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하 노상원)은 ‘12·3 비상계엄’ 당시 중요한 비선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내란죄·권력 남용·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돼 재판 중인 그는 특검과 법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미스터리한 인물로 비치고 있다. 진술 유보 내지 거부와 묵비권 행사, 행적의 의도를 축소하거나 책임 소재를 회피하는 발언으로 특검 수사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비상계엄에 그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알려지고 있지만, 법정에서 뚜렷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현재 수사 결과 드러난 계엄 관련 문건은 계엄 선포문, 포고령 1호, ‘최상목 문건’(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문건) 등이다. 이 가운데 몇몇 문건은 노상원이 작성했을 것으로 의심되지만 문건의 작성 배경, 문건이 실제 어디에 쓰였는지, 누가 활용했는지 등에 대해 진술을 회피하거나 불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어 수사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
“장군님이 오시는군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쪽에서는 자신이 직접 비상계엄 문건의 초안을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특검은 오히려 노상원을 핵심 인물로 의심하고 있다. 공소장을 보면 두 사람이 비상계엄 선포 전날인 12월 2일 저녁부터 자정쯤까지 약 4시간 동안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만났다고 적혀 있다. 계엄 당일 아침에도 2시간가량 만난 것으로 보아 노상원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찾지 못해 미로 상태에 있다.
노상원의 것으로 알려진 70쪽 분량의 수첩도 답보 상태다.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 사살’ 등을 두고 그의 언급이 모호하거나 일부는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엄 준비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이 적었다거나 명확히 증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 혹은 선택적 수용으로 형량 조정을 노리거나 여론적 부담을 덜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법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노상원이 특검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수사관들은 그의 ‘입 열기(진술)’를 이끌어내려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도대체 노상원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안개가 걷힌 길 위에서 기자는 노상원이 걸어온 마음의 행로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의 베일에 싸인 심리를 헤아리는 것이 사건의 앞뒤 구슬을 꿰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노상원은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신기(神氣)가 가득한 얼굴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주, 점(占), 운세, 무속이나 명리학 등에 깊이 빠져 직접 무속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육사(41기)를 수석 입학한 투 스타 장성이 무속인이라니 믿기 어렵다.
기자는 노상원의 단골 무속인으로 알려진 ‘비단아씨’ 이선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2월 국회의 비상계엄 국정 조사 당시 증인으로 출석해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이씨는 전북 군산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있다.
― 노상원은 왜 사주, 명리, 무속에 빠졌을까요.
“빠졌다기보다 본인이 신기가 많더군요. 첫눈에 제가 한 말이 ‘장군님이 오시는군요’라고 말했으니까요. 인상부터 남달랐습니다.”
여기서 말한 ‘장군님’은 어떤 신령(神靈)이 내려왔다는 의미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장군님’이 내려오면, 장군 복장을 하고 칼춤·창춤을 추기도 한다.
― 이 말을 들은 노상원의 반응이 궁금하군요.
“웃으면서 자신이 ‘투 스타’로 예편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장군’이라는 호칭은 이 맥락에서 두 겹의 의미로 읽힌다.
“그게 잘되면 어쩌면 내가 다시 나랏일을 할 수도”
이선진씨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분이 무슨 계기가 있어서 명리학과 주역 같은 것에 빠져들었다기보다 스스로 신기 같은 것을 느껴 영적(靈的)인 공부를 했을 겁니다.
그리고 (노상원이) 오랜 시간 명리학이나 주역을 어느 스님에게 배웠다고 하고, 계룡산에도 갔었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아요.”
― 지금 구속된 상황을 보면 자기 운명을 볼 줄 모르는 것 아닌가요.
“그분은 (자기 운명을 선택할) 기회가 분명 있었을 테지만 다른 기회를 택했고, 그것(비상계엄을 모의한 것)은 개인의 욕심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이 다시 (나랏일을 할) 기회가 없을 것으로 봤어요.”
이선진씨는 지난 2월 4일 국회 국정 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과의 대화다. 일부 구어체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고쳤다.
〈▶한병도=김용현 장관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선진=(노상원이) 처음에는 그냥 이름하고 생년월일을 가지고 오셔서 제가 ‘이분은 그냥 보통 군인은 아닌 것 같아요’ 했더니 ‘이 사람이 나중에는 장관이 될 거다’. 그때는 장관이기 전이었거든요.
▶한=장관 전부터?
○이=예, 그래서 ‘이 사람이 올라가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하셨고요.
▶한=장관이 될 것 같은데 문제가 있겠냐 없겠냐?
○이=예, ‘문제가 되지 않고 올라갈 수 있겠다’고 했더니 ‘아, 그렇냐’고 하셨고, ‘이 사람과 내가 뭔가를 함께 문제를 만들어서 했을 경우에 그게 잘되면 어쩌면 내가 다시 나랏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복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노상원이 언급한, ‘뭔가를 함께 문제를 만들어서’ ‘그게 잘되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노상원은 김용현을 통해 “다시 나랏일을 할 수 있”고 “복직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노상원은 12·3 계엄의 블랙요원이었나
어쩌면 ‘12·3 비상계엄’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노상원과 김용현에 의해 촉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적어도 특정한 ‘사건·국면’을 통해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회복하려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노상원은 대북 공작 전문가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작년 12월 2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 정보 분야 공작의 제1 전문가였죠. 공작 분야…. 그리고 정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원이었고요. 정보사령관도 하고 투 스타 때 777사령관도 하고, 또 정보학교장도 하고….
수완이 아주 좋았던 친구로 정평이 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름 공작 분야에서는 능력이 있었던….”
노상원이 ‘공작의 제1 전문가’라는 사실이 군 내부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그는 ‘블랙요원(black agent)’으로 계엄을 준비해 왔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블랙요원’은 보통 위장 신분으로 민간 사회에서 정보 수집, 심리전, 공작 등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노상원의 수첩에서는 ‘수거 대상, 수집소, 북한군 복장, 미군 살해, 정치인 납치, 백령도 작전, NLL 북한 도발 유도’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메모들이 발견됐다. 공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들이다. 정보사 휴민트의 현역 최고참인 한 인사는 국회 국정 조사에 출석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제가 2016년에 속초 HID 부대장 할 때 그때 노상원 사령관이 임무 준비를 많이 시켰습니다. 그때도 지시하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고 시나리오, 영화 이런 데서 보는 것을 많이 응용해가지고 하는데 계엄 수첩에 나오는 용어들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상상이라고 생각을 하던데 저는 노상원 사령관이면 가능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이 정보사 휴민트는 심지어 이런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그때(2016년) 그 사람(노상원)의 잔인한 면, 반인륜적인 면을 봤기 때문에 계엄 수첩에 적힌 용어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노상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계엄 수첩’에는 정치인, 법관,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약 500여 명이 ‘수거’ 대상으로 지목됐고 이들의 이송 중 사고 유도, 무인도, GOP 민통선 이북 지역으로 수용 후 사고 처리, 화재, 폭발, 사살 등의 표현이 포함됐다고 한다.
정보사령관 시절인 2016년에 무슨 일이…
노상원이 국군정보사령관에 재직하던 2016년,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북한은 그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2월 7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경협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을 폐쇄,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3월에는 북한 광물 수출 금지, 금융거래 제한을 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 2070호가 채택됐다. 그리고 3월 7일부터 4월 30일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실시됐다.
5월에는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가 개최돼 김정은 집권 공고화(당대회 개최, 당 규약 개정, 김정은의 국방위원장→국무위원장 전환)가 이뤄졌다.
그해 7월에는 사드(THAAD) 한국 배치 결정이 공식 발표됐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강력 반발하고 한중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으며 북한이 반발,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을 동해 앞바다로 연이어 발사했다.
9월 9일 북한은 4차보다 강력한 폭발력(약 10kt)을 지닌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10kt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 2/3 규모로 도심 1~2km 반경 내에서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파괴적 위력이다. 사실상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실전 배치 단계에 진입했음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2016년 당시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졌고, 우리 군 당국과 정보기관은 북한의 권력 재편 및 핵·미사일 시험 대응을 위해 대북 심리전 재개·정보 수집을 강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역할을 수행했던 이가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이었다.
그해 10월 24일,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대통령 연설문과 회의자료가 담겨 있다는 JTBC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폭로는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국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고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찬성 234표, 반대 56표)됐다. 이런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상원은 향후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안산에서 반지하 점집 운영하기도
‘북핵 위협’의 대응과 방어를 국정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고 대북 공작에 앞장섰던 노상원도 정권 교체와 함께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2018년 10월 1일 노상원은 국군의 날에 정보학교 여군 교육생을 술자리로 불러내 강제 신체 접촉을 했다. 피해자는 소속 부대 법무실에 신고했고 결국 노상원은 보직 해임돼 집행유예 없이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군을 떠나야만 했다.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그는 불명예 전역 후 사주, 운세, 점과 같은 무속에 빠져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반지하 점집을 차려놓고 운영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뱀닭’을 팔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뱀닭은 “어마어마하게 비싸며 항암제로도 쓰인다”고 한다. 뱀 사체가 썩으며 발생하는 구더기들을 닭들에게 먹이면 닭에게 뱀독, 혹은 뱀고기의 열 성분이 스며들어 닭의 털이 빠진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죽고 일부는 살아남는데, 살아남은 닭이 뱀닭이다. 2007년 뱀 사체에서 발생한 구더기를 먹인 닭(뱀닭)을 재료로 한 사계탕 제조방법이 특허 출원되기도 했다. 노상원은 2022년 2월부터 2024년 1월 말까지 자주 군산에 내려가 무속인 비단아씨(이선진)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비록 군을 떠난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군인들의 명단을 가져와 그 사람 사주를 봐달라”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할지 말지 봐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배신자 색출” “군인 점괘” 등의 말은 노상원이 군 내부의 특정 인물에 대해 불신이 있었고 이를 비과학적 방식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음은 지난 2월 4일 비상계엄 국회 국정 조사에서 민주당 한병도 의원과 이선진씨의 문답이다.
〈▶한병도=2022년 2월부터 24년 1월까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수십 차례 방문을 했지요?
○이선진=예.
▶한=처음에는 개인적인 운세를 물어봤는데 2024년부터 나랏일을 언급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23년도부터요.
▶한=배신자 색출을 위한 군인 명단을 제시하면서 점괘를 의뢰했다고 하는데 그런 적이 있습니까?
○이=예.
▶한=그때 배신이라고 할 때 군인이라는 걸 인지를 하셨나요?
○이=군인이라고 설명을 다 해주셨고요. 이미 파악을 해가지고 오신 상태였고요. 나와 뭔가 문제를 만들었을 때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중략) 수십 차례 오실 때마다 군인을 사실 많이 물어보셨거든요.
▶한=그러면 아주 많은 숫자로 그냥 기억을 하시겠네요?
○이=예.〉
‘조용한 수재’가 巫俗으로… 무속이 군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1962년생인 노상원은 서천군이 고향이다. 서천초등학교와 서천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전고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 이름은 노용래(盧龍來). 고향 주민들은 “조용한 수재” “공부 잘하는 여관집 아들”로 기억한다. 당시 대전고는 비평준화여서 우수한 학생들만 진학할 수 있었다.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길을 바꾸어 1981년 육사(41기)를 수석으로 입학한다. 생도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졌고 대위, 소령 시절에도 동기들과 활발히 교류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1990년대 중반, 보병 병과에서 정보 병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용래에서 노상원으로 개명(改名)했다. 동기들 사이에서 “장군이 되려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개명했다고 한다.
병과 전환과 개명은 인과관계가 있어 보인다. 보통 수석·차석 입학자는 장교 사회에서 일찌감치 주목받고, 보병·기갑 등 주요 병과에서 전형적인 지휘관 코스(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를 밟는다. 그런데 노상원은 중간에 병과를 바꿨다. 한국군에서 병과 변경은 흔치 않다. 특히 보병→정보는 ‘지휘관 코스’에서 ‘정보 참모·첩보 코스’로 옮겨 가는 셈이다. 정보 병과는 별 진급까지 가는 길이 매우 비좁다. 그래서 병과 전환과 함께 개명했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병과를 바꾼 이유가 무속에 빠져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무속이 군인으로서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렸기에 정보·심리·기만·파괴 등 공작(工作)을 주로 하는 정보 병과에 더 끌렸다는 추측에 무게중심이 실리게 된다.
단순 ‘생계 유지’ 이상의 정치·군사적 의도
노상원은 비단아씨를 찾을 때마다 생년월일이 적힌 명단을 건넸고, 사주를 보다 뭔가 잘 안 보일 때, 혹은 얼굴을 조금 보고 싶다고 할 때 네이버에서 인물 검색을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2022년 2월~2024년 1월 말 사이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은 2022년 5월 10일이다.
노상원의 무속 활동은 단순히 사적 담론을 너머 군 인사나 권력 구조, 계엄 계획(노상원의 표현대로라면 “뭔가를 함께 문제를 만들어서”) 등 민감한 사안들과 연결됐을 개연성이 높다.
기자와 만난 한 예비역 장성은 “불명예 전역 후에는 공식 권한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노상원이 사적 인맥·비선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 한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꼭 계엄령이 아니더라도 노상원이 점괘를 이용해 배신자 여부를 판단한 것은 비공식 인사 장악 및 사상 검증 같은 활동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따라서 사전에 누가 ‘협조자’고 ‘배신자’인지 가려내는 작업이 필수적이죠.”
― 불명예 전역(2018년) 이후 최소 5~6년간 왜 군 주변을 맴돌았을까요.
“노상원은 공작에 능한 인물입니다. 지속적으로 인맥을 관리, 점집 운영을 통해 정보 수집·판단 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생계 유지’ 이상의 정치·군사적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하죠.”
이 예비역 장성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2·3 계엄 선포는 즉흥적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 준비된 시나리오였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줍니다. 다시 말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도 의지지만 노상원과 같은 군 인사들의 의지가 윤 대통령의 계엄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도 충분합니다.”
노상원이 군 주변을 떠나지 않고 점괘까지 활용해 배신자를 가려냈다는 것은, 단순 호기심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군 인적 네트워크를 정비하고, 필요시 군을 동원할 준비를 했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로 읽을 수 있다.
국정 조사·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용현 전 국방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이 계엄 지시문 작성·배포, 비화폰 전달, 군 지휘 계통 압박 등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윤 대통령의 결심을 ‘실행 가능한 군사·행정 계획’으로 구체화하고, 현역 지휘관에게 명령을 전달·독려하는 실행자였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국가적 결단을 내릴 때 ‘돌발적’으로 지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등의 계엄 선포 혹은 비상조치 실행 당시, “군부 및 참모의 압력 또는 권유”가 작동했다는 증언과 기록이 존재한다.
대외적으로 보면, 칠레 1973년 피노체트 장군, 아르헨티나 1976년 군 최고위 장성, 튀르키예 1980년 군부, 미얀마 2021년 군 최고위 장성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정권이나 비상조치 실행 당시 군부 및 참모의 압력과 권유가 작동했다는 기록과 증언이 존재한다.
노상원 딸의 죽음과 계엄의 인과관계?
기자는 노상원의 마음의 행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이다. 국회 국방위 소속 중진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있기 얼마 전 노상원의 딸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노상원의 가족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확인한 이의 전언이라고 한다.
“노상원은 이혼한 상태인데 전처와 그 딸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딸이 사망 후 보름 만에 발견됐고 그 시기가 계엄 직전이라는 것이죠. 부패가 심하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창문을 깨고 집 안에 진입했다고 해요.
노상원이 딸의 죽음을 접하고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해요. 대북 공작을 전담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이상한 발언은 아닐 수 있어요. 그래서 국회 주변에선 여러 소문이 떠돕니다.”
― 어떤 소문인가요.
“죽은 딸로 인해 노상원이 심리적 불안감을 느꼈고 그것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데….”
― 글쎄요. 그 말은 노상원이 계엄을 윤 전 대통령에게 부추겼다는 뜻이 되는데 믿기가 어렵네요.
노상원 딸의 죽음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요시사》의 2월 27일 자 기사 〈단독: 딸 죽고 노상원 위험한 생각, 왜?〉를 알게 되었다. 다음은 기사 중 일부다.
〈노 전 사령관의 딸 A씨는 지난해 11월 초, 서울 서초구 방배동 모처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숨진 지 10일이 지났고 ‘자연사’했다고 결론 냈다. A씨가 살던 건물에는 노 전 사령관의 아내 B씨도 거주했다. B씨는 A씨의 죽음에 대해 굉장히 의연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C씨는 “용래(노 전 사령관의 개명 전 이름) 딸이 집에서 잘 나가지 않고 30대인데도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장례가 간단하고 빠르게 끝났다. 세상을 등진 지 10일 후에야 발견됐다는 얘길 듣고 이해를 못 했다. 그만큼 용래가 아내와 수년간 자주 싸웠는데 가족들 간의 사이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딸들도 그런 가정환경 트라우마로 인해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당초 노 전 사령관은 계엄 날짜가 2025년이 적당한 것으로 판단했으나 노상원이 작년 11월 초 딸의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급해졌다”고 썼다.
유튜브에는 ‘노상원 딸 사망과 계엄’ 관련 영상들이 많았다. 딸 사망으로 계엄을 서둘렀다는 인과관계를 단정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른 유튜브 영상 역시 《일요시사》 기사를 1차 재료로 반복해서 재생산했다.
우리 사회 ‘무속 의존’의 충격
하지만 이런 정보는 시청자가 마치 노상원이 개인적 사정 때문에 국가적 결정을 좌우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사실상 ‘괴담’이나 ‘음모론’에 가까운 여론을 형성할 위험도 있다. 사망 사건 자체는 유족의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다. 개인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소비했다는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향후 노상원의 비상계엄 의혹 수사는 법적 쟁점(문건 작성자·실행 여부·대통령 보고 과정)으로 인해 공방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엘리트 군 장성의 ‘무속 의존’이 주는 사회적 파장과 충격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점·굿 등 비과학적 요소에 기댄 한 사람만의 역할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설명할 수 없으며, 여러 이해타산적 요인이 맞물려 점들이 선을 이루고 결국 계엄 선포로 이어졌을 수 있다. 노상원이 걸어온 미스터리한 행로는 파장을 일으키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노상원 등의 공작 내지 기획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움직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령 잘 짜인 기획과 집요한 설득이 있었다 해도,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는 윤 전 대통령 자신이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발목 잡기와 무자비한 탄핵 소추안 발의가 있었다. 30건 발의되어 그중 13건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 사례는 0건이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책임은 오로지 윤 전 대통령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