찰이 진압 작전을 벌인 끝에 총파업은 끝났다. 쌍용차는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이유로 불법(不法) 파업 참가자 96명에게 총 4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4년에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회사 측에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노란봉투법’이 된 이유
이런 중 한 시민이 시사주간지인 《시사인》에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작은 힘을 보탠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이 담긴 봉투를 보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돈을 보내는 독자들이 늘었고, 언론사는 현행법상 일정액이 넘는 모금을 주관할 수 없어서 ‘아름다운재단’이 모금을 맡았다. 재단은 과거에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아서 줬으며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가 노란봉투에 담겨 있는 데 착안해 ‘노란봉투 캠페인’을 벌였다. 재단은 모금을 시작한 지 112일 만에 14억7000만원을 모았다. 2015년 4월에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핵심 사안은 ‘노조법 제3조’ 개정이었다. ‘제3조’는 사용자(회사)가 헌법에 의한 쟁의행위 등을 위해 노조로부터 손해를 입으면,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법원은 이 조항에 따라 ‘불법’ 파업이면 사측이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은수미 의원은 기본적으로 파업을 합법(合法)으로 보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제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0대 국회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2016년 10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2017년 1월)이 다시 대표 발의했으나 논의되지 않았다. 제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과반의 의석을 차지했다.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2020년 6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2020년 9월에 다시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이 법은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다.
‘진보 진영의 숙원사업’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동자가 ‘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며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독에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창을 만들고서 스스로 들어갔다. 뒤이어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하는데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을 받는다”며 51일 동안 불법 파업을 했다. 대우조선은 곧장 하청 노동자들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 외 민주당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새로 발의했다. 발의안에는 ‘노조법 제3조’와 함께 ‘노조법 제2조’까지 개정하는 안이 포함됐다. 노조법 제2조에서 규정한 ‘사용자’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 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者)인데 발의안은 사용자 범위를 넓히자고 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의 ‘사용주’는 그에게 직접 월급을 주는 하청 업체 사장이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에게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사람을 사용주라고 규정하면, 상황에 따라서는 하청 업체 사장이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사장일 수 있다.
민주당은 2023년 11월에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서 다시 폐기됐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자극적인 명칭, 대통령의 거부권 등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으며 ‘정부 대(對) 노동계’의 힘겨루기 싸움으로 번졌다. 이재명 정부 들어 여당은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이 법을 통과시켰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8월 24일 본회의를 통과했고, 2026년 3월 1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확한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의 개정안’으로, 주요 골자는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과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노란봉투법은 이름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매우 난해하다. 법률적으로 용어를 한두 개 바꾼 것이지만 그 여파는 가히 폭발적이다”고 말했다.
노동경제를 전공한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 때 두 번 거부하면서 진보 진영의 숙원사업으로 돌변했다. 법의 내용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통과됐다”며 “노사 관계, 대한민국 경제를 생각한다면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소액주주대표소송, 주 52시간제 등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입법들이 많았는데 노란봉투법이 가장 심각한 악법(惡法)이라고 봅니다.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여도 실질적으로 기업이 이를 제재하거나 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하청의 하청의,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용자는 대기업인 너희다’라고 주장하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노조와 임금, 단체협약 등을 주로 협의했다면, 앞으로는 회사 경영에 관한 것도 사전에 상의해야 합니다. 이런 불이익 속에서 대기업들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용자 개념 너무 모호”
개정안의 핵심 쟁점은 첫째, 사용자의 범위 확대다. 현행법은 사업주와 사업 경영 담당자 등으로 한정하지만, 개정안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도 사용자’로 간주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사용자의 개념이 너무 모호합니다. 사용자의 범위, 한계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섭 당사자는 누구이며, 교섭 대상은 임금 인상, 복리후생, 인사, 채용, 경영 판단 등 어디까지인지, 혹은 모든 것인지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추상적인 법 문헌을 쓰더라도 통상 법률에서 정확히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입법 기준을 둡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법에 따라’ 등으로 구체화하며, 시행령을 만들 때에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집중적으로 수렴하는 것이 통상적인 입법 과정입니다.”
― 국회에서 입법안 내고 다수당의 표결로 통과됐는데요.
“노란봉투법에는 이런 내용과 절차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가 시뮬레이션한다고 하는데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든 것은 구속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행정부의 의견일 뿐입니다. 사법부에서는 판사들이 법률에 따라서 재판을 하는데 시행령 위임 조항조차 없습니다.”
― 회사와 노조가 소송하면 일일이 법정에서 다퉈야 하겠네요.
“정부가 1~2년 동안 소위 행정지도나 다양한 지원, 촉진 정책 등을 적용해 테스트를 해야 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떠안고 가기보다 안전한 길을 찾았어야 합니다. 어떠한 절차도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입법화하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 노조가 쟁의하겠다고 나설 것”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얘기다.
“남녀가 데이트를 10번 했다고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데이트를 했으니까 너는 실질적으로 결혼할 의사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완성차 업체의 5차 벤더 직원이라고 치죠. 자기가 만든 부품이 결과적으로 완성차에 납품하는 것이니까, 나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벤더회사 사장이 아니라 완성차 업체 사장이라고 우기면서 직접 교섭을 하겠다는 겁니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정확히 짚어줘야 하는데 어디에도 그런 것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 재계와 전문가들이 사상 유례없이 반발하자, 공식 블로그를 통해 ‘팩트 체크,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 확대’에 대해 “무조건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용자가 되므로, 단순 납품 관계의 N차 협력 업체, 주식 지분 보유 자회사 등에 곧바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사용자의 정의가 너무 애매해서 시행령에 명백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끝없는 쟁의에 시달릴 수 있다”고 했다.
“사용자는 곧 노동쟁의의 대상자가 될 수 있거든요. 대상자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 대해서 노조가 쟁의하겠다고 나설 수 있습니다. 노동쟁의 숫자도 많고, 대상자도 많아지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겁니다. 노동쟁의, 기업 내 분쟁이 많아지면 당연히 외국인들이 투자하지 않을 것이고, 주가는 내려가고, 국가의 잠재성장률은 떨어지겠죠. 단순히 한 회사가 분쟁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는 대단히 커질 겁니다.”
“죄형법정주의 논란 일으킬 소지 있어”
노동법을 전공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죄형법정주의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법은 강행 규정으로 위반하면 사용자를 처벌하는 규정이고, 노조법은 노동조합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 규정이 있는 특별 형법입니다. 형법은 국민의 신체와 자유를 억제하는 법이죠. 신체의 자유는 중대한 기본권 침해이기 때문에 범죄의 구성 요건을 명확하게 제시해야만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입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단체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 노동 행위로 보고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그렇기에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가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인지, 실질적 지배 결정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재판을 시작하면 법관의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 법대로 따져야 하는데 따질 기준이 없는 거네요.
“기업이 공정거래를 위반하면 이에 따른 제재를 합니다. 자유시장 경제가 내적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규제가 존재하죠. 하지만 늘 제재의 주체는 명확해야 합니다. 노란봉투법은 모든 것을 노사 관계로 수렴시키는 법인데, 이것을 정상적인 시장 경제 질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난 2023년 5월 전경련(현재 한경연)은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 보고서에서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루어진 산업 현장에서 교섭의무주, 교섭노조 단일화 등에 관한 소모적인 분쟁을 야기할 수 있어, 노사 관계 질서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또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사전에 특정할 수 없는 다수의 경제 주체가 노조법상 사용자 의무 위반에 따른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헌법상 보장하는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팩트 체크’까지 하면서 노란봉투법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고용노동부는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12월 1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설명을 내용으로 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첫째, 개정안은 노동조합법의 사용자 정의를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불명확한 개념으로 확대하여, 원청 사업주 등은 단체 교섭의 상대방과 범위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 결과 산업 현장에서 단체 교섭을 둘러싼 큰 혼란이 초래될 것입니다. 또한 단체 교섭 의무 불이행 시 형사 처벌의 대상인 사용자 범위가 불명확하게 되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반됩니다.〉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명예회장인 김태훈 변호사는 지난 9월 10일 여러 중소기업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노란봉투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김 변호사는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고 형사 처벌 위험을 증가시켜 경제 활동의 자유, 계약 및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원·하청의 이중 구조에서 촉발된 문제
사용자의 범위를 넓힌 부분은 최초로 발의한 2015년도 은수미 의원의 입법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의 불법 파업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새롭게 추가됐다. 당시 대우조선 하청 업체 직원들은 ‘고된 일을 한다. 임금 30%를 올려달라’며 51일 동안 불법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의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원청인 대기업 노동자 못지않게 일을 하는데 월급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 간의 이중적 구조 문제가 담겨 있다. 일종의 ‘정규직 대(對) 비정규직’ ‘대기업 대 중소기업’ 임금 격차라는 해묵은 이슈 말이다.
원·하청 이중 구조는 원청이 하청으로, 하청이 또 다른 하청에 일감을 맡기는 방식이다. 하청, 하도급, 협력 업체 모두 같은 말이다. 정부, 공공기관 공기업, 대기업 등 원청 업체에서 직접 처리하기에 너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을 때에 원청 업체에서 기획하고 실제 진행은 하청에 맡긴다. 하청을 받은 그 소규모 회사는 또 용역 업체에 일을 맡긴다. 이 같은 이중 구조에서는 원·하청 업체 간 근로자의 임금과 처우 조건이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조선업, 완성차 업체가 주로 원·하청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졸 연봉 1억원 아빠, 대졸 연봉 4000만원 아들
노동경제를 전공한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다.
“울산의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고졸 아버지 연봉은 1억원이고 자녀 대학 학자금까지 사측에서 지원받아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취업하려고 보니 연봉 4000만원 수준의 중소기업 일자리뿐입니다. 아버지의 정년이 60세에서 62세, 63세까지 늘다 보니 아들 세대가 취업할 곳이 없거든요. 이런 모습이 우리가 말하는 이중 노동 시장 구조입니다.”
― 왜 이런 이중 노동 시장이 생겼습니까.
“대기업은 높은 이윤을 바탕으로 정규직 중심의 안정적 고용이 가능했지만, 중소기업은 낮은 채산성으로 저임금 고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산업 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저임금 일자리가 늘고, 플랫폼 노동 확대는 이중 구조를 더욱 고착화했습니다.”
― 대기업들에 2중, 3중으로 협력 업체를 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물어보면 노동 시장이 경직돼 있어 해고가 어렵다 보니, 직접 고용을 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하던데요.
“일정 부분 맞는 얘기일 겁니다. 더구나 대기업 강성 노조는 표면적으로는 청년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기득권 보호에 집중해 ‘귀족 노조’라는 비판에 시달리죠. 일부 경영계 역시 원칙보다는 파업을 무마하기 위해 ‘퍼주기식 노무관리’를 하면서 노동 시장 내 불균형을 심화시켰습니다. 정부 정책도 이중 노동 시장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이를 기준으로 교섭한 대기업의 각종 수당은 배수 단위로 상승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대기업은 단체 협약 등을 통해 연중 150일에 가까운 유급휴일을 확보하지만,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여전히 포괄임금제 아래 과로를 강요당합니다.”
― 노동 시장 이중 구조가 우리나라만의 특징입니까.
“우리나라와 일본이 심한 편인데, 일본은 하청의 단계를 확 줄였습니다. 한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2차, 3차, 4차, N차까지 수직계열화되어 있습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맡았기에 그에게 ‘노란봉투법이 중소기업에 이로운 법이냐’고 물었다.
“장기적으로 원·하청의 관계가 많이 옅어질 겁니다. 원·하청은 한국, 일본의 고유한 특징이고, 이 구조를 통해 비용이나 위험을 전가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런 고리가 없어질 겁니다. 원·하청 구조는 일종의 동물원입니다. ‘삼성 동물원’ ‘현대차 동물원’처럼 한 곳에 울타리를 쳐 중소기업을 모아두고 사육하는 구조입니다. 대기업은 하청기업이 먹고살 정도의 물량을 지속적으로 보조해 주는 것이고요.”
― 원·하청 구조가 옅어지면 중소기업에 좋은 것인가요.
“동물원을 탈출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고, 오히려 야생에서 잘 살 수도 있겠지요.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대기업들은 핵심 부품에 있어 그 생산을 내재화하는 절차를 중장기적으로 밟게 될 겁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현실적”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동계에서 실질적으로 주장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즉 원·하청 간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 수 있을까.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노조 측의 입장을 심정적으로 공감하지만, 논리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평등성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형평성은 매우 이상적이면서 매우 비(非)현실적입니다. 우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할 준비와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 사이 매우 큰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입니다. 제도를 이처럼 급격히 변화시키면 부작용은 매우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임금 구조에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노사 촉진법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 노사촉진법이요?
“법이 추구하는 목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질서 속에서 사회 안정,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분쟁을 최소화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법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 ‘법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법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결과는 노사 관계의 안정이 아닌 노사 관계 갈등 조장의 원인이 될 겁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얘기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은 회사와 경영진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령 반도체 부문이 주 52시간으로 원활한 운영이 쉽지 않다는 점, 노조 전임자의 숫자, 노조 전임자의 근무 조건 등 고질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개선하지 않습니다. 근로자 측이 권익을 찾았다면 이에 따라 노조 쪽도 상생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여태까지의 입법은 경영진에 대한 일방적인 징벌적인 성격입니다. 비약하자면 여태의 경영 활동이 범죄적이었다는 것인데, 경영진이 이에 동의할지 의문입니다.”
“국제 간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 있어”
이번 개정안의 두 번째 쟁점은 ‘노동쟁의 대상’의 확대다. 현행법은 노동쟁의를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데 대해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 상태로 본다. 개정안은 ‘근로 조건의 결정과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에 대해서까지 노동쟁의를 확대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외국 간 거래에 있어 통상 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은 근로자의 임금, 근로 조건뿐 아니라 사업상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도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이번 한미 무역협상의 핵심 조건은 한국 정부가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6조원)를 투자하는 것입니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시행 중이라면, 이런 투자도 노조의 동의를 구했어야 합니다. 기업이 대규모의 투자를 하면 인력 확충이나 재배치 등이 필수적인데, 노조에서 그것이 근로 조건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경영진은 부득이 해외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노조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미국에 ‘한국 노조가 반대해서 투자를 못 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빌미로 관세를 부과하거나 앞으로 통상 마찰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군요.
“노란봉투법은 단순한 노동조항 개정이 아니라 국제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 간의 통상 이슈 문제로 변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를 해야 했습니다.”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법을 고치면 된다’고 했는데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돌을 개구리한테 던져 죽여 놓고서는, 개구리 죽은 것을 보니 돌 사이즈를 조금 작은 것으로 조절해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면 정부의 ‘마스가 프로젝트’도 노조랑 상의해야 한다. 1500억 달러를 투자한 결과 때문에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영향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며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국가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고 꼬집었다.
“노란봉투법이 글로벌 스탠더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할 부분이 있다”며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용우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미국 기업인들에겐 이미 익숙한 내용이다. 노란봉투법은 한미FTA 조항에 정확히 부합하며 ILO(국제노동기구) 또한 ‘법 개정안을 채택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당의 말을 종합해 보면 노란봉투법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을 (권고의 대상인)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대상이 국가지, 원청기업(원청)더러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ILO의 권고는 국제법상 효력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때 고용노동부는 ‘ILO의 협약은 강제성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정부가 바뀌었다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의 행정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동법 전공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용노동부 위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 등 실무를 맡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경쟁하는 G20 국가 중 단 한 곳이라도 이런 법안을 입법한 사례가 있는지 가져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일의 산별 교섭 제도를 그나마 참고할 수 있는데, 이것은 원·하청의 사업주가 사용자 단체를 만들고, 노조들이 하나의 노조로 단결해서 교섭하라는 겁니다.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교섭 사항을 이행하면 되니까 이건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청을 교섭의 당사자로 끌어내려서 처벌하겠다는 국가는 없습니다.”
― 노동법 얘기를 하면서 유럽의 사례를 얘기하는데, 우리에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요?
“유럽은 오랜 산별노조 전통을 갖고 있고 노사 간에 제도 개혁을 위한 합의의 경험이 많고 협의·교섭의 성숙도가 높습니다. 유럽에서 노조의 협조 없이 이뤄진 노동개혁은 없습니다. 기업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면 피해는 근로자가 보기 때문에 노조는 기업이 국가 밖에서 배회하지 않도록 양보하고, 임금 인상을 자제합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양보와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는 여전히 대립적이고 갈등지향적이며, 계급 투쟁적 사고가 지배합니다. 대우조선 하청 업체의 독 점령 사례, 철강이나 건설 현장에서 이뤄지는 행태들을 보면 과연 유럽과 같은 성숙함을 보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노란봉투법을 입법한 것은 불난 집에 불을 지피는 격입니다.”
노동부, ‘노조의 파업 행위는 정당방위’
이번 개정안의 또 다른 쟁점은 ‘파업에 대한 노조의 쟁의행위(파업 등)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재계가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어야 하느냐”고 말하는 이유다. 고용노동부는 ‘팩트 체크’에서 “노조에 무조건 면죄부를 주는 입법이 아니다. 민법 제761조의 정당방위와 같은 개념이다”라고 주장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회사가 피해보상 청구를 못 하게 하는, 일종의 노조 면책 특권이다”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기업이 노조를 향해 소송을 아예 못 하는 법은 아니라고 호도합니다. 실상은 이렇습니다. 가령 복면을 한 5명이 불법으로 회사 기물을 파손하고 손해를 입혔다면 현행법은 이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개정안은 ‘누가 얼마의 피해를 줬느냐’에 따라서 1번 사람에게 10%, 2번은 20%, 3번은 50% 등으로 구분해서 청구하라는 것인데 말이 됩니까? 공동 책임에 대한 부분은 없습니다. 노조의 불법 파업이 정당방위라면 민법 제750조의 ‘고의가 아니어도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주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규정은 사라지게 되는 겁니까?”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노조가 잘못해도 면책을 주장할 수 있는 분쟁 구조를 만들었다. 불법 쟁의를 통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는데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기업의 생산 체제를 무너뜨리고, 결과적으로 피해는 노동자가 입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노란봉투법, 일반 근로자에게 좋은 일 아냐”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대화 촉진법’이며 ‘상생의 기반을 다지는 법’으로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성장하는 ‘진짜 성장’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호하다.
“원·하청 간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정부는 2022년 12월에 근참법(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정하고 근로자와 사용자 쌍방이 참여와 협력을 통해 노사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라고 했습니다. 이 법의 기본은 ‘교섭’이 아니라 ‘소통’입니다. 정부가 정말 원·하청 간의 소통을 원했다면 이 법을 근간으로 플랫폼을 만들었어야 합니다.”
― 노란봉투법 외에도 이미 충분한 장치가 있었다는 거군요.
“정부는 또 원·하청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입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2022년 11월에 이중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조선 5사(社) 원청, 협력사, 조선협회, 전문가, 중앙-지방 정부가 참여한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발족했습니다. 협의체에서 원청과 하청의 임금 격차,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비용은 정부가 지원토록 했습니다. 사회안전망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면 기존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습니다. 이런 조치로도 격차가 줄어들지 않으면 보완 입법을 해야 했는데, 무작정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노동운동가나 좋아하는 법이지, 일반 근로자 입장에서 좋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발 변동 큰데 왜 하필이면 지금…”
많은 전문가는 노란봉투법의 입법을 두고 시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미국발(發) 변동성이 커지고 국내외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활용하는 것은 관세 부과 자체보다 투자를 유치하고, 상대 교역국의 시장 개방이 목적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고민하는 와중에 국내의 기업 환경이 갈수록 녹록지 않으면,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으로 해외로의 이전을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의 얘기다.
“신냉전을 비롯해 국제 경영 환경이나 국내 경기가 심각합니다. 제조업 기반의 한국 경제가 이나마 버티는 것도 어쩌면 대견하지만, 경쟁력을 잃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기업과 정부가 단합해 대외적인 경영 환경에 대처해도 어려운 판국에 노란봉투법으로 무분별한 파업이 탄력을 받지 않을까 많은 기업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발의가 되어왔습니다만, 거대 여당 의석수와 진보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매우 급하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한국GM의 철수설 재점화
노란봉투법이 핫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노란봉투법의 입법으로 GM의 국내 법인인 한국GM의 철수 가능성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은 지난 8월 21일에 한 간담회에서 “한국은 이미 노사 갈등으로 인한 리스크가 큰 국가다. 본사가 한국 사업장에 대해 재평가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GM 철수설의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미국GM이 한국GM기술연구소에서 이미 30~40% 이상 진행한 소형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8월 중순에 전격 취소했으며, GM청라주행시험장은 사실상 휴업 상태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미국GM과 정부, 산업은행이 2018년에 체결한 ‘10년 잔류 약속’도 오는 2027년에 종료되기 때문에 GM이 더는 한국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내용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분석이다.
“백사장에 모래가 없는데 거기에 텐트를 친다고 해수욕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GM이 철수를 할지, 안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노란봉투법이 불러일으킨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미국GM이 한국 시장에서 판매력이 약하고, 미국으로 팔자니 관세를 내야 하니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현대차는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각종 반(反)기업법에 시달려도 일정 수준 감내해야 하지만, 한국GM은 그냥 나가면 그뿐입니다. 한국GM이 철수하는 순간 부평의 경기는 고꾸라질 겁니다. 부평에 있는 연관 산업도 사라질 겁니다.”
노란봉투법이 새로운 노노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많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시장경제 초토화법’이라고 규정하며 “민노총의 자승자박이다. 기업은 노동, 자본, 자원의 투입이 이뤄져야 하는데, 노동만 투입한다고 기업이 돌아가지 않는데, 비빔밥을 만들겠다면서 밥만 넣고 나물은 아예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승자의 저주로 끝날 겁니다. 대기업 생산직의 임금과 복리후생은 이미 글로벌 수준입니다. 원·하청의 이중 임금 구조를 줄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대기업 생산직이 양보를 해야 할 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복수 노조는 허용했지만, 창구는 단일화해 사측과 협상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하청이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00여 개인데 단일화가 가능할는지 의문입니다. 이것이 정말 노동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처음에는 노노 갈등, 이후에는 청년 실업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처음에는 대기업 노조와 하청 업체 노조 간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다음에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단체(한노총·민노총) 중심의 산업별 단체협상으로 바뀔 겁니다. 수많은 하청 노조와 일일이 교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단체가 대표성을 갖고 기업별이 아니라 산업별 교섭 및 협상을 하게 될 겁니다. 이로 인해 노동단체의 규모와 위력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겁니다. 그들이 정년연장 등을 주장하고 나설 경우에 결국 청년 일자리, 경제활동 연령대의 미취업자 증가 등의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익을 주는 곳으로 이주하면 된다.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자국(自國)에 남아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 근로자는 외국으로 쉽게 이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피해는 노동자가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다.
“노동 정치만 확대될 겁니다. 산별 교섭의 원조는 원래 유럽입니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에서 산별 교섭을 해보니 국가가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업 교섭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마크롱 정부는 해고 시 기업 책임을 줄이고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와 임금 협상을 하도록 해서 노조의 힘을 빼는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업별 협약이 산별 협약보다 우선한다’고도 했죠.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성장률은 올랐습니다.”
― 우리는 지금 상태대로라면 산별 교섭으로 갈 가능성이 큰데요.
“산별 교섭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구석기 시대의 얘기입니다. 노조 정치 차원에서는 노조 조직률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겠지만, 노동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는지 의문입니다.”
“노조는 갈수록 강성이 될 것”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을까.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의 얘기다.
“기업들은 공장 해외 이전을 고민할 테고, 로봇 투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입니다.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큰 하청의 물량은 조금씩 줄이겠죠. 너무 눈에 띄게 하면 부당 노동 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진행할 겁니다.”
― 하청이 많은 곳이 큰 타격을 받겠죠.
“조선, 자동차 업종이 심할 겁니다. 특히 조선업은 작업을 야드에서 하기 때문에 노란봉투법을 피해 갈 수 없고, 조선소를 외국으로 이전할 수도 없습니다. 이 외에 많은 업종이 노란봉투법으로 예기치 못한 분쟁에 시달릴 수 있고, 경제를 살려야 할 타이밍에 적절치 않은 입법으로 남을 겁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얘기다.
“산업 전반에 걸쳐 노사 분쟁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통상적으로 노조 집행부는 강성에 치우쳐 투쟁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협력사의 노조는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지배력을 갖고 있건 없건 노란봉투법을 무기로 원청 사업주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로 인한 혼란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 경제에 좋은 법은 아닌 거죠?
“우리의 산업 구조, 기업 간 거래 구조가 몇십 년 동안 해온 것인데, 급격하게 변화시키면 어마어마한 부작용이 생기며, 노조는 갈수록 강성이 될 겁니다. 노조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강성으로 가고, 그래야 사측과의 교섭력도 생기겠죠. 결국 강 대 강으로 부딪쳐서 파열음이 날 것이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얘기처럼 ‘대화’와 ‘타협’이 될는지 미지수입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떠나기는 쉽지만,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서의 기업 활동을 포기시키는 입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축소지향적 경영할 것”
전략경영 및 국제경영 전공인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의 전망이다.
“1990년대에는 아웃소싱이 효율적인 경영 기법으로 취급됐습니다. 나이키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공장 및 판매 조직은 중국, 동남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들 했죠.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산업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타개하겠다며 나선 것이 트럼프식(式)의 제조업 부활이었죠. 우리나라 기업들도 복잡한 하청 구조를 일원화해서 내부화시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수직적 통합이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있고, 국내 시설 및 설비 투자를 줄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졸자 신규 채용 등 신규 고용은 더욱 힘들어지고, 축소지향적 경영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강구책을 마련하겠죠.
“본사는 핵심 인력만 가져가고 생산 근로직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겁니다. 극단적인 예측일 수 있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또 회사의 경영 전략 차원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해외 이전의 명분도 줄 것이고요. 기회비용적인 관점에서 미국 조지아에 공장 짓는 것과 우리나라 화성에 짓는 것 중에 무엇이 유리할지를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 기업이 철수하는 것은 한 지역, 나아가 국가에 해가 되는 일 아닙니까.
“미국이 중국으로 아웃소싱 허브를 이전하면서 겪었던 현상이죠. 당시 미국에서는 국민의 ‘월마트 직원화’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제조업에 있어야 할 사람이 죄다 월마트에서 일하게 됐다는 자조적인 얘기였는데, 우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과거 대구의 섬유공장, 부산의 신발공장이 사라지면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수도권에서까지 생긴다면 어찌 될까요?”
‘육식 입법부, 초식 사법부’
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2년 정도 유예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제 경영 환경이 2027년부터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발 상호관세 정책이 미 법원에서 집행중지 명령을 받고 있고, 대법원 결정이 2026년 말에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내년 11월에 중간 선거가 있고, 증가한 상호관세는 결국 3~6개월 내 미국 소비자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미국 행정부의 추진력이 지금보다 떨어질 겁니다. 지금은 약속은 하되, 시행은 가능한 한 미뤄서 2년 후 경영 환경 변화를 지켜봐야 하는 입장입니다. 또 2년이면 기업들이 새로운 변화에 준비하는 노력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여권의 매우 급한 입법 활동이 경기 부진으로 이어질 경우 내년 지방선거나 다음 총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란봉투법 시행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육식 입법부, 초식 사법부’가 오늘날의 모습이라는 한 취재원의 얘기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