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당시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도부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당내 성비위 및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스1

2024년 12월 12일, 조국혁신당의 조국 전 대표에 대한 최종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날이었다. 수장을 잃게 된 조국혁신당 당직자들은 그날 저녁 ‘침울해하지 말고 힘내자’는 취지로 단합대회 겸 회식을 했다. 저녁 장소는 신촌의 한 오리고기 식당. 조국혁신당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김보협 전 수석대변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이 식당은 오리고기뿐만 아니라 갖가지 제철 음식을 주인이 직접 손질해 제공하는 ‘오마카세’ 형식의 장소였다. 식당 주인은 ‘친구(김 전 수석대변인)의 지인들이니 특별히 준비했다’는 식으로 제철 생선회와 안주들을 혁신당 당직자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이날 자리에는 김 전 수석대변인과 피해자인 강미정 전 대변인을 포함해 윤재관 수석대변인,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 한가선 대변인, 최우규 언론미디어실장, 공보국 직원 이나현씨 등이 함께 자리했다. 술이 돌았고, 사람들이 하나둘 취해갔다. 조국 전 대표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날이어서였는지 술을 마시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 혁신당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식당 내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에는 다같이 ‘떼창’을 했다고 혁신당 내부 인사들은 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술병은 쌓여갔고 노랫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웃 가게에 피해를 우려한 식당 주인이 급기야 “자리를 옮겨주셨으면 한다”라고 요청했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이들은 식당 바로 앞에 위치한 룸 형태의 노래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공보국 직원 이씨는 노래방에는 가지 않고 1차 식사 자리에만 참석했다. 이후 옮긴 노래방에서도 이들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김 전 수석대변인의 행위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강 전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김 전 수석대변인이 자신의 허리를 팔로 감싸는 등 강제적으로 신체접촉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 전 대변인은 지난 9월 4일 조국혁신당 탈당 기자회견 자리에서 “약 10개월간 상급자에게 지속적인 신체접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노래방 성추행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범죄가 아닌 김 전 수석대변인의 상습적 행위였다는 것이 강 전 대변인의 주장이다. 경찰은 당시 노래방 현장의 사진들을 참석자들로부터 입수하고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술자리에 당의 카드가 사용됐다는 의혹도 혁신당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는 지점이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1차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중간에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이 ‘여기까지는 내가 계산했다’며 최초로 결제를 했다고 한다 이후 한가선 대변인이 추가되는 술과 안주를 계산했고, 마지막에 자리를 옮기면서 윤재관 수석대변인이 계산을 했다. 당시 이들 모두 업무추진비 목적으로 쓰이는 당의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12일 성비위 사건이 발생한 당일 조국혁신당 당직자들이 방문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음식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피해자 “상습적 행위”

강 전 대변인이 올해 4월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에는, 지난해 7월경 김 전 수석대변인이 강 전 대변인과 함께 탑승한 택시 안에서 강 전 대변인을 추행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현장에서도 김 전 수석대변인은 강 전 대변인을 대상으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전 수석대변인에 대한 성비위 사건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조국혁신당 소속 한 관계자는 “노래방 사건을 포함해 택시, 광화문 광장에서의 일들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 윤리위원회를 거친 후 현재 김 전 수석대변인은 당으로부터 제명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그의 성추행 범행들이 사실이었음을 당에서 인정한 셈이다.

연이은 추행, 처벌은 ‘솜방망이’

조국혁신당의 성추문은 김 전 수석대변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당원권1년 정지 상태인 신우석 전 조국혁신당 사무부총장 역시 또 다른 성비위 가해자로 지목된 상황이다. 지난 4월 5일 신 전 사무부총장은 당직자 채용 면접을 여의도의 한 술집에서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면접 지원자이자 피해자인 20대 여성 A씨를 대상으로 성희롱 및 추행을 저질렀다. 신 전 사무부총장은 A씨의 손을 잡고 성적인 발언을 했고, 다음날인 6일 A씨에게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신 전 사무부총장의 범행과 관련해서 추가 정황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지도부 모 의원실 소속의 보좌진은 주간조선에 “당시 일(성추행 사건)에 대해 당 비서관들 사이에서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신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징계가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명 조치가 내려진 김 전 수석대변인과 달리 신 전 사무부총장은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징계만 받은 상태다. 조국혁신당 소속 한 당직자는 “신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현 징계 수위가 부적합하다는 말이 많다”며 “해당 피해자는 당시에 보복이 두려워서 고소를 취하했을 정도로 무서워했고 수개월 동안 다른 곳에 취업 준비를 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부총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 내 특별감찰반 행정관과 특별감찰반장 출신으로, 조국혁신당 창립멤버이자 ‘친조국’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신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징계 수위가 낮게 책정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가해자들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조 전 대표, 신 전 사무부총장과 함께 근무했다.

조국에게 10장 손편지 보냈으나 묵묵부답

이번 성비위 사건을 대하는 조국혁신당의 대처에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성비위 사건 신고가 당에 최초 접수됐을 당시, 약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가해자들에 대한 업무 배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강 전 대변인이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했던 것 역시 당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6월에는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소속 모 보좌관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조국혁신당 소속 한 당직자는 “보좌관을 폭행한 가해자는 당내 직장내괴롭힘 담당 부서장이자 총무국장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며 “성비위 사건 가해자들이 총무국 소속인지라 그들의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폭행 가해자 혐의를 받은 해당 인물은 경찰에 고소된 후 현재 검찰 송치 상태로 알려졌다.

강 전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을 계기로 논란이 본격 공론화되자, 오히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당 핵심부의 시각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 출신인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은 지난 9월 5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나와 ‘당내에서 언어 성희롱이 있었다’는 진행자 발언에 “성희롱은 범죄는 아니고,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어폭력은 범죄는 아니고, 관련 사건이 지금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장은 가해자가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황현선 사무총장 등과 가까운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약한 처분을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엔 “수용하기 어렵다”며 “당직자 전체가 50명이 안 되고 정무직 당직자가 10명 남짓인데 서로가 다 서로의 최측근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당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분에 대해 별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제명 처분을 했고, 당의 절차는 종결이 됐다”며 “제명 처분이라는 게 민간으로 치면 사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장의 이 같은 발언은 2차 가해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지난 7일 부총장직을 내려놨다.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 황현선 사무총장, 이해민·차규근·황명필 최고위원 등도 이날 모두 사퇴했다. 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고, 성비위 사건 후속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서왕진 원내대표는 “의원 다수가 조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에 추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처 역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성비위 사건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강미숙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고문은 “지도부의 사퇴 행보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며 “조 전 대표에게 손편지를 10장 넘게 써서 보냈지만 한 번도 답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더 수평적인 구조로 제3자 위원장이 낫다”고 말하며 조 전 대표 체제의 비대위 구성을 반대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은 지난 11일 오후 당무위원회에서 조 전 대표를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조 전 대표는 전날 의원총회를 통해 비대위원장으로 단수 추천됐지만 이에 대한 입장을 따로 내지는 않았다. 지난 4일 이후 소셜미디어(SNS) 활동도 멈췄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