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7일 조국혁신당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내 성비위 사건과 관련해 최고위원들과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조국혁신당의 성비위(性非違)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비위(非違)는 법에 어긋나거나 그런 행위이다. 성(性)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말, 행동 등으로 상대방과 불특정 다수 등의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로서, 성비위라 하면 이미 법에 어긋남을 의미한다.

성비위 사건은 아는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쾌한 농담을 하더라도,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가해도, 상사이고, 선배이고, 교수이고, 감독이고, 나보다 어른이라는 권력과 위계로 인해서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아는 관계이기에 순간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신감과 당혹감을 느끼는 사이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필자는 2001년 대학원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인 서강대 김 교수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김 교수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서울대 여학생회 출신 학생은 대학원 피해자라는 유사성 때문에 그보다 앞서 발생했던 신 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한 기시감이 들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렇다. 언론에 보도되는 성비위 사건들의 해결과정을 접하면서, 기시감이라는 미로에서 헤매는 듯하다. 지금 타임머신을 탄 것일까? 분명 세월이 흘렀건만, 우리는 아직 그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1993년 이른바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한국 최초의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희롱 사건이었다. 1994년 4월 18일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내렸다. 당시 사람들은 농담했다. “여자를 잘못 건드리면, 3000만원이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런 농담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박원순·이종걸·최은순 공동변호인단은 1998년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그 후 2020년 7월 12일, 서울시장인 박원순 시장은 전직 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고소당했다. 충격이었다. 신 교수 사건이 있었기에, 그 후 김 교수 사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변호인단 출신이 가해자가 되다니. 김 교수 사건을 보도했던 언론사 기자도 성추행 사건으로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이 또한 성비위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대학 내 교수들의 성추행 사건

2001년 10월 31일, 대학원 원장인 김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회식자리가 있었다. 김 교수는 남학생에게 “대가리 대” 하며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렸다. 머리를 때릴 때 나던 “딱” 소리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 몸이 오싹해진다. 김 교수는 고기 집는 집게로 남학생에게 “내가 이걸로 네 배를 찔러서 돌려서 꺼내면, 내장이 딸려나오는데, 내가 그걸 씹어먹겠다”라고 했다. 여학생인 나에게는 “(네가 결혼하면) 내가 너와 네 남편 사이에서 자겠다” “안고 싶다”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라며 뺨에 키스를 했다. 할 수 있는 저항은 그 자리를 피해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 피해 대학원생이 바로 최김희정, 나였다.

그날 난 7개월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해 3월 17일 김 교수가 술자리에서 성희롱적인 발언과 행동을 했다는 글이대학원 총학생회 게시판에올라왔었다. 김 교수가 나를 불렀다. 대학원이 교육부 감사도 받고 어려운데 불미스러운 글이 올라오면 안 되니, 내게 반박글을 써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반박글을 게시판에 올렸고, 원글과 반박글이 삭제되면서 그 일은 무마되었다. 글이 내려졌어도 학교에서는 김 교수에게 주의라도 주었으리라 기대했다. 더불어 내게는 절대 성희롱·성추행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오히려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 내 업보인가. 그 죄책감 때문에 사건 공론화는 내게 필연이 되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 그래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두둔하지 말라고 설득하게 된다. 인생은 부메랑 같다고.

그렇게 후회하던 중 서울대 성희롱 사건이 우연히 떠올랐다. 카인즈(KINDS)로 뉴스를 검색했다. 200건도 넘는 뉴스가 나왔고 기사를 찾는 손이 떨렸다. 1993년에 발생해 1994년 종결된 줄로 알았던 사건이 1998년 6월 25일 3심에서 500만원 배상판결이 나왔다. 재판이 6년 동안 진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공론화를 하면 이 긴 세월 동안 나는 갇혀 있어야 하는가. 두렵고 답답한 마음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그때 김혜남 선생님을 만났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당신이 먼저 가는 여성이라 생각하고, 사건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교의 여교수님도 “많은 대학원생들이 피해를 입지만, 사생활까지 다 들춰지는 후폭풍들이 무서워 포기하는데, 앞으로 뭘 할 거예요?”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요. 대학원이 너무나 끔찍해요. 교수를 위해 반박글이나 써주고”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교수는 “그러면 후배들을 위해서 선물 하나 남겨주고 떠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더 심한 피해는 여학생들이 공론화하기도 어렵다”는 말에 사건을 외부에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겪은 일은 힘겹지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피해였다고 생각했다.

공론화를 했고 김 교수는 3개월 정직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안식년 1년 기간 중에 포함되었다. 상벌이 구분되지 않는, 이러한 해결책이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김 교수 사건이 재판 중일 때 다른 교수에 의한 피해자가 발생했다. 사건 해결은 그 사건의 해결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지만, 유사사건들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학교의 솜방망이식 처벌로 피해자가 또 발생했다. 그제야 많은 교수님들이 입장을 내고 움직였다. 김 교수 사건으로 인해 학교에는 양성평등상담실이 생겼고, 학칙도 진상규명위원회 9명에 여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대표 3명도 포함되도록 바뀌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학생들도 진상규명위원회에 포함되니 엄청난 개혁이지 않은가. 오히려 학교는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다.

법적으로 김 교수는 성추행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학교 여성위원회에서 김 교수 사건의 의의를 알려주었다. 김 교수가 성추행으로 형사상 기소된 첫 사건이라 했다. 신 교수 사건은 형사사건이 되지 못해 민사로 해결하면서 시간이 더 걸렸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 댓글로 피해자를 공격한 사람도 사이버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았고,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가해도 공론화된 사건이 되었다.

유시민의 개혁당 성추행 2차 가해 사건

재판을 진행하던 중 개혁당을 소개받고 참여하였다. 인터넷 정당이라는 실험적인 제도라 공부에 도움되고, 여성위원회와 특히 대학생위원회가 있어서 대학 내 권위적인 환경이 바뀌는 개혁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연말에 고향 본가에 도착했다. 개혁당 여성위원회로부터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급히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왔다. 중요한 문제는 개혁당 내 일어났던 성추행 사건이었다. 그 당시 나는 교수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 1심 재판에서 승소했고, 2심 구형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 경험들이 당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저 봐라, 저 피해자는 멀쩡해서, 저렇게 자기가 사건도 맡고 있지 않느냐?” 하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로서의 내 개인적 분노까지 투사될까 염려되어 사건일지도 객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정리하려고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사건은 이러했다. 2002년 11월 24일 노무현과 정몽준 사이에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졌다. 후보단일화를 축하하며 당내 두 개 지역구에서 MT를 갔다. 그날 밤 가해자 M에 의해 3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A는 술자리에서 자리를 피했다. M은 여성들 숙소로 들어가서, 잠자고 있는 B를 추행했다. B가 이상한 느낌에 움직이니, M은 방을 나오면서, 문 앞에서 C의 손을 잡고 자기 차로 갔다. 그리고 피해가 발생했다. 세 여성들이 각자 지인에게 얘기했다가 피해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건인데 가해자는 탈당 선에서 해결되었고, 당시 유시민 당대표는 “여성위원회는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고 발언해서 당내 공분을 샀다. 조직은 더 큰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지적 연대’를 강조한다. 피해자들도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구성원들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가 조직이 존재하는 명분을 주는 것이기에 공론화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피해자인 동지들의 피해는 희생시킨다. 무엇을 위한 목표인가. 민주(民主). 주인인 구성원들의 안전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보호받지 못하는 조직이,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조직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비위 사건 해결과정은 다른 문제해결 과정에도 투영된다. 조직원들 간에 공생 관계의 사슬들이 불합리하게 작동하고, 다른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개혁당을 탈당했다.

문제제기가 개·돼지의 생각?

조국혁신당의 강미정 전 대변인이 지난 9월 4일 탈당하며 폭로한 성비위 사건은 오히려 그동안 진보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라 본다. 지난 4월 당내부에서 두 건의 성비위 사건이 공식접수되었고, 두 사건은 각각 다른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루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첫 번째 사건은 지난해 7월 발생했다. 여성 당직자가 택시 안에서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외부로는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라 표현하지만, 내부에서는 자세하게 사건 경위들이 보고되게 마련이다. 사건이 무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 사건도 지난해 12월 12일 조국 전 장관의 징역 2년형이 확정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당일, 노래방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두 사건 사이에 5개월이라는 시간 간격이 존재한다. 첫 성비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이 신속하게 접수될 곳이 있고 해결 과정이 당내에서 공론화되고 제대로 해결되었다면, 두 번째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당윤리위원회와 여성위원회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력자들도 제명되거나 ‘당직자 품위유지 위반’ 명목으로 징계를 받는 등 직간접적으로 ‘2차 가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당내 처리 방식들은 오히려 ‘동지적 연대’를 파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거기에 더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의 발언도 공분을 샀다. 성비위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이들에게 “개·돼지의 생각”이라 발언했다. 개혁당 내에서 유시민 전 당대표의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는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성비위 사건의 내용을 보면, 가해자들은 생각에 그친 것이 아니라 ‘개·돼지의 행위’를 하지 않았나.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정의를 주장하면서 당대표의 징역이 확정된 날에 노래방을 가고 성추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에게는 인면수심의 행위가 아닌가.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조직의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고, 조직 내 권력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회로 확장되어 민주주의적 권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의 여성위원회 고문이자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강미숙 변호사가 10장에 이르는 장문의 손편지로 당이 처한 문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복역 중인 조국 전 대표에게 제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한다. 손편지가 아니라 프린트물이라 하더라도, 결정할 권한은 없었다 하더라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위치이다. 당명도 ‘조국혁신당’이라 조국이라는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으며, 창당의 출발점이자 구심점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조국 전 대표는 구속 중에도 해결을 위한 의지와 입장을 표명했어야 한다.

강미정 전 대변인도 조국이 사면되는 날을 기다렸다고 하니, 이 또한 조직 내 문제해결 시스템이 전혀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소수의 인물에게 무한 권력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며, 서로 보은의 관계에 있는 구조가 결국 또 다른 성비위 사건들을 묵과해주고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표가 아닌 평당원이라도, 구성원으로서 합리적 의견을 낼 때 귀기울여야 하는데, 전 대표가 의견을 내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국 전 서울대 법학과 교수, 최강욱 전 변호사 등 모두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김 교수 성추행 사건은 2002년에 교수가 형사로 기소된 첫 사건이었다. 세월이 흘렀건만, 그보다 더 심한 성비위 사건에 대해서 침묵하고, 문제제기에 대해 개·돼지의 생각이라고 말하는 율사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성비위 사건 해결에 대한 제언

성비위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중심주의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특히 성비위 사건은 내용 자체가 말하기 쉽지 않은 묘사들이 많다. 피해자의 이야기만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해자가 보호받으며 정황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그 행위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즉각 신고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지위를 보호받으며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제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사건이 접수되면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알 수 있도록 성비위 사건이 접수되었음을 공지하여야 한다. 사건이 발생하여 진상조사를 하고 있음을 알려, 유사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 당부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모든 절차와 과정들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서 구성원들이 합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동지적 연대’가 이루어지고, 오히려 조직 내 결속력을 다질 수 있다. 조직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해일이 일고 있는데 아직도 조개 줍고 있느냐”는 개·돼지 같은 발상을 들으며 분노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성비위 사건을 변론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언론사 기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성비위 사건을 변론하고 보도하는 해결과정에 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성비위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망, 개인적 공명심을 위해 성비위 사건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해결과정에서 조직이 보호하고, 권력이 방패가 되어주고,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고, 피해자들도 수치감에 침묵하는 것을 보며,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기시감의 미로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최아룡_‘최김희정’이라는 예명으로 언론과 인터넷에 알려진 최아룡씨는 2001년 이른바 ‘서강대 김 교수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싸움에 나선 인물이다. 대학 내 교수 성추행 사건으로 형사 고소를 통해 최초로 해당 교수에게 벌금을 선고받게 했다. 당시 1993년 서울대 ‘신 교수 사건’으로 교수와 학생 간의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상태였다. 신 교수 사건이 민사 소송을 통해 성희롱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면 김 교수 사건은 형사 처벌을 받게해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례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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