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올여름에는 백사장을 가득 메웠던 파라솔 절반을 걷어 내고 외줄 타기, 타이어 옮기기 등을 해볼 수 있는 특수부대 체험장을 설치했다. 이날 해운대의 낮 기온은 31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누가 사서 고생을 할까” 싶은데 호주에서 온 20대 관광객 3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아슬아슬 외줄을 타자 피서객 수백 명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빨간 모자를 쓴 특수부대 출신 조교들이 “할 수 있어!” “파이팅!” 소리를 질렀다. 대니얼(23·호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도 없는 색다른 체험”이라며 “역시 K비치가 최고!”라고 했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국 해수욕장들이 피서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즘 해수욕장에선 DJ 파티나 드론 쇼, 레이저 쇼 등을 즐길 수 있다. 바다를 보며 운동할 수 있는 해변 헬스장을 연 곳도 있다. 이제 해수욕장에서 파라솔 깔고 수영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강원 강릉 강문해수욕장에는 ‘오션 뷰’ 야외 헬스장을 차렸다. 2023년부터 여름철마다 운영 중인 ‘머슬 비치’다. 백사장 위에 헬스 기구 13대를 설치했다. 지난 2일 전국에서 온 ‘몸짱’ 10명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선수(30·경기 시흥)씨는 “동해 바다를 보며 ‘쇠질’을 하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든다”며 “여행 온 기분”이라고 했다.
요즘 같은 폭염에는 밤에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이 더 많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지난 1일부터 매일 밤 ‘DJ 파티’를 열고 있다.
백사장 한가운데서 디제잉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물총도 쏜다. 백사장이 대형 클럽이 되는 셈이다. 지난 4일에는 500명이 음악을 즐겼다.
광안리해수욕장은 주말 밤마다 드론 쇼를 한다. 광안대교 상공에 드론 1000대를 띄워 인기 캐릭터인 ‘카카오 프렌즈’ 등을 연출한다. 올해는 여기에 레이저 쇼를 더했다. 광안대교 윗부분에 조명을 설치해 밤하늘에 레이저를 쏜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지난 5일 밤 7만9000여 명이 해변을 가득 메웠다. 올여름 가장 많은 인파였다. 수영구 관계자는 “드론 쇼와 레이저 쇼를 결합한 건 광안리가 처음”이라며 “홍콩이나 중국 상하이 같은 야경 명소를 많이 연구했다”고 했다.
제주 협재해수욕장과 이호테우해수욕장은 운영 시간을 오후 9시로 연장했다.
부산의 일몰 명소인 다대포해수욕장에선 다음 달 8일 ‘다대포 선셋 영화제(DSFF)’가 열린다. 올해 3회째다. 지난해 영화제에는 약 1만8000명이 다녀갔다. 백사장에 가로 12m, 세로 6m 스크린을 설치하고 낙조 시간에 영화를 상영한다. 사하구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낭만적인 해수욕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선 오는 25일부터 ‘머드 축제’가 열린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반려동물과 함께 진흙 마사지를 할 수 있는 ‘멍드존’을 운영한다. 보령축제관광재단은 “지난해 강아지 1만마리가 머드 축제를 함께 즐겼다”고 했다.
경남 거제 명사해수욕장은 일부 구역을 반려견 전용 해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반려견 전용 샤워장도 갖췄다. 거제시 관계자는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반려견과 편하게 물놀이할 수 있다”고 했다.
18년 만에 재개장하는 ‘추억의 해수욕장’도 있다. 12일 개장하는 경북 포항 송도해수욕장 얘기다. 송도해수욕장은 1970년대 경북 최대 피서지였다. 여름철 피서객이 1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포항신항 등 매립 공사로 백사장이 줄어들고 수질도 악화돼 2007년 문을 닫았다. 포항시는 2018년부터 수중 방파제를 설치하는 등 복원 공사를 했고 18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해수욕장에 공을 들이는 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지난달 21일 개장 후 18일간 108만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6만명꼴로 작년 같은 기간(4만4000명)보다 36% 증가했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효과를 보고 있다”며 “죽었던 상권도 활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신라대 호텔경영학부 교수는 “이제 바다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