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이 불을 붙이는 장면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지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화재 목격 후에 보인 피고인의 이상 행동과 합동 감식에서 나온 피고인 옷에 묻은 탄화물질 등의 간접 증거로도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평소 층간 소음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벌였다는 진술도 결정적 이유였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민경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주관)는 현주건조물방화미수·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23년 11월 13일 오전 5시 12분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5층짜리 건물 2층 사무실 현관문 도어락에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불을 내고 태우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건물 4층에 거주하던 건물주 B(80대)씨가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섰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끄면서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불이 난 건물 1층은 네일숍과 부동산, 2층은 심리 상담 센터가 있었고, 3층에는 A씨와 모친이, 4층과 5층에는 건물주인 B씨 가족이 살았다. 불이 크게 번졌다면 인명 사고 등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A씨는 불이 났을 무렵 건물에 드나든 유일한 사람이었다. A씨는 이날 오전 5시 4분쯤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 뒤 5시 7분쯤 다시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장면이 건물 입구를 비추는 감시카메라(CCTV)에 잡혔다. 이후 2층 사무실 내부 CCTV에서 오전 5시 12분쯤 현관문 문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시점에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주인 B씨가 불을 끄기 위해 나온 시간은 오전 5시 25분쯤. 경찰 현장 감식에서는 화재가 인위적 행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A씨가 건물 밖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부터 B씨가 불을 끄러 나온 시점까지 약 18분간 건물을 오간 사람은 A씨가 유일했다.

다만, 불이 난 2층을 직접 비추는 CCTV가 없었다. A씨는 “당시 타는 냄새를 맡고 일어나 담배를 피우러 밖을 나갔다”며 “내려가면서 보니 2층 앞이 연기로 자욱했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자신이 불을 지르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뉴스1

하지만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증언은 화재가 상당히 진행된 것을 발견하고도 직접 화재를 진압하거나 119에 화재 신고를 하는 등 조치는 취하지 않고 불이 난 윗층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으로 그 주장 자체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CCTV를 보면 발화 추정 시간대에 건물 내외를 오간 사람은 A씨뿐”이라며 “피고인이 아닌 제3자나, 자연발화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경찰 합동감식 결과에서 A씨가 당시 착용한 패딩 좌우측 소매, 주머니 안, 신발 등에서 탄화물질이 식별된 점도 유력한 방화 증거라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2023년쯤 심리 상담 센터인 2층에 찾아가 ‘진동이 느껴진다’며 사무실 내부를 확인하거나, 4층에 거주하는 B씨를 찾아가 ‘시끄럽다’고 멱살을 잡았던 점을 고려할 때 층간 소음에 대한 항의의 일환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 부장판사는 “방화 범죄는 공공의 안전과 평온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로, 다수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B씨가 불을 발견해 끄면서 미수에 그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