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는 길이라 안 힘들어요. 암 환자로 안 보이죠?”
지난 8일 오후 12시 유현주(52)씨가 동대문구 한 아파트 둘레길에 나와 흰 러닝화 끈을 조였다. 유씨는 작년 6월 자궁내막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연명 치료를 준비하라”고 할 정도였지만, 이날 유씨는 아파트 둘레길 800m를 5분 37초 만에 달렸다. 30도 가까운 날씨에도 숨을 헐떡이는 기색이 없었다.
유씨는 암 판정을 받은 직후엔 요양 병원에 입원해 처음 서너 달 정도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아서 더 아픈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0월부터 하루 1000보 걷기를 시작했고, 두 달 뒤 퇴원할 때 3000보까지 늘렸다.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12㎝ 넘던 종양이 6㎝ 크기로 줄었다. 올해 6월 하루 1만보로 늘린 뒤부터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유씨는 “내 몸을 위해 내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암이 악화해도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달리는 암 환자가 늘고 있다. 달리기가 체력을 강화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가 만난 암 환자들은 “달리기를 통해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했다.
지난 9일 오후 6시 30분 김해영(46)씨는 세 자녀 정예준(10)·정예찬(7)군과 정예나(5)양, 남편 정호준(45)씨와 함께 집 근처 광진구 광나루 한강공원을 찾았다. 이들은 광진교 북단부터 구리 방면으로 이어지는 2km 구간을 왕복했다. 김씨는 유방암 1기 판정을 받고 지난 7월 수술로 오른쪽 가슴과 팔의 림프절 9개를 절제했다. 그런데 수술 바로 다음 날부터 맨손 체조를 시작했다. 김씨는 “주변 유방암 환자 중 나보다 림프절을 많이 절제한 사람도, 나만큼 팔 운동 능력을 빠르게 회복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이틀에 한 번 가족들과 한강을 달린다.
처음 의료진이 달리기를 권했을 때 김씨는 병이 악화할까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 한 달 뒤부턴 상처가 아물어 운동해도 괜찮다”는 의사의 권유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김씨는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에도 크게 피로하지 않은데, 달리기로 근육량이 늘어난 덕분인 것 같다”며 “다른 환자들과 대화할 때마다 달리기를 권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도 암 환자들의 ‘달리기 인증’이 유행이다. 주간 달리기 기록, 마라톤 완주 영상 등을 올리는 식이다. 암 환자 온라인 카페에도 “올해 버킷리스트는 5km 마라톤 완주” “함께 뛸 환우를 찾는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발표된 임상 연구에 따르면 항암 치료를 마친 뒤 3년간 운동 프로그램을 시행한 대장암 환자들은 재발 위험이 28%, 사망 위험은 37% 감소했다. 또 국립암센터가 최근 국내 암 환자 21만50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운동하지 않은 환자보다 중강도 운동을 한 환자는 사망률이 25%, 고강도 운동을 한 환자는 3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와 연세암병원 암예방센터는 오는 11월 8일, 제1회 암 환자 마라톤 대회 ‘온코런(OncoRun)’을 개최한다. ‘온코런’은 ‘Oncology(종양학)’와 ‘Run(달리기)’을 결합한 표현이다. 운동이 암 예방·재활·생존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대회의 취지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5km 달리기 또는 3km 걷기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안산둘레길까지 완주한다. 연세대는 참가자 전원에게 러닝 교육과 근력 운동 교육 프로그램을 사전 제공한다. 참가비는 5만원이다. 행사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금액이 연세암병원 암 예방 연구 기금에 기부된다.
박지수 연세암병원 암예방센터장은 “달리기 등 체계적인 운동은 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여줄 뿐 아니라 피로와 불안을 줄여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며 “암 환자는 달리기 시 근력 운동을 함께 하면서 저강도에서 고강도로 점차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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