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초대 내각 조각(組閣) 과정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다름아닌 ‘농지법’이다. 이재명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구윤철 후보자를 비롯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무려 4명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농지법 위반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구윤철 기재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는 자택인 경기도 성남에서 300여㎞ 떨어져 사실상 자경이 불가한 전남 무안군 청계면 일대의 논 992㎡(약 300여평)를 사고 팔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 민모씨 역시 전북 순창군 동계면의 농지 2030㎡(약 600여평)를 사서 실제로 영농을 하지 않은 의혹이 제기됐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인천에서 의사로 일하는 배우자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농지 5487㎡(약 1660여평)를 소유하고 실제 영농을 하지 않은 의혹,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역시 네이버 이사로 재직하던 2009년 경기도 양평의 농지 1807㎡(약 540여평)를 ‘자영’으로 적은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취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밖에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도 배우자가 과거 매입한 경기도 안성의 농지와 관련 농지법 위반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헌법 121조의 ‘경자유전’ 원칙
농지법 위반 의혹의 한가운데는 우리 헌법에서 못박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9차 개정 헌법에서 ‘경제민주화’란 용어와 함께 처음 들어간 ‘경자유전’은 ‘농사를 짓는 경자(耕者)가 밭을 소유한다(有田)’는 뜻이다. 헌법 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小作)제도는 금지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손에 흙을 묻힐 것 같지 않은 장관 후보자들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농지를 소유했을 때, 일단 색안경을 끼고 검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농지법 위반 논란은 이재명 정부뿐만 아니라 지난 정권에서도 일상다반사처럼 불거졌다.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희숙 전 의원은 서울 동대문에 거주하는 부친이 세종시 전의면의 농지 1만869㎡(약 3288평)를 보유했다는 ‘농지법 위반 논란’으로 2021년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퇴임을 앞둔 지난 2020년, 현재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영농 경력 11년’이라고 적힌 농업경영계획서를 당국에 제출해 빈축을 산 바 있다.
물론 관직을 이용해 개발정보를 미리 입수한 뒤 시세차익이나 토지보상 등을 노리고 실제로 경작하지도 않는 농지를 편법으로 매매해 수익을 올렸다면 공직후보자로서 명백한 결격 사유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장관 후보자 4명의 가족이 농지를 소유할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 ‘경자유전’ 원칙이 이미 수십 년 전과 달라진 농촌 현실에 맞지 않고, 오히려 소멸위기에 있는 농촌경제 활성화나 경쟁력 있는 대규모 기업형 농가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 역시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시대 변화에 따른 ‘경자유전’이란 네 글자에 대한 고민보다는 정쟁의 도구로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실정이다.
사실 헌법 121조에 들어간 ‘경자유전’이란 네 글자는 중국과 대만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이 중국혁명 과정에서 언급했던 말로, 이미 대만에서는 수십 년 전 폐기된 용어다.
쑨원이 최초 언급 ‘경자유기전’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를 앞세운 쑨원은 신해혁명을 일으켜 중국 역사상 마지막 봉건왕조인 청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중 민생주의의 핵심 내용이 ‘토지 권한을 균등히 한다’는 뜻의 ‘평균지권(平均地權)’이고, ‘농사 짓는 자가 그 밭을 소유한다’는 뜻의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은 ‘평균지권’을 뒷받침하는 핵심 주장이었다.
쑨원의 후계자 격인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섬으로 패퇴한 후 쑨원이 주창한 ‘경자유기전’을 앞세워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중국공산당에 패배한 원인을 농민들의 토지소유에 대한 불만에서 찾아 쑨원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목으로 안정적 집권기반을 다지기 위해 토지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토지개혁에 성공한 대만은 1993년에는 ‘경자유기전 조례’를 공식 폐지했다. 우리 헌법에 ‘경자유전’ 네 글자를 삽입한 지 6년 만에 정작 원조국인 대만에서는 해당 조례가 농업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이다. 이른바 ‘농유(農有)’의 개념을 페지한 대만은 ‘농지농용(農地農用)’ 원칙을 대신 도입했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냐에 상관없이 농지는 농사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대만 대선을 앞두고 대만민중당 후보로 출마한 커원저(柯文哲) 전 타이베이 시장(현재 구속)은 본인 소유의 시골 농지를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전용한 사실이 폭로돼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전체 농가의 39.2%가 70세 이상
‘경자유전’을 못박은 헌법 121조는 그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못박고 있지만, 정작 동조 2항에서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토지를 빌려주고 일정액의 지대를 받는 ‘소작제도’는 금지하지만,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는 농지를 빌려주고 일정액의 지대를 받는 농지 임대차와 위탁경영이란 현대판 ‘소작’은 허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업 현장에서는 임대차와 위탁경영 없이는 정상적인 영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민석 국무총리 인사청문 과정에서 논란이 된 ‘배추농사’ 역시 절대다수가 소위 ‘밭떼기’로 불리는 ‘포전(圃田)거래’라는 일종의 위탁경영을 통해 재배되는 실정이다. 농지를 소유한 지주가 모종만 심은 뒤 밭을 통째로 가락시장 도매상 등 산지유통인에게 넘기면, 산지유통인이 영농인력을 직접 고용해 직접 비료 주고, 농약을 쳐가며 수확해 유통까지 하는 방식이다.
매일 식탁 위에 오르는 배추 등 주요 농작물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공급된다. 이 경우 농지를 단순 소유한 고령의 농민과 실제 영농을 하는 젊고 건장한 외국인 영농인력 중 누가 진짜 ‘경자(耕者)’냐는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농촌고령화로 농가인구가 매년 급격히 줄면서 이제는 ‘경자’조차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경자’가 줄면서 과연 누가 논밭을 소유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뒤따르는 상황.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256만명에 달했던 농가인구는 2024년 200만명으로 줄었다. 전체 농가인구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8.4%에 그쳤으나, 2024년에는 과반이 넘는 55.8%에 달했다. 이 중 70세 이상은 전체 농가인구의 39.2%에 달한다.
‘경자유전’에서 ‘농지농용’으로
이 같은 상황에서 ‘경자유전’은 시한부 구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용환 전 팜한농 대표(농학박사)는 “젊은 영농인구 유입이 안 되면서 매년 농가 평균연령이 0.9세씩 높아지는 추세로 이대로 가면 ‘경자’가 일시에 사라질 수도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라도 경자유전 조항은 한번은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 조항에 따라 농지는 ‘농업경영계획서’ 등을 제출한 후 농사용으로만 매매가 가능하다. 이에 동일한 면적의 다른 토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고 거래도 잘 안 된다. 고령의 농부들로서는 기력이 쇠해 농사를 짓지 못할 때 농지를 팔아 요양원에 입원할 돈이라도 마련해야 하는데, 농지 매매가 가로막혀 있으니 말년에 목돈을 거머쥐기도 여의치 않다. 원칙적으로 영농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만 농지를 팔 수 있는데,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상황에서 일부 장관 후보자들처럼 수백 킬로미터를 오가며 농사를 짓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은 현실에서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자연히 고령의 농민들이 말년에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농지가 도로나 산업단지 등으로 편입돼 토지보상금을 기다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에 농촌인구 소멸상황에서 농촌에 돈이 돌게 하기 위해서라도 ‘경자유전’ 원칙에 얽매여 농지매매를 엄금하기보다 대만과 같이 ‘농지농용’의 원칙만 세우고 농지매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1993년 ‘경자유기전’ 조례가 폐지된 후 농가주택을 신설할 수 있는 일정 규모(0.25㏊) 이상의 농지 매매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영농비용이 되레 치솟고 농촌 난개발을 초래했다는 부작용도 지적되지만, 한국과 같이 소멸위기에 있는 농촌에 돈이 들어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경우 대규모 자본을 갖춘 영농기업들이 합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해 농업선진국처럼 대규모 기업농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농업용 토지를 농업용으로 보존하면서 드론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농사를 지으면, 농업생태계와 농업 경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농업생산량도 더 늘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 식량안보에도 더욱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환 전 팜한농 대표는 “농지 상속으로 인해 경자유전은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라며 “스위스 같은 경우 농지를 상속한 후 계속 영농 의사를 밝히면 상속세를 면제해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경 전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자유전은 헌법에 있는 조항이라서 개헌을 하지 않는 이상 바꾸기가 힘들다”며 “대신 농지법 규제라도 유연하게 바꾸어서 스마트팜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경자유전이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다만 후손들에게 물려줄 농지의 총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