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한 원혜영(73)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타공인 ‘웰다잉 전도사’다. 현재 사단법인 웰다잉문화운동의 공동대표인 그는 “결혼할 때 웨딩플래너가 도와주는 것처럼 ‘생전 장례식’ 컨설팅을 하고 사회도 봐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생전 장례식’을 생소하게 느끼는 기자에게 원 대표는 “죽음이 임박할 것이 예견될 때 평소에 가까웠던 사람들을 모아 감사의 잔치를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장례식에는 생전 가까웠던 친구나 선후배들은 하나도 없고 교류가 없었던 친척들이나 자식·손주들의 친구들이 오지 않나.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로서 장례의 본질에는 안 맞는 것 같다. 사흘 밤낮을 새면서 조문을 받는 게 꼭 필요한 일일까. 장례가 누군가에게 피곤하고 쓸쓸하고 힘든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 대표는 지난해 12월 펴낸 책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마무리를 위해 꼭 해야 할 5가지 결정을 제시했다. 유언장 쓰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돌봄 방식에 대한 결정, 인생노트 작성, 장례 방식 결정 등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주도한 원 대표는 “법이 시행된 이후로 3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며 “앞으로 500만명이 넘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2016년 통과된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임종기 환자가 자신의 사전 결정에 따라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3월 5일 서울 중구의 사무실에서 원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웰다잉 전도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대 국회 초에 ‘연명의료’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우연히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치료될 가능성이 없는데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의료를 계속 해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발표를 들었다. 1997년 연명의료를 중단한 보라매병원 의료진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한 사건이 떠올랐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으며, 공감대를 형성해 ‘연명의료결정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2020년 정계를 은퇴한 뒤에는 입법에 앞장선 사람으로서 AS 차원에서 웰다잉 운동을 하고 있다.”

- 웰다잉을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핵심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다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취업, 결혼, 사업 등 생각해보면 우리가 삶에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일은 잘 없다. 모든 것이 준비와 결정의 연속이다.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나. 미리 결정해두지 않으면 자녀들이 싸우게 되고 자기결정권이 의사, 장례업자, 판사들에게 가게 된다. 사회적 갈등과 낭비도 엄청 커진다.”

- 책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서 유언장 쓰기를 강조했는데. “유언장 쓰기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 번 정리하면서 현재 삶의 좌표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냥 흘러가듯이 사는 사람과 한 번 멈춰 서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사람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유언장을 쓰면 앞으로 남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체감하게 된다. 재산의 변화는 크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관점은 바뀔 수 있으니 그때그때 정리를 해두면 좋다. 매년 쓰지 않더라도 은퇴 시점에 한 번, 칠순 맞아서 한 번 이렇게 이벤트가 있을 때 써보면 어떨까. 미국에서는 시민의 56%가 유언장을 작성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비율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언제 작성하는 게 좋을까. “언제 쓸지를 고민하는 바로 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늦게 써서 좋을 게 별로 없다. 젊더라도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거나 사고가 날 수도 있지 않나.”

- 최근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82%가 찬성한다는 설문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안락사는 21세기의 어젠다다. 고령화를 일찍 경험한 선진국들은 이미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1997년 오리건주가 안락사를 처음 허용했으며 지금은 10개가 넘는 주가 허용하고 있다. 유럽에선 네덜란드가 2002년에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연방 국가인 캐나다와 호주도 몇 년 전만 해도 한두 개 주만 안락사를 허용했는데 이제는 모든 주로 확대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선 안락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관련 법이 발의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다.”

지난 2월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1.9%는 말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 ‘의사 조력 자살’이나 ‘소극적 안락사’로도 불리는 조력 존엄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가 준비한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 대한노인회가 노인이 집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재가 임종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사망자 중 병원에서 죽는 비율이 약 77%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미국은 30%대, 유럽은 20~50%대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왕진(방문 진료)을 활성화해야 한다. 비용 측면에서 의사들은 왕진을 나갈 이유가 없다. 왕진 수가를 올리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하다.”

- 5선 국회의원으로서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나.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시키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지금은 그 기능을 빠르게 잃어가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소명의식을 확실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정치의 영역을 존중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 정치권에선 개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통령제하에서 모든 대통령이 다 실패했다는 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로 봐야 한다. 지금까지 실패를 반복했는데 체제를 유지하는 건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탄핵 국면과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개헌이 정쟁 거리로만 받아들여져선 안 된다. 조기 대선 때 권력구조를 핵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서 큰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선거구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의 승자 독식형 소선거구제는 과도한 왜곡을 만들고 있다. 소수 세력의 정치 참여가 가능한 선거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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