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박태균 서울대학교 제도혁신위원장이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 제도혁신위원회 사무실에서 주간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대한민국 교육정책 수장으로 지명됐던 건 그가 주장했던 ‘서울대 10개 만들기’란 아이디어 때문이다. 이 구상은 이 전 후보의 여러 사적 의혹으로 인해 동력을 잃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 안에는 한국 교육에 대한 여러 구조적 문제가 집약돼있다. 단순히 ‘1등 대학’을 10개로 복제하겠다는 의미는 아닐터. 이것이 일종의 레토릭에 머물지 않으려면, 구체적 정책 설계에 앞서 ‘서울대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한국사회 대학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교육 개혁의 방향성 역시 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는 어떤 대학인가. 사실 서울대를 둘러싼 제도 개혁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일례로 1968년도 나왔던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은 캠퍼스를 관악으로 이전하고 학문 간 장벽을 허물자는 구상으로, 대학 구조 개편의 분수령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교수 재임용제 폐지’ ‘학내 민주화’ ‘총장 선임 절차 자율화’ 등 민주적 거버넌스 혁신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학 자율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흐름이 서울대를 중심으로 번져나갔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방향을 결정지어온 주체이자 실험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변화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는 지난 2023년 총장 직속 기구인 제도혁신위원회를 설치했다. 1대 임경훈 위원장에 이어 올해 2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박태균 위원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을 지난 7월 23일 서울대학교 제도혁신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위원회 설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홍림 총장이 법인대학으로서 진정한 자율성을 확보하고, 시대 변화에 맞는 학문 시스템 구축, 행정효율화 등을 목표로 설치했다. 그동안 총장 임기 4년의 한계로 레임덕이 오면 개혁이 번번이 중단됐었다. 이에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기관으로 총장 직속 부총장급 위원회를 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칙 11조에는 ‘위원회가 건의하면 총장은 개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2기 체제가 추진하는 과제 중 하나는 ‘AI시대에 맞는 융합형 인재 만들기’다. 100년이 넘게 지속돼온 지금의 단과대학 시스템을 AI시대에 맞게 바꿔보자는 것이 핵심이다. 박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기존의 학문 체계와 단과대 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문·이과 경계를 허물고 융합형 전공 신설, 단과대 수준의 창의교육기관 설립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말하는 ‘창의교육 기관’의 구체상은 글로벌 선례와 궤를 같이한다. 스탠퍼드·버클리·MIT 등 세계 유수 대학이 최근 공통적으로 신설한 단과대 명칭은 대개컴퓨팅, 데이터 사이언스 & 소사이어티 (Computing, Data Science & Society) 혹은 컴퓨팅, 인포메이션 & 데이터 사이언스 (Computing, Information & Data Sciences). AI 시대를 겨냥한 융복합 단과대학을 만드는 흐름이다.

디자인스쿨·뇌과학 분야 통합 허브 설립

서울대 내에 융합디자인 전공·학부를 설립하려는 구상도 논의되고 있다. “K-콘텐츠의 본질은 디자인에 있기도 하다. 시대에 맞게 건축학과, 환경대학원, 미대 산업디자인과, 인문대 미학과 등을 합의가 되면 단일 스쿨로 묶어 보려고 한다.” 이는 일본 도쿄대의 새로운 구상과도 맞물린다. 도쿄대는 오는 2027년부터 디자인스쿨을 설립,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며 컴퓨팅과 인문·사회과학을 병합하는 변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히 ‘뇌과학’ 분야는 AI시대 필수 기반이다. 박 위원장은 서울대 내 ‘뇌과학’ 통합허브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지금은 뇌인지과학 분야가 의대, 자연대 등 여러 단과대에 연구 인력이 흩어져 있어 시너지가 제한적이다. 이들을 한 공간에 모아 ‘뇌·인지과학 허브’로 재편하려 한다.” 융합과 학문 간 벽을 낮추는 것은 유홍림 총장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서울대가 AI 시대 핵심 분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제도혁신위원회는 교육 인프라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 정년 연장과 연봉제 개편, 평생교육원 시스템 혁신 등은 교수진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기반 마련 차원이다. 박 위원장은 최근 위원회가 “국제화를 위한 노력도 새롭게 시작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경력 많고 우수한 외국인 교수 유치를 위해 주거 지원 조건 개선, 겸임 교원 제도 활성화, 국제 학교 비용 부담 해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2025년 세계 대학 평가에서 38위라는 성적을 받았다. 전년 대비 7계단이나 하락한 순위였다. 그 원인으로 ‘외국인 교수 비율’(801위), ‘외국인 학생 비율’(622위) 등 국제화 관련 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 꼽힌다.

혁신위원회가 처음 구상될 때 명칭은 ‘신뢰와 혁신위원회’였다. 규제 기반 거버넌스 대신, 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신뢰 기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게 목표였다. 그 같은 취지의 일환으로 혁신위원회는 폭넓은 소통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 박 위원장은 그 체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총장과 미팅을 하고, 총장단·처장단과도 공동 회의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전체 서울대 구성원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연다. 공청회 때는 평의원회, 학원장, 교수회, 교수조합, 직원노동조합, 학생회까지 모두 초청하여 함께 논의한다.” 위원회가 혁신 과제를 추진할 때마다 이 절차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교수, 직원, 학생회와의 간담회도 꾸준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혁신안에 대한 교내 구성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서울대 평생교육원 과정 신설 및 퇴직교수의 강사 활용 등과 관련한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학·석사 통합 5년제 논의 역시 기존 석·박사 과정과의 충돌이 있어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 위원장은 “혁신안의 내용은 결국 서울대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대학은 비판적 사고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다양한 내용의, 효율적인 혁신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방향을 고민하며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2012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출범하며 국내 첫 법인대학 모델을 제시했다. 정부 통제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고, 시대적·융합적 새 학문을 추진하고, 희소·기초학문 보호·육성이 법인화의 주요 취지였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대는 독립 이사회가 인사·예산·조직 운영을 책임지는 구조로,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되 일상적 의사결정은 법인이 주도하는 체제를 갖췄다. 공무원 인사 규정과 국가재정법에 얽매였던 과거의 경직성을 해소하고 세계 대학과 경쟁할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인화 이후 10년이상 지난 지금, 서울대는 다시금 ‘진짜 법인대학’으로 거듭나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급속하게 신설된 학부 대학과 첨단 융합학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된 탓에 교육과 연구 체계가 부실해질 우려가 제기됐다. 산업·융합 연구에는 오랜 준비와 체계적 과목 설계가 필수인데도, 현실은 대교협 승인 절차나 학내 논의를 생략한 채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크다. 이는 법인대학의 핵심인 자율성과도 충돌한다. 교육부의 과도한 감독과 통제는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학생과 교수 모두의 전공 선택권을 제약하며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이제는 껍데기만 법인이 아니라 진짜 법인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홍림 총장과 위원회는 행정 효율화, 학문 구조 개편, 기초학문 보호 같은 실질적 변화가 뒤따라야 서울대다운 자율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침 2026년과 2025년은 각각 서울대 설립 80주년이자 관악캠퍼스 이전 50주년이 되는 해다. 법인화 10여년을 넘긴 지금, 제도혁신위원회가 어떤 ‘2차 개혁 시나리오’를 완성하느냐가 한국 교등교육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자율·국제화 개혁 본격화

한편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은 1946년 개교 당시 여러 학교를 통합해 ‘국립 종합대’ 모델을 만든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1975년 관악캠퍼스 종합화, 최근 평창·시흥 등 다캠퍼스 확장으로 이어지며 서울대의 구조 개편 흐름과 맞물려 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서울대와 9개 거점국립대를 미국 UC 시스템처럼 네트워크화하자는 구상이 대선 공약과 교육개혁 의제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이 이를 국정 과제로 공식화하면서 재정 지원, 혁신도시 캠퍼스 설립, 거점대학 공동 연구망 구축 등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10개’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대의 상대적 소외, 대학 서열 심화, 재정·인프라 부족 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주요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정책 구상은 서울대가 단순히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라, ‘먼저 변화하는 모델’로서 스스로 혁신을 선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박 위원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구상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대학들이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방향을 찾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렇다면 지금의 서울대는 과연 다른 대학들이 본받고 싶어 할 만큼 준비돼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대 스스로도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먼저 변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박 위원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효성 있는 구상이 되려면, 서울대가 먼저 혁신을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그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새로 만든 체계를 다른 대학들이 똑같이 따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며, 서울대가 선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타 대학과 나누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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