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힘들 때 도움받았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도움 줄 차례죠.”

22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경북 영양 산불 피해 주민들. /경북 산불피해 주민대책위원회 영양지역 대책위

지난 3월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경북 영양 주민들이 22일 극한 호우로 막대한 피해가 난 경남 산청을 찾았다.

경북 산불피해 주민대책위원회 소속 영양군 주민 12명은 이날 오전 4시쯤 1t 화물차에 미니 굴착기를 싣고 산청으로 향했다. 250km를 이동하는데 2시간 40분이 걸렸다.

이들은 산청읍 부리마을을 찾았다. 주민 3명이 산사태에 매몰돼 숨지는 등 피해가 큰 곳이었다. 참혹한 현장에 놀랄 새도 없이 영양 주민들은 곧장 복구 현장에 뛰어들었다.

싣고 간 굴착기로 주택가를 덮친 토사와 흙탕물에 묻힌 가재도구를 걷어냈다. 삽을 든 주민들은 일일이 흙에 섞인 폐기물을 퍼 날랐다. 산사태로 수도 시설이 망가져 마을 옆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땀을 씻어냈다.

22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경북 영양 산불 피해 주민들. /경북 산불피해 주민대책위원회 영양지역 대책위

김남수(58) 경북 산불피해 주민대책위 영양지역 대책위원장(석보면 화매2리)은 “우리가 산불로 피해를 봤을 때 전국 각지에서 우리를 도우러 와서 늘 고마운 마음이 컸다”며 “같은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고 미안했는데 이번엔 우리가 작은 도움을 드리고 위로할 차례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산불 때 세 가족의 추억이 깃든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함께 온 영양군 주민들 역시 모두 산불로 피해를 입었고,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22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경북 영양 산불 피해 주민들. /경북 산불피해 주민대책위원회 영양지역 대책위

부리마을 주민들은 먼 길을 찾아준 영양군 주민들에게 “고맙다”며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당초 1박 2일 일정으로 산청을 찾은 영양 주민들은 하루 더 산청에서 머물며 복구 작업을 돕기로 했다. 현장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 주민 모두 뜻을 함께 모았다고 한다. 안동과 의성, 청송과 영덕에서도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산청을 찾아 복구를 도울 예정이다.

이날 오후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덕천강마을. 진흙을 뒤집어쓴 비닐하우스 안에서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자들이 삽으로 연신 흙을 퍼 날랐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떠내려 온 폐기물을 주워 밖으로 꺼냈다. 이날 산청의 낮 최고기온은 32.4도. 습기까지 더해져 가만히 있어도 사우나에 온 것처럼 땀이 맺혔다.

22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덕천강마을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자들.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여기에 비닐하우스 안에서의 작업은 베테랑 봉사자들에게도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봉사자들은 땀을 훔쳐가며 망가진 주민의 삶을 복구하는 데 힘을 보냈다. 이날 오전에만 4t 정도 쓰레기가 쌓였다. 이른 아침부터 봉사자들을 이끌고 산청에 온 박경옥(57) 센터장은 “뉴스로 보던 것과 달리 실제 현장은 더 참혹하다”며 “주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도와드리고 가자고 격려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침수된 집 안에서 물에 젖어버린 책상과 장롱, TV, 이불, 그릇 등을 연신 밖으로 꺼냈다. 집 밖에선 혹시나 쓸 만한 것이 있을까 물로 씻어 내보지만, 사실상 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펄밭이 된 집안에선 집주인의 한숨이 가득했다. 4개월 전 산불 때도 산청을 찾았던 민은주(52)씨는 “마을 뒤 불에 탄 산을 보면서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을 겪은 주민들이 안쓰러웠다”며 “오래 봉사 생활을 했지만 재난에 재난이 연속해 겹치는 현장은 저도 처음”이라고 했다.

이날 산청에서는 540여명의 봉사자들이 복구를 도왔다.

22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덕천강마을을 찾아 복구 작업을 돕고 있는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소속 봉사자들. /부산시자원봉사센터

실종자 수색도 이어지고 있다. 하루에만 실종자 2명이 발견됐다. 산청읍 모고마을에서는 이날 오후 3시20분쯤 70대 실종자 A씨를 찾았다. 발견 당시 A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 19일 시간당 100㎜에 가까운 비가 쏟아지면서 산사태가 났다. 아내와 함께 마을회관에 대피했던 A씨는 이후 집에 잠시 돌아갔다가 토사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후 4시 8분쯤에는 단성면 방목마을에서 실종된 60대 여성 B씨를 발견했다. B씨는 지난 19일 낮 12시36분쯤 실종됐다.

22일 폭우와 산사태 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경호강휴게소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이에 따라 산청 극한 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 12명, 실종 2명이 됐다. 소방 당국 등은 남은 실종자 2명에 대한 수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성면 경호강 인근에서는 과학수사 체취 증거견들을 동원,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약 1.8km 떨어진 마을에서 실종자가 발생했는데, 수색 범위를 이곳까지 확대했다고 한다.

한편, 경남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산청을 포함한 경남에서만 다리가 유실되는 등 공공시설 741곳과 매몰·침수로 주택 674채가 피해를 입었다. 딸기 시설 등 농경지 4263ha, 가축·양식장 등 17건의 피해가 접수됐다. 피해 신고를 접수받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경남도는 인력 3563명, 장비 1147대를 투입해 도로 피해 292건 중 261건(89%), 하천 90건 중 29건(32%), 산사태 109건 중 18건(17%)에 대해 복구를 완료했다. 정전이 발생한 8358가구 중 8128가구(97%)는 복구를 완료했고, 이동통신 중계기 1525곳 중 1382곳(91%)에 대한 장애 조치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