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사람들이 생선을 내다 판 돈으로 팀을 꾸렸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싸구려 축구화를 신었다. 그것도 못 구하면 그냥 운동화를 신었다. 유니폼은 매주 빌려왔다. 빌려 입은 유니폼과 몇 켤레뿐인 양말 색깔이 다르면 규정 위반이었다. 심판이 지적하면 그냥 양말을 벗고 뛰었다. 천막을 둘러친 홈 경기장은 돌부리가 박힌 맨땅이었다. 그물도 없이 파이프로 만든 골대를 세우고 흙을 채운 페트병 사이로 패스 훈련을 했다. 원정을 떠나는 날이면 콩나물시루 같은 페리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간다. 트럭 짐칸에 앉지도 못하고 몇 시간을 달렸다. 묽게 끓인 차에 고구마 몇 덩이로 아침을 때우고 경기를 뛰었다.
그래도 그들은 축구를 향해 웃었다. 달리는 트럭에선 일어선 김에 노래를 부르며 여로를 달랬다. 이발사가 본업인 감독이 모래 위에 전술을 그리면 물고기를 잡다가 모인 선수들은 어깨 걸고 기도를 했다. 울퉁불퉁한 땅 덕에 운 좋게 골을 넣기도 했고, 가끔 오는 승리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춤을 췄다. 하지만 축구가 그들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돈으로는 42만원. 다음 해 새롭게 개편되는 리그 참가비가 너무 비쌌다. 프로 구단이라면 당연할지 몰라도,아프리카에서도 빈국 축에 드는 말라위, 거기서도 변방인 인구 6000명의 섬 치주물루. 그곳의 축구팀 ‘치주물루 유나이티드’. 그들의 사정으로는 마련할 수 없는 돈이었다.
이동훈(24)씨가 이곳을 찾아 일주일을 보낸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씨는 이들과 동고동락한 이야기를 자신이 운영하는 축구 여행 유튜브 채널 ‘창박골’에 담았다. 그런데 이 순박한 사람들이 더는 축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이 이상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불모지 운동가(運動家)’들의 이야기란 어쩌면 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씨가 그들을 지나치지 못한 순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생겼다. 그는 이 팀을 ‘샀다’. 24살 한국인 대학생 청년이 아프리카 외딴섬 작은 축구단의 구단주가 된 것이다. 그를 지난 9월 14일 만났다. 이씨의 이야기와 치주물루의 이야기가 만나 동화가 쓰이고 있었다.
아프리카, 축구, 낭만
축구는 어디에나 있다. 이 간단한 명제를 그만큼 증명해 본 사람은 없다. 구독자 7만명 남짓한 그의 유튜브에 담기는 것은 유럽의 대형 경기장에서 수백억 연봉을 받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아니다. 그가 찾는 곳은 비가 오면 찰방찰방 물이 고이는 저급 잔디가 깔린 곳, 맨발로 뛰어도 공을 찰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청년들이 있는 곳, 말간 눈의 아이들이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관중에게 비닐봉지 생수를 파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남들도 다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축구팀을 고를 때도, 여행지를 고를 때도 그랬죠.” 이런 반골 기질을 시쳇말로 ‘홍대병’이라고 한다. 이씨가 치주물루에 간 이유도, 그가 불모지의 축구를 조명하는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이 홍대병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2002년생인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방황했다. 그러다 21살 때 우연히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대륙 북서부의 모로코와 모리타니를 찾았는데 한국에서 이럭저럭 살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폐차장에서 나올 것 같은 차들이 굴러다니고, 너무나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고 회상했다.다시 아프리카로 가고 싶어졌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에서 1년간 일한 뒤, 뒤늦게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국제개발협력을 전공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그저 아프리카 여행 유튜버가 되려고 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단다. 그냥 공부나 할까 고민하던 시절 콘텐츠 촬영을 위해 모리타니를 다시 찾았다. 호스텔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곳의 축구 리그를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이 여기저기 맨발로 축구를 하는 동네였다. 촬영도 할 겸 제안에 응했다. 그가 보러 간 경기는 모리타니 1부 리그인 슈퍼 D1의 ‘ASC 잔드림’과 ‘FC 테브라흐 제이나’의 맞대결이었다. 600원 남짓 하는 티켓으로 경기장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색달랐다. 야간 경기에 경기장 조명이 꺼지는 사고가 나도 관중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기장 안 노점에서는 마음씨 좋은 중년의 부인이 감자와 달걀을 쌓아놓고 즉석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줬다. 꼬마들이 북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삼삼오오 놀러왔던 아이들이 한자리로 모여 응원을 주도했다. 빈국의 아이들도 웃게 하는 것이 축구였다. 이씨는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 경험을 영상에 담았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아무도 만들 수 없는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가 방문한 축구 리그는 그야말로 아프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 전역’이었다. 세네갈, 기니비사우, 기니, 방글라데시, 인도, 탄자니아, 짐바브웨…. 감비아 2부리그 경기장에 가니 아이들은 경기장에서 구걸을 했고, 선수들은 승리수당 6000원을 받고 경기를 했다. 지면 돈을 받지 못한다. 시에라리온 1부 리그 경기장에선 아이들이 비닐 팩에 든 생수 바구니를 머리에 지고 팔았다. 꼬깃꼬깃 거스름돈을 꺼내는 모습이 애처로워 잔돈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서 축구는 희망 같은 무엇이었다. 나무로 조악하게 짠 로커룸에 가면 유럽에서 뛰는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축구화 끈을 동여매는 젊은 선수들이 있었다.
기자가 우문을 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풍경이 다 비슷하지 않은가”. 이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프리카는 넓은 대륙이에요. 나라만의 사정과 문화가 다르니까요. 서포터스들이 응원하는 방법도, 다루는 악기도 굉장히 다른 경우가 많고요. 축구장 환경도 어디는 모랫바닥이고 어디는 흙바닥이고. 그리고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 파는 아이들 같은 모습은 서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었어요. (빈곤의 강도가 더 세니) 그런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인 거겠죠.”
어디에나 있는 축구에 아무나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씨 특유의 ‘홍대병’은 열악한 환경의 핍진한 이야기를 만나자 낭만이 됐다. 이따금 영국 같은 선진국을 가서도 7부 리그 팀의 짠내 나는 사연을 찍어서 왔다. 몽골 프로리그 꼴찌 팀과 태국 3부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찾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씨의 채널에서 딱 한 번 그 원칙(?)이 깨진 적이 있는데, 그가 응원하는 K리그의 FC안양이 1부로 승격한 날의 영상이다. 그의 채널 이름인 창박골부터가 경기 안양의 지명이니 그에 대한 애정도 짐작할 만하다.
어부들의 섬, 그리고 축구의 섬
그러다 찾은 곳이 말라위였다.
“대학생 신분이라 여름방학 때 촬영할 곳을 찾고 있었어요. 아프리카는 여름에 축구를 하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덥기도 하거니와 보통 ‘추춘제’를 택해서 시즌이 가을에 시작해 봄에 끝나거든요. 그런데 말라위는 특이하게 시즌이 4월에 시작해 연말쯤 끝나요. 말라위에 와서 페이스북을 훑어보니 6000명 남짓 사는 작은 섬에 리그를 뛰는 팀이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는 어떻게 축구를 하는 걸까 정말 궁금했죠.”
아프리카 남동부, 탄자니아 남쪽에는 말라위라는 길다란 나라가 있다. 대륙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인 말라위호가 이 나라의 젖줄이다. 수도 릴롱궤에서 자동차로 8시간을 가면 북쪽의 항구 은카타베이가 나오고, 거기서 또다시 5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치주물루섬이 나온다. 울릉도 7분의1 크기지만 인구는 오밀조밀 6000명이나 사는 아름다운 섬. 이 섬의 남자들은 대개 호수에서 나오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다. 물고기를 낚으며 하루를 보내는 젊은 어부들이 사랑한 것이 다름아닌 축구였다. 지역 주민들이 십사일반 마음을 모아 ‘치주물루 유나이티드’를 결성해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씨가 본 치주물루는 그때껏 다닌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축구팀 가운데 가장 열악했다. 단순히 경기장이나 장비가 부족하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훈련 수당, 경기 수당도 없었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도 코치들도 받는 돈이 없었다. 선수들을 훈련 세션에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가족들을 먹여살리려면 호수에 나가 어획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치들은 경기가 없는 날 다른 지역 팀을 찾아가 유니폼을 빌리는 것이 일이었다. 쓸 수 있는 축구공도 단 하나였다. 사실 그가 방문해 영상을 업로드했던 2024년에도 팀은 이미 자금난에 공중분해 위기였다. 이씨는 “헤어질 때 내가 100달러를 지원해줬고, 영상을 본 후 뭐든 도와주고 싶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며 “잠시 후원 계좌를 열어 모인 120만원 정도를 가지고 작년 리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씨는 치주물루와 동행하며 세 경기에서 2승 1패하는 것을 지켜봤다. 고된 원정길에도 따라갔다. 섬에 항구가 없어 육지로 가는 페리에 목선을 타고 접근해 배에 오른다. 5시간 배를 타고 육지로 가면 1톤 트럭에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30여명이 올라야 한다. 앉으면 자리가 모자라 서서 가는 것이다. 그것도 트럭 기사가 늦어 항구 대합실에서 노숙하는 시간을 겪는다. 그렇게 오른 트럭에서도 선수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웃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원정경기 하나를 치르면 24시간 뒤 또 한 경기를 치른다. 동행 자체가 고생이었으니, 언어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1부리그를 꿈꾼다, 치주물루의 기적
“콘텐츠를 찍고 헤어졌지만 연락은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근데 올해 초 연락을 해보니, 리그 참가를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리그 참가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요. 말라위의 최저 월급은 몇 만원 되지 않는데 참가비는 40만원이 넘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작년에 그렇게 동고동락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축구를 이어나가는 선수들이 더 축구를 못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졌어요. 참가비를 사비로 내줬죠. 그런데 그러고 보니 단발적 지원만 한 번 해주면 더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더구나 작년보다 훨씬 돈이 더 많이 드는 환경이 됐다. 그전에는 ‘클러스터’ 방식의 리그가 운영돼 가까운 지역의 팀들끼리만 붙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라운드 로빈(풀리그)’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실상 전국투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유튜브 채널이라도 가지고 있으니, 이를 이용해서 자금을 마련해보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구단주가 되기로 한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운영하던 팀이니 인수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단주가 없었으니 인수랄 것도 없었다. 감독과 코치가 흔쾌히 수락했고, 이씨도 말라위로 날아가 정식 절차를 밟았다. 축구협회는 이씨를 대환영했다. 이씨는 “치주물루와 그 옆의 리코마섬을 묶어 하나의 ‘현(District)’인데, 여기가 불모지다 보니 협회도 반가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섬으로 돌아가 회의를 열었다. 지역의 지도자들과 목사가 모여 그를 구단주로 추인하고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구단주가 된 이씨의 임무는 돈을 모아 치주물루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단신으로 치주물루 유나이티드의 운영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역시 축구팬다운 발상인 ‘유니폼 마케팅’이었다. 스포츠 디자이너로 일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치주물루섬 모양, 어부들이 쓰는 그물, 섬의 일출을 모티브로 유니폼 3종을 만들었다. 이 디자인을 가지고 기업 수십 곳에 제안서를 돌렸다. ‘우리의 이 영화 같은 이야기에 동참해달라.’
“정말 축구 하면 떠오르는 기업은 다 썼어요. 대부분 답이 안 왔죠. 그래도 그 가운데 3곳이 뜻을 같이해 주었고, 유튜브에서 사연을 보고 연락한 곳이 더 있었어요. 합쳐서 7곳의 유니폼 스폰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유니폼 제작사, 양 소매, 가슴, 등 뒤의 두 개까지 후원사의 이름이 붙어 있어요.” 그렇게 제작한 유니폼과 스카프를 판매했다. 준비한 유니폼 300벌이 날개돋친 듯 팔렸다. 이렇게 1년 운영자금이 얼추 마련됐다. 이씨는 치주물루를 돕기 위한 장비와 물자를 챙기기 시작했다. 선수용 유니폼 50벌, 훈련 때 선수를 구별하기 위한 형광 조끼, 페트병을 대신할 훈련용 ‘콘’, 수도 릴롱궤에서 공수한 중고 축구화 25켤레, FC안양에서 지원한 중고 축구공 18개까지.
모두 이씨가 지난 8월 치주물루를 방문해 전달한 것이다. 이씨는 “축구공은 원래 19개였는데, 배 안에서 누가 1개는 훔쳐간 것 같더라”며 웃었다. 다른 구단 코치의 도움으로 도매상에게서 떼어 온 축구화는 추첨을 통해 선착순으로 고를 수 있도록 했다. 구단주가 되어 섬을 다시 찾은 이씨에게 주민들은 성대한 환대를 했다. 그가 오기 전부터 손을 걷어붙여, 볍씨 뿌린 땅에 김을 매듯 경기장의 땅을 골랐다. 잔디 없는 척박한 그라운드에서 돌을 줍고 잡초를 뽑았다.
치주물루는 9월 17일 현재 리그 1위와 승점 7점 차로 뒤져 있다. 언젠가 1부리그로 승격하는 드라마를 쓰는 꿈을 모두가 꾸고 있다. 정말 치주물루의 올 시즌 전력은 작년보다 훨씬 강해졌다. 살길을 찾아 남아공이나 탄자니아로 떠난 선수들의 유출이 있었지만, 옆 리코마현에서 스카우트해온 선수들이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 수당도 줄 수 있다. 1승을 할 때마다 팀 전체에 3만원가량이 돌아간다. 경기 MVP에게는 7000원을 지급한다. 감독과 코치는 ‘자신들은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지만 내년부터는 소액이라도 지급해 주고 싶다는 게 이씨의 마음이다.
치주물루에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잔디’. 1위로 시즌을 마쳐야 2부리그로 승격하는데, 규정상 잔디가 없으면 승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인조잔디는 억 단위라고 하고, 천연잔디는 좀 낫다고 한다”며 “팀이 성장하면 승격을 위해 잔디 구장을 확보하는 게 지상과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면모는 이미 단순한 축구팬이 아니라 구단주의 그것이었다. 이제 이씨는 여름과 겨울방학 때마다 치주물루를 찾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선수들과 부대끼고, 페인트공 출신 공격수의 훈련을 도우며 구단과 함께 성장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이씨가 보내준 사진 몇 장을 들여다봤다. 새 유니폼을 입고 찍은 단체사진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치주물루의 선수들은 이제 섬의 대표다운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입술을 다문 그들의 등 뒤로 해가 뉘엿하게 떨어지는 바닷가가 보였다. 그보다 결연한 행복이 또 있을까. 기자의 마음에도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아, 이씨는 가지고 온 18개의 축구공 가운데 6개를 섬의 초등학교에 나눠주었다. 섬 소년들은 이씨와 치주물루가 함께 꾸는 꿈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자랄 것이다. 그러니 신발을 사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름도 낯선 안양에서 날아온 축구공과 한몸으로 축구를 즐길 아이들은 분명 떡잎부터 남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