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모욕을 번갈아 해서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만드세요.”
“기회를 과장해 불안과 결핍감을 자극하세요.”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털어놓게 하세요.”
이른바 ‘다크 심리학(Dark Psycho logy)’이라는 이름의 콘텐츠들이 소셜미디어(SNS)와 서점가를 뒤덮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타인의 심리를 유리하게 활용하는 기술들을 안내하는 이 콘텐츠들은 표면적으로는 ‘가스라이팅에 대처하는 방법’ 혹은 ‘어둠의 방어기술’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일부 내용은 심리 조작 범죄를 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심리적 무기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도덕적 판단 없이 남을 조종하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책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를 휩쓸고 있는 건 출판업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7월에 출간된 관련 책은 출간 직후 서점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9월 17일 기준)에 올라 있다.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책들의 저자들은 ‘다크 심리학’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여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거나 조작하는 기술로 정의하고,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조종당하지 않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법을 안내한다. 그 안에는 ‘심리 조작의 기술’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해당 책의 구매자는 20대 남성 비율이 18.6%로 가장 높고, 30대 남성이 17.8%로 뒤를 이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예약 판매 단계부터 남성 SNS 이용자 사이에서 관심이 높았다”고 밝혔다. 해당 책은 후속 시리즈를 예약 판매하고 있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이 같은 콘텐츠가 열풍인 것은 마찬가지다. ‘요즘 미국에서 핫한 다크 심리학’ 등 관련 게시물은 441만회, 66만회, 653만회 등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 및 SNS 사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해당 콘텐츠를 SNS에서 접했다는 김모(32)씨는 “자신을 지키는 기술이란 식으로 포장이 돼 있긴 하지만, 이런 걸 악용하는 어른이 있을까봐 걱정된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친구들한테 장난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해당 콘텐츠를 책으로 구매해 읽었다는 최모(28)씨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여러 빌런이 떠올랐다. 나는 자책이 많은 편인데, 더 어렸을 때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가스라이팅도 유행한 덕분에 당하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많지 않나”라고 말했다.
범죄사례가 ‘처세술’로 둔갑
기자도 직접 책을 사 봤다. 상대의 말투나 감정 흐름을 읽어내거나 불안감·의존심리를 자극해 ‘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종종 ‘상대방에게 당하지 않는 법’ 혹은 ‘대화 기술’로 포장되지만, 훨씬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내용도 많았다. 또한 책 시작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소개하지만,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공격하라’로 끝나는 기술 소개가 많았다. 일부 다크 심리학 도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술돼 있다.
“상대방이 스스로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느끼도록 유도하라.”
“가짜 연대감을 형성한 후, 갑작스럽게 외면하고 책임을 떠넘기세요.”
“중간자의 말을 빌려 착시 조작을 유도하세요.(예: ‘다들 너에 대해 안 좋게 말하더라’라는 식)”
이 중 일부는 실제 역사적 사례를 가져오기도 한다.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의 ‘인간 삭제 프로그램’ 내용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3단계 심리 파괴 기법을 설명한다.
1단계: 배우자의 외도 의심을 유도하는 익명 편지로 가정을 파괴하라.
2단계: 직장 동료들에게 험담을 유포해 신뢰를 제거하라.
3단계: 자녀의 학교에 투서를 보내 사회적 고립을 유도시켜라.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이란 기술을 설명하면서는 다음 내용을 소개했다. 1969년 10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닉슨이 비밀리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닉슨은 동시에 핵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소문도 퍼뜨렸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로 보이게 만들어 공포심을 조장한 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움이 깊어질수록 냉철한 판단보다 포기나 양보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기술들은 바로 실생활에서 적용이 가능하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인간을 조종하는 5가지 원칙, 심리를 조작하는 5가지 등 방법, 효과, 예시라는 틀로 직접적 행동지침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심리적 고립화 활용]
1. 가짜 연대감 후 갑작스럽게 외면하기
예시 : 카톡 대화를 친밀하게 이어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읽씹(읽고 무시)을 반복한다. 회사 회식 등 단체모임에서 평소에 늘 챙겨주다가, 어느 순간 슬쩍 빠져 상대방 혼자 남긴다. 만약 상대방이 질문하면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야지”라며 책임을 떠넘기듯 말한다.
2. 중간자를 가장한 착시 조작하기
예시 : ‘그 친구가 너에 대해 좀 불편함을 표하더라’ ‘분위기 보니까 네가 좀 과했다는 얘기가 많던데? 물론 난 잘 몰라.’ 이런 식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은 점점 자기 검열이 심해지고,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믿는다.
한 도서 쇼핑몰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리뷰 또한, 저자가 ‘조종을 권하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문제적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저자는 인간이 무엇이 해로운지조차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점은 간과한 것 같다. 스스로 피해자 프레임에 빠지거나 자기 정당화를 반복하는 우리가, 이런 심리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다소 낙관적이다.
책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악’이라는 표현은 인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우려스럽다. ‘진짜 선함이란, 괴물이 될 수 있음에도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좋은 말과 함께 굳이 그런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부정적인 언어에 더 쉽게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에, 그런 표현은 왜곡된 인식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 책 역시 독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일정 부분 조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심리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는 통찰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밖에 작동할 수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통찰 없이 기술만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권위·규범이 해체된 사회가 원인
이 같은 어둠의 심리학이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권위와 규범이 해체되면서, 그동안 금기시되던 심리 조작 기술이나 비윤리적 처세술까지도 ‘지식’이나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공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예전부터 어둠의 정치학, 어둠의 심리학은 존재해왔다. 권력 지향적 정치학은 실제로 최근 많은 정치인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스라이팅 하는 방법’ 등도 팟캐스트, 유튜브 등에서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떠돌아다녔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이 책으로 나오거나 공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었다.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거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규범이 붕괴한 ‘아노미 상태’가 되다 보니 공개적으로 이 같은 콘텐츠가 유행하게 됐다는 게 윤 교수의 분석이다. 공통의 규범이 부재한 사회에선 개인의 성공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가 정당화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규범과 정의, 상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은 더이상 개인의 목표를 위해 정의로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규범의 상징이 권위인데, 권위를 상징하는 사람들도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어떤 영역에서도 원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존경할 만한 종교지도자도, 스승도 없다. 정치인도 지금은 규범의 지배를 안 받고 있지 않나. 또 우리는 정치인을 ‘지지’할 뿐이지, 도덕적으로 존경하지는 않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비대면화되면서, 대면 관계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커진 점을 이 같은 유행의 원인으로 짚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 사람이 사기꾼인지 범죄자인지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SNS가 발달하고 정보량이 비대해졌다. 비대면 만남이 주가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으로 정보가 왜곡되기 쉽다. 이것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에 대한 공포가 (다크 심리학) 유행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정보량은 많지만 가치 판단은 어려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이런 내용에 의존할 수 있다. 대면 관계의 공백으로 인한 공포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가치판단 어려운 청년들에게 악영향
실제로 심리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미성년자나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자칫 잘못된 처세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9월 15일 서울의 한 교보문고 매장에서는 부모님과 서점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이 책을 접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곽금주 교수는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나 사회초년생이 이런 내용을 자기계발서처럼 받아들이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정보가 사실로 쉽게 둔갑해버리는 사회다. ‘베스트셀러다’ ‘조회수가 많다’ ‘많이 공유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 도덕적 판단 없이 ‘새로운 처세술이네’ 하면서 일상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교묘하게 법을 피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등 악용할 수 있다.”
윤상철 교수는 이 같은 분위기가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해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출판행위는 공적 행위다. (가스라이팅 내용 등이)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다면 지금은 다른 규범들과 충돌하는 정도로 여겨지는 상태인 듯하다. 자살, 마약, 성범죄 분야의 구체적 실현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다. 다만 그 경계를 드나드는 콘텐츠들이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도 “이른바 ‘소시오패스가 성공하는 사회다’라는 명제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을수록 성공을 하는 사회가 됐다. 다크 심리학은 그 명제들에 힘을 실어주는 콘텐츠”라고 진단했다.
관련 콘텐츠를 접한 김모(29)씨는 “읽는 내내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며 “사람의 심리를 이토록 체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타인에게 조종당하거나 이용당할 위험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교보문고에서 만난 또 다른 독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독자는 “화술 기법이나 심리학 일부 이론을 어설프게 끌어와 어그로(관심 유도)용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 없이 가짜 전문가처럼 보이게 꾸민 내용이 많아 보였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교수 또한 “‘가스라이팅’은 사실 어떤 상황에도 관점에 따라 갖다 붙일 수 있는 단어로 소비되고 있다. 정확히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결과에 따라 그루밍 범죄 등을 표현할 때 쓰여야 할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다 보면 개인이 일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결과 인간관계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물론 이 같은 콘텐츠들의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공감 능력이 과도하게 높은 사람,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상처를 입었던 사람에게는 적당한 심리적 거리두기나 방어 기술로도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보통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만이 공감장애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공감능력이 발달한 것 또한 ‘공감장애’다.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상처에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일정 부분 심리적 방어 기술로 작용할 수 있다. 관련 콘텐츠의 메시지 중 하나는 ‘좌절을 겪어보고 이겨내야 성장한다’는 것이다. 성취지향적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