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대규모 이민단속이 벌어졌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비자 조건 위반이나 체류 기한 만료 등의 이유로 구금됐다. 손목엔 수갑, 발목엔 족쇄를 찬 채 이송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많은 이들은 “우리가 투자까지 했는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는 억울함의 목소리도 쏟아냈다.
워싱턴주에서 30년 넘게 살아왔지만 비자 문제로 결국 귀국을 택한 A씨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현지인을 고용한 법인을 운영하며 매달 수천 달러의 세금을 냈지만, 결국 영주권의 벽은 넘지 못했다. 자녀들은 미국 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사와 엔지니어의 꿈을 접어야 했고, 가족들은 딸의 결혼식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들과 손자들을 마음껏 보지도 못한 채 미국에서 죽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은 결국 지난해 겨울 한국행을 택했다.
그럼에도 A씨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인만을 겨냥한 보복이나 감정적 처벌이라기보다, 미국 이민당국이 정해진 절차와 매뉴얼에 따라 ‘비자 신분이 없는 사람을 본국으로 돌려보낸’ 결과일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금된 한국인 316명은 강제추방이 아닌 ‘자발적 귀국(voluntary departure)’ 형태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정당하게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며, 의사·회계사·엔지니어 등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인재들이 단지 비자 문제로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이 제도 속에서 이득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도 없다. 30년을 일궈온 삶의 터전도, 기술로 현장을 일구던 인력들도 결국 비자 앞에 무력했다.
무너진 가족의 꿈
1994년 A씨는 가족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땅을 밟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미국투자비자(E2)였다. E2는 이민자가 현지 사업체를 사서 입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최소 두 사람의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를 고용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큰 투자금이 필요 없어 미국에서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비자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영주권을 받는 방법으론 미국투자이민(EB5)도 있다. 2년 정도 뒤에 영주권을 취득하고 5년 정도 지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훨씬 큰 금액을 투자해야 해 부담이 크다. A씨는 “지역에 따라 금액이 다른데 당시엔 최소 50만달러(약 6억9000만원), 일반적으론 100만달러(약 13억8000만원) 정도 투자가 필요했다. 현실적으로 부담이 컸기에 20만~30만달러(약 2억8000만~4억1400만원) 정도 투자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E2를 선택했다.”
하지만 E2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오래 거주해도 영주권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A씨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가족 초청을 받거나 고용주의 스폰서를 통한 H1B 전환이다. 미국 한인의 70% 정도는 가족 초청으로 영주권을 받는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미국에 가족이 없는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스폰서 약속을 한 고용주를 찾으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스폰서가 비자 만기를 사흘 앞두고 돌연 ‘입장 변경(Change Mind)’을 선언하기 전까지 그랬다. 일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다급하게 아내의 학생비자로 만료 직전 이민국에 접수했지만, 일주일가량 공백이 생기면서 가족의 합법적 체류 신분은 사라졌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아침, A씨는 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민국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방문은 곧 강제추방을 의미했다. 심장이 뛰었다. 그들은 정작 여러 한인들의 유학비자 브로커 역할을 하던 M 유학원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이 기관이 미국 이민 비자를 악용하는 것 같으니 정황을 알아보겠단 취지였다. 좋은 정보를 넘기면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A씨가 특별히 부정하거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이번엔 가족들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A씨는 당당했다. “비록 합법적 체류 신분이 없었지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 제대로 된 월급을 주고 있고, 한 달에 5000달러(약 690만원) 정도인, 평균적인 미국 시민보다 많은 금액을 꼬박꼬박 세금으로 내고 있다.” 이민국에서는 당장 추방을 결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민국으로 온 가족을 불러 지문을 등록하도록 했다. 또 추방 결정을 담은 편지를 보낼테니 이를 통해 항소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암묵적으로 미국 체류를 허락해주겠다는 뜻이었다. 1년을 꼬박 기다렸지만, 편지는 오지 않았고, A씨의 가족은 20년간 ‘합법적 체류 신분이 없는 상태’로 미국에 남았다.
“미국은 각 부처 간 정보 시스템이 중앙집권적이지 않다. 모든 게 일사불란한 체계가 아니다 보니, 주(State)를 넘나드는 여행이나 운전면허(Drivers license) 취득 등 대부분 생활이 가능했다. 단, 미국에 입국할 때만 이민당국의 확인이 필요해 한 번 미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1980년생 아들은 의사의 꿈을 접어야 했고, 1983년생 딸과 함께 2005년에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했다.”
“워낙 똑똑한 아이들이어서 앞날이 창창했는데 영주권 없이 미국에서 할 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A씨는 특히 아들에게 평생 남을 미안함이 생겼다고 전했다. 비자 문제만 해결됐어도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을 그의 아들은 뒤늦게 전공을 바꿔 엔지니어 공부를 했고, 나중엔 어떻게든 사업을 잇기 위해 전문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마지막 퍼즐은 결국 ‘비자’였고, 모든 게 완성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제는 한국에 정착한 아들은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A씨와 그의 아내는 2017년 딸이 결혼을 할 때도 한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딸이 엄마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찾았는데,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그렇게 다시 생이별을 했다. 가족은 결국 2024년 겨울, 한국행을 선택했다.
A씨는 “입출국만 자유로웠어도 미국에 정착하려 했다. 한평생을 바쳐 일군 터전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비자 문제가 생긴 뒤로는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문제 해결이 안 되니까 아이들도, 손자들도 너무 오랜 시간 볼 수 없었다. 가족들과 멀리 있다 보니 한국이 점점 그리워졌다. 미국에서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졌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 이민 관련 정책이 한층 강경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이전부터 한국에 가야겠다는 막연한 결심이 있었지만, 그의 당선이 이를 좀 더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물론 그전부터 주변 한인들에게 하도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거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의 일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한국 미워해서 아냐”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 수백 명이 이민국 단속에 걸려 귀국길에 오르자 한국 사회는 공분했다. “우리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세웠는데, 이런 대우를 받다니.” “한국인이라서 더 가혹하게 당한 것 아니냐.” 언론과 소셜미디어(SNS)에는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작 워싱턴에서 30년 터전을 잃은 A씨는 고개를 저었다. “이민국은 한국 사람이라고 더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한다. 법에 나온 그대로, 교본대로 하는 것뿐. It’s not about you(너에 대한 문제가 아니야). 한국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그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한국 경찰과 미국 경찰은 다르다. 말로 타이르거나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냉정하게 매뉴얼대로만 한다. 그게 법치국가의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미국 이민국 공무원이 총격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만큼 현장 단속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이민국 요원이나 경찰들의 최우선 수칙은 자기 목숨을 지키는 일이다. 하다못해 교통법규 위반 단속 때도 운전자가 총을 꺼낼 수 있다는 전제로 움직인다. 그래서 면허증을 보자고 할 때도 가장 안전한 위치에 서서 요구한다. ‘하지 마라’고 하면, 가만히 서 있어야 하고, 수갑을 채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모든 게 다 자기보호 때문이다.”
문화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짚었다. “한국엔 ‘빨리빨리’ 문화가 팽배하다. 실제로 투자를 하겠다고 한 뒤 아무리 급하더라도 정식 비자를 받아서 입국했어야 한다. 이민국은 이민국의 일을 하고, 기업은 기업의 일을 하고, 주 정부는 주 정부의 일을 할 뿐이다. 반면 미국은 ‘느릿느릿’한 나라다. 미국에선 여러 가지 가치 충돌이 다반사로 발생하지만, 그것에 대해 (미국인들은) 결국 다 이해한다.”
문제는 이런 차이가 감정적 오해로 번진다는 것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우리를 무시한다’는 서사가 쉽게 형성된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법을 어겼으니 처리했을 뿐인데 왜 피해자인 척하느냐’는 냉정한 태도가 나온다.
A씨는 “오히려 비자 없이 들어간 것에 대해선 분명히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고, 차별이나 과잉 단속이 아닌데 한국식의 감정적 해석이 오해를 부르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람들이 너무 감정적이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법적 테두리나 일관된 것을 집행하기엔 충돌되는 경우가 많다.”
한인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물론 일부는 테슬라 구매 취소 등으로 분노를 표했지만, 미디어나 SNS를 통해 전달되다 보니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대다수는 “원래 그렇게 하는 나라”라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게 현지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화 차이 이해해야
다행히 정부는 적극적인 대응으로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앞으로 워킹그룹을 비롯한 각 실무 협상에서 비자 문제 확대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먼저 상용 비자인 B1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의 한국 할당 신설,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 비자인 E4를 신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한국 근로자들이 미국 근로자들을 교육·훈련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인력이 미국 공장 건설을 위해 들어와야 할 현실적 필요성과 시급성에는 공감했지만, 동시에 미국인 고용과 훈련을 강조했다. 실제로 구금된 한국인들의 석방 절차가 하루 미뤄진 것도 이런 협의 과정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는 한인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비자를 취득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또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를 잘 드러낸 사례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H1B 비자의 경우 발급 자체가 추첨제로 진행된다. 해마다 8만5000개의 비자가 풀리지만 전 세계의 신청자는 50만명에 달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1400명)·호주(1만500명)·싱가포르(5400명) 등은 각각 자국민 전용 쿼터를 확보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로(0)’다. 이런 구조적 한계가 편법을 부추겼고,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위험에 노출시켰다.
한인 노동자들이 편법을 사용해 미국에서 일해온 이유도 이런 사정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정식 취업 목적 비자가 필요하지만, 취득 요건이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려 그간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전자여행허가(ESTA·무비자)나 B1 비자를 이용한 출장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A씨는 미국의 의회 시스템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비자나 이민법을 바꾸는 문제는 반드시 미국 의회라는 제도적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현지에는 비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 모두가 순서를 지키고 있다. 유연한 것도 좋지만, 일단 상황을 해결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지만, 정해진 법을 따라야 전반적으로 베네핏이 돌아오는 미국의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조지아주 사태는 단순히 한국의 피해자 서사로만 기록할 일이 아니다. 양국의 법과 제도, 문화가 충돌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필요로 했던 전문 인력과 한국이 기대했던 투자 효과가 함께 사라졌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근로자 파견은 결국 비자제도의 개혁 없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두 나라 간 정서와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워싱턴주 가족은 이민을 통해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는 교훈을 배웠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단기적·감정적 대응으로 제도를 급히 손본다면 또 다른 부작용, 제3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제도와 절차를 이해하고, 그 틀 안에서 차분히 협상하며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다시는 같은 상실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