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윤석열 정부 내내 폐지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윤석열 정부 여가부 장관을 했던 김현숙 전 장관도 공공연하게 ‘여가부 폐지를 위해 장관이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존폐 기로에 서있던 여가부는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를 거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가부의 부실 대응으로 폐지론에도 힘이 실렸다.
정권이 바뀌면서 여가부는 존속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지난 7월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갑질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며 전격 사퇴했다. 강 의원은 여성단체와 정치권, 여가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시선을 받았고, 청문회에서는 사실상 모든 시간을 갑질 논란 방어에 쓰기에 급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의 원민경 후보자를 지난 8월 13일 새롭게 지명했고, 오는 9월 3일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앞서 지명된 강 의원과 달리 원 후보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논란이 나오지 않고 있다. 3년 넘게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운 처지였던 여가부 직원들은 새 후보자가 청문회 파고를 넘고 조직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가부 측 한 관계자는 “강 의원이 지명된 후 연일 논란이 제기되면서 여가부는 언론 대응조차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여가부) 직원들 모두 강 의원에 대한 의혹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청문회에 참여했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청문회 기간 동안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며 “근 10년간 여가부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중에서도 여파가 컸다”고 회상했다. 사퇴 직전까지 강 의원을 보호했던 민주당도 당시의 고충에 예외는 없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정부 출범 초창기에 연이어 인사 논란이 터져 매일 야근을 했다”며 “강 의원의 경우 의혹들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더욱 힘들었다”고도 말했다.
與 “결격사유 거의 없다”
이 대통령은 원 후보자 지명 이유에 대해 “여가부가 직면한 현안 해결에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성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평등 정책 총괄과 폭력 피해자 보호, 가족과 청소년 지원 등 소관 정책에 대해서도 장관으로서 소임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자질을 가졌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때문에 정부와 여성단체들은 원 후보자에 대해 확연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이번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크게 논란될 부분이나 결격 사유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내부 직원들도 대체적으로 안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성단체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지난 8월 19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원 후보자의 지명을 환영한다”며 “오랫동안 장관 부재로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여가부 정책이 원활히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원 후보자가 자문위원을 지냈던 한국성폭력상담소도 8월 14일 논평을 통해 “원 후보자가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피해자 상담 등을 해왔고 ‘n번방’ 공동대책위원회 법률지원팀장으로 피해자 법률지원을 조직했다”며 “이번 후보자 지명은 정부의 새로운 의지로 여겨진다. 각 부처 협력을 통해 형법상 강간죄 개정이 제대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후보자는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중앙여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 후 2001년 사법연수원 30기를 수료했다. 이후 원 후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 여성인권센터 ‘보다’ 운영위원장, 아시아위민브릿지 활동, 그리고 한국여성의전화 이사로 활동해왔다. 최근까지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고, ‘n번방’ 사건 관련 법률지원 활동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를 위한 공동대책변호인단으로 참여해, 피해자의 인적사항 유포 금지 및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보호 의무 강화 등을 촉구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법안 관련 해명은 숙제
이 대통령이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변호사 출신의 원 후보자를 지명한 데에는 여가부가 더 이상 외풍에 흔들려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여성계 내부의 지지 없이는 청문회 통과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낙마한 강 의원의 경우 갑질 논란과 별개로 여성계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한 여성단체 센터장은 “강선우 (당시) 후보자는 의원 활동을 해오면서 여성 인권에 대한 기억 남는 활동이 거의 없었다”며 “대학원에서의 학술 경력도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고 평했다.
반면 원 후보자에 대해서는 “충분한 역량을 갖춘 분”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주를 이뤘던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도 원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n번방 사건 당시 (원 후보자가) 큰 역할을 했다’ ‘강선우와 달리 여성 인권 개진을 위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주길 기대한다’ 등 반응을 보였다.
야권이나 보수 시민단체 쪽에서는 원 후보자 개인의 신상보다는 그의 철학과 정책에 초점을 맞춰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지난 8월 20일 “원민경 후보자가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해야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는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주 의원은 “내심의 의사인 ‘동의 여부’에 따라 형사 처벌을 결정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며 “앞서 민주당도 지난 총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실무진 착오’였다며 철회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 후보자와 여당의 입장이 다르다”며 “정확하게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국민께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에서는 원 후보자가 추진 필요성을 강조한 ‘차별금지법’을 문제 삼으며 “발언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원 후보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우리 사회 내 불합리한 차별에 대응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 차원에서 다시 한번 논의하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기독교계의 반발이 나오는 이유는 여가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게 될 경우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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