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경남 거제 지심도에서 열린 특별한 결혼식. /경남도

“연애하면서 아이가 먼저 생겼고,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결혼식은 더욱더 어려웠죠. 오늘 그동안의 마음의 짐을 더는 것 같습니다.”

19일 오전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심도. 지세포항에서 15분 남짓 떨어진 작은 섬은 이날 특별한 사연을 가진 부부 3쌍의 작은 결혼식장으로 변신했다. 30여 년 만에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50대 부부부터 자녀를 낳고 키우며 미처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30대 부부 등이 주인공이었다. 지난 7월 경남도민을 대상으로 지심도에서 결혼할 부부를 모집했고, 사연이 채택된 3쌍의 부부가 섬을 찾았다. 부부를 축하하기 위해 가족·친지, 친구 등 50명도 함께했다.

19일 오전 경남 거제 지심도에서 열린 특별한 결혼식. /거제=김준호 기자

해발 97m 섬 꼭대기 초록 들판에 하얀 천으로 꾸민 버진로드(신랑·신부가 입장하는 길)가 깔렸다. 과거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건설한 길이 150m, 폭 20m의 비포장 활주로였다. 섬을 상징하는 붉은색 ‘동백’ 조화도 버진로드에 놓였다. 바이올린 선율이 축가를 대신했다.

3쌍의 부부에게는 이날이 더욱 특별했다. 그동안 미뤄왔던 약속을 확인하고, 익숙해져 잠시 잊었던 사랑의 순간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녀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케를 전달하고, 사랑의 서약도 했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신랑 신모(56)씨는 “32년 만에 결혼식을 준비하며 마음이 설렜다”며 “아내가 농담으로 ‘두 번이나 시집가는 게 싫다’고 했는데, 아내가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잘 섬기면서 살겠다”고 했다. 신부 김모(55)씨는 “다시 웨딩드레스를 입으니 마음이 새롭다”며 “그때는 어떻게 결혼했나 싶은데 오늘은 마음도 여유롭고 주변 경치도 보게 된다”고 했다.

연애 시절 아이가 생겨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르지 못했던 30대 부부는 신부 친언니 권유로 섬 결혼식에 참여했다. 신랑 안씨는 “오늘 그동안의 마음의 짐을 더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최모씨 부부는 “최근 싸우기도 하고 사이가 안 좋았는데, 오늘을 계기로 처음 마음가짐으로 잘 살아가겠다”고 했다.

19일 경남 거제 지심도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가진 3쌍의 부부가 결혼식 직후 요트 투어를 하고 있다. /경남도

부부들의 사연을 아는 하객들은 “잘 살아라”며 박수를 치고 축하했다.

3쌍의 부부는 이날 동백숲길을 비롯해 일본식 가옥, 푸른 남해를 배경으로 섬 곳곳에서 평생 남을 웨딩 사진도 찍었다. 이들의 특별한 하루는 요트 투어로 마무리됐다.

이날 부부 3쌍의 결혼식 관련 모든 비용은 경남도와 거제시가 부담했다. 경남도는 인구가 줄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섬에 활력을 되찾아주고자 ‘테마 섬’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거제 지심도(웨딩·휴양), 통영 추도(영화), 통영 두미도(건강·장수), 통영 사량도(도보 여행), 남해 조·호도(생태 체험) 등 5대 테마다.

이번에 결혼식이 열린 지심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에 속한 면적 33만8000㎡의 작은 섬이다. 10가구 15명이 산다. 섬 모양이 ‘마음 심(心)’ 자처럼 생겨서 지심도다. 섬 전체 나무의 70%가 동백일 만큼 울창한 동백숲이 유명해 ‘동백섬’으로도 유명하다. 소설가 윤후명이 지심도에 3개월간 머물면서 단편소설 ‘팔색조’를 썼는데, 이후 윤 선생의 영향을 받은 많은 예술가들이 섬을 소재로 문학·미술 작품을 발표하면서 신비로움이 더해졌고 ‘사랑의 섬’ ‘낭만의 섬’이 됐다. 경남도도 여기에 착안해 지심도에 ‘결혼’이라는 테마를 심었다.

동백이 피는 초봄에는 바다와 어우러진 이국적 풍경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인과 예비 부부의 야외 사진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해에만 3만5000여 명이 지심도를 찾았다고 한다. 경남도와 거제시는 10월엔 다문화 가정 부부, 11월엔 황혼 부부를 대상으로 결혼식을 연다. 이 사업은 내년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내년에는 동백이 피는 시기에 맞춰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상훈 경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지심도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지속 가능한 섬 발전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