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5일 오후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5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폭파 협박글’을 시작으로 온라인에서 ‘테러 협박글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실제 폭발물이 발견된 경우는 없으며 시민들의 직접적인 피해 또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러 예고에 따른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현장 수색과 주변 통제 등을 위해 경찰 및 소방 당국 등 공권력이 연이어 투입되고 있다. 또 시민들은 몸을 피하거나 혹시 모르는 공포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협박글 작성자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적지 않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폭파 협박글’의 경우 제주에 거주하던 중학생이었으며, 지난 8월 15일 아침 벌어진 ‘구 안동역 폭발물 테러 예고글’의 경우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던 고등학생이 용의자였다. 이들은 각각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튜브 라이브방송 댓글을 통해 협박글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이러한 테러 협박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관심을 받고 싶어서”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과 익명성 뒤에 숨어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자신이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손가락 몇 번에 공권력이 출동하고 시민들이 대피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관심’ 받고 싶어서?… 협박글을 수단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 협박글’ 문제는 2023년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과 ‘신림역 묻지마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당국은 두 달간 진행된 특별치안활동을 통해 온라인 테러글 301건을 검거했는데, 이 중 19세 미만이 122명으로 40% 이상을 차지하면서 청소년들의 문제로 직결됐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이러한 행위가 심리적 요인 중에서도 ‘관심 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주간조선에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소위 ‘관종(관심종자)’이거나 ‘외로운 늑대’와 같은 성향으로 나뉜다”라며 “이번처럼 ‘스와팅(Swatting) 범죄’의 경우 더 많은 공권력이 출동할수록 작성자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 또는 커뮤니티에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와팅 범죄란 허위 신고로 경찰 특수기동대(SWAT) 등을 출동시켜 치안력을 소비하는 범죄를 뜻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은 범죄 과정에서 관심을 받으며 또래로부터 우월감 또는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 자극을 좇거나 과한 모험심을 추구하는 경향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주간조선에 “가정 등에서 심리적 안정이 부족하다거나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경우, 그 공허함과 심리적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한다”라며 “협박글을 작성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려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단순히 비행청소년들이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면서 “이를 통해 왜곡된 만족감이나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범)’으로 분류되는 청소년조차 작성자로 등장하다 보니 당국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 8월 18일 “폭발물 거짓 신고 등에 대해 엄정히 대응하겠다”면서도 “만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를 제외하고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원칙대로 책임 묻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공중협박죄 신설했지만… “실효성 의문”

그간 ‘온라인 테러 협박글’ 관련 범죄는 예비살인죄, 협박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처벌해왔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공중협박죄가 시행되면서 이전보다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신설된 공중협박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앞서 ‘신세계백화점 협박글’과 ‘구 안동역 테러 예고글’ 작성자인 10대들 역시 모두 공중협박죄로 입건됐다.

문제는 아직 시행 초기지만 공중협박죄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선 지난 7월까지 시행 4개월여 동안 경찰에 검거된 48명 중 정식 재판에 넘겨진 이는 4명(8.3%)에 불과했다. 지난 8월 18일에는 공중협박죄가 처음으로 적용된 판결도 나왔다. 부탄가스, 전선, 휴지 등으로 사제폭탄을 만들어 40여분간 거리를 활보한 30대 남성에게 벌금 600만원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들 역시 이러한 법적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공중협박죄가 적용되더라도) 잘 ‘처벌하지 않는다’고 인식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호기심 천국’인 아이들 입장에서 오히려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더해 촉법소년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보니 청소년들에 대한 처벌 공백은 여전한 상황이다.

근본적으로는 검찰이나 법원 등 법조계가 관련 범죄에 대해 더욱 강하게 인식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공중협박죄를 통해 ‘5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거운 수위가 마련됐지만, 여러 사유가 참작돼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지 않거나 처벌이 이뤄지더라도 수위가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법원도 판결을 통해 ‘진짜 폭발시킬 의도는 없지 않았느냐’ ‘실제로 사람이 다치거나 기물이 파손된 피해도 없지 않느냐’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며 “그런데 이러한 범죄에 따른 피해는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피해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앞서 ‘신세계백화점 협박글’ 사례에서도 경찰 특공대와 소방 당국 등 242명이 건물 전체를 수색하고 이 과정에서 백화점 3개 동 내 매장 직원과 고객 40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공권력과 일반 시민의 피해는 적지 않았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겪을 심리적 피해 역시 그 수준을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교수는 “보이지 않는 피해는 심리적 트라우마, 불안감, 공포심 등을 말하는데, 테러범들은 이런 점을 노리는 것”이라며 “이렇듯 현실적인 피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판을 포함한 처벌 과정에서 이를 약하게 보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 등 협박글이 작성 및 공유되는 플랫폼 차원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유라도 남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라며 “협박글처럼 범죄행위가 글 형태로 올라옴에도 묵시적으로 묵인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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