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에 가족과 친지 사이에 각종 술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14조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져 주목을 끈다.
작년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의 이선미 센터장은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학술 논문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비용 및 정책우선순위 선정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음주로 인한 각종 비용(의료비, 간병비, 관련 입원·통원 때문에 발생하는 생산성 손실, 숙취로 인한 생산성 감소, 사망으로 인한 장래 소득 손실)을 합쳐보니 14조627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7년(13조8884억원)대비 5.3% 증가한 것이다. 계산해보면 매년 평균 1%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근로자들의 ‘숙취 비용’만 5조원
특히 숙취로 인한 생산성 감소(5조1967억원)가 전체 비용(14조6274억원) 가운데 35.5%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취로 인한 생산성 감소는 각종 통계와 선행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다. 우선 통계청과 질병관리청 통계를 이용, 전체 근로자 가운데 매일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자’ 수를 추산했다.
이들의 연간 임금 총액에 ‘고위험음주자가 생산성 저하를 경험한 비율(10.6%)’과 ‘숙취로 인한 평균적인 생산성 저하율(25%)’을 차례로 곱했다. 여기서 ‘10.6%’, ‘25%’ 등 수치는 관련된 외국의 선행 연구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위 ‘연간 14조원 손실’은 회사 근로자만 따진 것이라는 것이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자영업자나 주부, 무직자 등을 포함해 음주의 사회적 비용을 따지면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피해 외에, 장기적인 음주로 인해 초래되는 인지력 저하, 판단력 감퇴,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 등 간접적인 피해까지 모두 포함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폭음률, 세계 3위
한편,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폭음(暴飮)률은 45.2%로 전세계 187국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폭음률이란 ‘지난 한 달간 한 자리에서 60 g이상의 알코올을 마신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이고, 알코올 60g은 대략 소주 1병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33.2%), 영국(33.3%)의 폭음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보드카의 나라’로 알려진 러시아(20%)의 두 배 이상. 일본(43.1%)도 상당히 높지만 한국보다는 낮았다. 전세계 폭음률 1위는 룩셈부르크(48%), 2위는 아일랜드(45.8%)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2020년 기준 7.8L로 세계 57위 정도다.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최상위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1.8L이고 영국은 10.7L, 러시아는 10.5L 등 수준이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들이 다수 있는 거이다.
그럼에도 이런 나라들보다 한국의 폭음률이 높은 것은, 한 자리에서 소주 1병 이상을 몰아마시는 ‘폭음 습관’이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한 자리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 문화가 아직까지 상당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양식 인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술에 관대한 문화가 팽배해 왔고, 특히 국민의 모범이 돼야하는 정치 지도자들부터 폭음을 즐기는 모습이 노출돼 왔다”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는 지도자가 모범을 보인다면 사회적인 ‘절주’ 문화가 안착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