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 혐의를 받는 10대 피의자가 경찰서에 보관 중인 압수물을 다시 훔쳐 달아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피의자는 재차 훔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다 사고를 내고 크게 다쳤다. 경찰은 중요 범죄 증거물을 도난당하고도 2주가 지나도록 파악조차 못했다. 압수물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 부실 등 경찰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경남 창원서부경찰서는 특수절도 및 공동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고등학생 A군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일 밝혔다. A군 등은 지난달 3일 오전 2시 10분쯤 창원서부서 내 대형 압수물 창고 앞에 보관 중이던 125cc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 등을 받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군은 지난 8월 30일 오후 10시쯤 경남 함안군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번호판 없이 방치돼 있던 오토바이 1대를 훔쳤다. A군은 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날 새벽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일대를 질주하다가,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A군의 절도 사실을 확인하고, 오토바이를 압수했다. 경찰은 창원서부경찰서 압수물 창고 앞에 이 오토바이를 뒀다. 창고 안이 가득 차서다. 오토바이엔 별다른 잠금장치도 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서에 동행했던 A군은 압수물이 이처럼 허술하게 관리되는 것을 그대로 목격했다.
A군은 사흘 뒤인 지난달 3일 새벽 친구와 함께 창원서부서를 몰래 들어갔다. 1.5m 높이 직원 주차장 펜스를 뛰어넘은 이들은 유유히 오토바이를 다시 훔쳐 달아났다. 청사 안에 야간 당직자가 있었지만, 외부 침입 사실조차 몰랐다. A군은 대범하게도 다음날 이 경찰서를 찾아 사건 조사를 받았다.
압수물 도난 사실을 몰랐던 경찰은 지난달 17일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는 과정에서 중요 증거물이 없어진 것을 파악했다. 그제야 청사 내 감시카메라(CCTV)를 통해 A군이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것을 확인했다.
A군은 지난달 18일 새벽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 일대에서 오토바이 소음 신고로 출동한 경찰을 피해 도주하던 중 넘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쳤다. 수술을 받은 A군은 현재 치료 중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던 창원서부서 측은 도난당한 오토바이를 지역 한 파출소에서 확보했다가 또다시 도난당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오후 6시 18분쯤 창원시 의창구 북면의 한 도로에서 “누군가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주민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북면파출소 경찰관은 당시 오토바이 운전자와 소유자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아 이 오토바이를 임시로 파출소로 가져왔다. 이 오토바이가 앞서 창원서부서에서 도난당한 압수물인 줄은 몰랐다. 파출소 앞에 세워져 있던 이 오토바이는 사흘 뒤인 지난달 16일 오후 10시쯤 사라졌다.
파출소를 비추는 CCTV 영상 화질이 흐려 누가 훔쳐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후 이 오토바이는 다시 A군이 몰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경찰은 현재 입원 치료 중인 A군과 공범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의 압수물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감찰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경찰청은 지난 8월 14일 각 경찰서에 압수물 일일 점검부와 관리 점검 대장 등을 세분화해 관리해 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압수물을 도난당한 창원서부서는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압수물 관리가 부실했다”며 “관련 직원들에 대해 감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