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네팔 출신 외국인근로자들이 입국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산재 못 받으면 저 죽어요.”

지난 8월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아지트(40)씨는 말을 끝내자마자 기침을 크게 했다. 그는 3년째 ‘간질성 폐질환’을 앓고 있어 인터뷰 내내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폐암의 예후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이 병은 폐 조직에 염증이나 섬유화가 생겨 폐를 딱딱하게 만든다. 아지트씨는 이로 인해 폐 기능의 40%를 잃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아지트씨는 2021년 2월 경기도의 한 농기계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당시 쇼트 공정 글라인딩 작업을 맡았던 그는 날마다 자욱한 쇳가루 속에서 금속을 깎았다. 공장에 취업한 지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침을 했더니 검은 가래가 나왔다. 아지트씨는 작업할 때 쓰는 면 마스크를 방진 마스크로 바꿔 달라고 반장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반장은 “너 거지야? 네 돈으로 사!”라며 아지트씨를 향해 호통쳤다. 그 후 아지트씨는 2층 계단조차 오를 수 없을 정도의 호흡곤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상을 느낀 아지트씨는 2021년 11월 안성성모병원을 찾아 흉부 CT를 찍었다. 결과가 나오자 의사는 그를 더 큰 병원으로 보냈다. 일주일 후 삼성서울병원은 아지트씨에게 “얼마 못 살아요”라는 말과 함께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내렸다.

병원비도, 한국에 기댈 사람도 없는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산업재해보상’뿐. 2022년 1월 그는 사업주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험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를 신청했지만, 2년 뒤인 2024년 2월 불승인을 받았다. 산재 신청 후 8개월 만에 진행된 역학조사 결과, 간질성 폐질환이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아지트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24년 7월 산재 불승인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산재 인정을 향한 기다림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일터에서 다치면 산재 보상을 받을 권리. 누구에게나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그의 세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깝지만 너무나 먼 ‘산재 보상’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국내 산업에 도움이 되고 고용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반발이 없다면 중소기업에 외국인 인력을 최대한 많이 늘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커지는 이주노동자 수요에 비해, 정작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실제로 근무 현장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2023년 경기도외국인인권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관리자, 상사, 사장으로부터 폭행, 폭언(욕설, 고함 등), 협박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이주노동자는 75%에 달했다. “관리자, 상사, 사장이 인격을 모욕하거나 비하,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한 적이 있다”도 59%에 이르렀다.

사업주들이 가장 꺼리는 상황인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했을 경우’엔 협박 수위가 더 높아진다. 전국의 이주노동자를 돕고 있는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노동자가 산재를 공식적으로 신청해 승인을 받으면 치료 기간 동안 작업에 투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며 “오른손 손가락이 잘렸으면 왼손으로 하라는 식으로 무리하게 일을 시키는 사업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여전히 공장 내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절반은 불법 시설”이라며 “산재 신청을 받은 조사관이 현장을 방문하면 이런 불법 행태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산재 신청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지트씨도 산재 신청 후 폭언을 들었던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산재(산업재해)라는 걸 알려줬어요. 산재를 신청하고 1~2주 지나니까 (근로복지)공단에서 우리 공장으로 연락이 왔어요. ‘여기에 산재 신청한 사람 있는데’라고요. 그랬더니 공장 이사님이 1시간 반 동안 ‘너 왜 산재 신청했어? 취소해’라면서 저를 협박했어요.” 게다가 아지트씨는 일종의 ‘합의서’ 같은 종이서류에 사인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아지트씨. photo 공주경 기자

사업주 눈치 볼 수밖에 없어

이주노동자도 국내 노동자처럼 독자적으로 산재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고용허가제에 따라 사업주가 고용 연장에 대한 승인 권한을 갖고 있고, 사업장 변경 횟수도 제한돼 있어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라는 선택지를 쉽게 택하기 어렵다. 충분히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사업장을 바꿔야 하는 경우엔 결국 사업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도외국인인권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사업주들은 비전문취업(E-9) 이주노동자의 재고용 체류 기간 연장을 두고 폭언과 협박성 발언을 일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너 나가면 비자 없앨 거다” “일 못 하면 연장 안 해주고 너희 나라로 보낸다”는 식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가이한(가명·30)씨도 아지트씨처럼 산재를 신청했다가 사업주에게 취소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경기도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던 가이한씨는 올해 3월 공장 롤러에 손이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손등뼈가 골절되고 근육이 파열돼 병원에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사업주는 그에게 노동을 강요하며 “산재 보상을 신청하면 방글라데시로 쫓아낼 수 있다”고 협박했다.

가이한씨는 절박한 마음에 한국인 행정사를 소개받아 자신의 산재 문제를 의뢰했다. 그러나 해당 행정사는 ‘산재 보상을 신청하지 않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공장 측과 합의하도록 유도했다. 가이한씨는 결국 김 대표의 도움을 받아 산재 보상을 신청해 승인을 받아냈지만, 여전히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가이한씨는 “3년 비자가 끝나면 다시 연장을 받아야 한국에 남을 수 있는데, 사장님이 해주지 않으면 곧장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며 “사장님 눈 밖에 나는 게 가장 두렵고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가이한씨의 사례가 그나마 긍정적으로 풀린 경우였다면, 아지트씨는 더 큰 ‘부당함’에 맞닥뜨려야 했다. 산재를 신청하고 난 뒤 역학조사관이 현장에 오기까지 무려 8개월이 걸렸는데, 그 사이 사업주가 과거의 열악했던 근무 환경을 통째로 바꿔버린 것.

아지트씨는 “공장 사람들이 ‘아지트는 쇳가루 먹는 일 5%밖에 안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일했을 때 70~80% 쇳가루 마셨어요. 나 비디오랑 사진도 있어요. 그 사람들이 완전히 거짓말했어요”라며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먼지로 가득한 공장 사진들을 보여줬다. 실제로 주간조선이 입수한 아지트씨의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회신서’에서도 ‘금속 분진의 약 9개월 동안의 누적 노출량은 미미하다고 판단된다’는 심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책에서 실종된 ‘이주노동자’

아지트씨와 가이한씨처럼 비전문취업(E-9)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80.5%는 광업·제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24년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사고 재해자 수는 2023년 3217명에서 2024년 3495명으로 늘었으며, 올해 1분기에도 이미 820명이 사고로 산업재해 보상을 받았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고가 늘면서 산재 신청률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인 근로자 산재 신청 건수는 1만161건으로, 지난해보다 6.5% 늘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동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산재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식 개선도 이뤄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대사관을 통해 산재를 신청했던 아지트씨와 달리, 가이한씨는 “방글라데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산재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다만 외국인 산재 승인율은 2020년 96.5%에서 2024년 94.2%로 떨어졌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청률과 승인율의 불균형은 곧 실제 승인 단계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내국인 노동자도 산재 은폐율이 높은데, 이주노동자는 더 열악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신청하는 게 더 어렵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기준도 엄격하고 때에 따라서는 매우 빡빡하게 적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심사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언어적 장벽, 사회적 차별, 제도적 한계가 겹쳐 더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3년째 산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아지트씨는 요즘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김 대표와 함께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아픈 이주노동자들을 따라 병원이나 경찰서에 동행해 통역을 맡는 봉사활동이다. 아지트씨는 지난날의 힘들었던 기억이 오늘날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공장에서 많이 아팠을 때 보호자가 없었어요. 보호자 없으면 많이 힘들어요. 그때 너무 슬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라며 “제가 산재 신청을 도와준 사람이 승인을 받으면 정말 마음이 좋아요. 그 사람이 감사하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대신 ‘꼭 이기세요’라고 말해요”라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김성희 교수는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보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노동력 제공자에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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