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12번째 레터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 수녀들’입니다. ‘검은 사제들’(2015)의 속편이죠. 감독은 장재현 감독에서 권혁재 감독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사회 전날밤에 ‘검은 사제들’을 다시 봤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렇게 잘 만든 영화였던가. 10년 전 슬렁슬렁 봤을 때와 담당기자 시각으로 뜯어보면서 볼 때가 많이 다르더군요. 무엇보다 최근에 ‘히트맨2′ ‘귀신경찰’… 이런 영화를 보고 우지끈했던 머리라 ‘검은 사제들’의 집중력이 더 반갑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히트맨2′와 ‘귀신경찰’ 예매를 생각하신다면, ‘가문의 영광: 리턴즈’(2023) 관람평을 먼저 찾아보시길 간곡하게 권유드립니다. 비슷하거든요. 참고로, ‘가문의 영광: 리턴즈’의 네이버 평점은 10점 만점에 3.5점입니다. 동의하기 어렵군요. 3.5점이나 된다니.) 오컬트 장인이 만들었던 ‘검은 사제들’에서 ‘검은 수녀들’이 얼마나 나아갔을지, 달라졌을지, 새로워졌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시사회장에 갔습니다. 보고난 제 생각. “역시 영화는 감독이 중요하구나.” 무슨 말인지 아래에서 말씀드릴게요.
‘검은 수녀들’은 설 영화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입니다. ‘검은 사제들’이라는 인지도 높은 전작이 있는데다 주연이 송혜교이니. 송혜교가 ‘더 글로리’ 이후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궁금하실텐데, 첫 장면부터 과감합니다. 담뱃불부터 붙이고 시작하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녀가 아니란거죠. 허를 찌르고 들어가는 접근, 괜찮았습니다. 송혜교가 연기하는 주인공 유니아 수녀는 “해방수녀회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침대에 묶여 발악하는 아이를 상대로 구마 의식을 행합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암캐가, 빌어먹을 음기 덩어리년, 건방진 년”이라며 욕을 퍼붓는 악령 들린 아이에게 성수를 붓고 종도 울리고 기도문도 외우지만 악령을 내쫓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유니아 수녀와 함께 할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오컬트는 나약한 인간들이 찾는 것”이라며 의학의 힘을 믿는 바오로 신부(이진욱) 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서품도 못 받은 수녀가 무슨”이라며 유니아 수녀를 무시하는 사제들. 이후 얘기는 상당 부분 ‘검은 사제들’과 데칼코마니처럼 전개됩니다. 허준호가 연기하는 악령에 당하는 신부는 ‘검은 사제들’에서 이호재가 연기한 신부와 같은 역할, 같은 운명을 맞는 것처럼요.
크게 다른 설정은 무속입니다. 금기를 넘나드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유니아 수녀는 구마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든요. 무속 설정은 ‘파묘’만 아니었어도 훨씬 신선하게 여겨졌을텐데, ‘파묘’ 김고은이 워낙 각인돼있어 ‘검은 수녀들’에서 수녀와 무당이 합세해 굿판을 벌여도 그러려니 싶습니다. 후발주자의 비애죠. ‘검은 수녀들’은 산이 아니라 바다에서 굿판을 벌이는데, 연출적으로 힘이 크게 달립니다. 오컬트 장르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인데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래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검은 수녀들’은 오컬트 특유의 공포와 긴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요. 오컬트를 내세우고 구마 의식을 반복해서 보여주지만, 정작 오컬트의 장르적 특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구마 의식이 주요 소재인 드라마’라고 보시는게 더 정확합니다. 좋게 말하면 “안 무서워요, 가족끼리 보세요”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렇게 안 무서우면서 오컬트냐”입니다. 오컬트가 곧바로 호러는 아니지만, 악이 주는 오싹함과 으스스함은 어느 정도 살아있어야 오컬트라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 영화의 차별점, 그리고 잘 잡았다고 본 설정은, 가장 결정적인 마지막 구마에 기를 불어넣는 인물이 “저걸 어디다 써먹느냐”며 무시했던 애동(신재휘)이라는 점입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버버하던 애동이 “수녀가 무슨”이라고 무시당하던 두 수녀에 합류해 사람을 살리러 나섭니다.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핍박받고 무시당하던 이들의 눈물 어린 희생인거죠.
자, 그럼 이 설정을 잘 살렸느냐가 중요한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위에 말씀드린 저의 “역시 영화는 감독이 중요” 주장이 등장합니다. 영화 포스터에 보시면 오른쪽 아래에 뭔가가 불타는 모습이 들어가 있습니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말씀드리진 않겠지만 실제로 영화에 불타는 장면이 있습니다. 불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의 세례가 시각적으로 엄청난 파고를 일으킬 법한데, 그 장면에서 그런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합니다. 전적으로 연출의 역량에 달린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놨어야 할 감정의 수위가 실제론 그다지 높지 않다는게 문제입니다. 왜냐. 두 수녀의 구마 의식이 지루할 정도로 진부하고 긴장감이 떨어지거든요.
여기에서 제가 이번 레터 제목으로 삼은 ‘구마 수녀의 무기는 물고문’ 얘길 해야겠습니다. 도입부 구마 때 흰 통이 등장할 때 “석유통인가” 했습니다. 포스터에 불타는 장면이 있어서 “그래, 이 영화는 악마를 태워죽이나부다” 한거죠. 아니었습니다. 물통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성수통이죠. 성수를 몇 방울 뿌리는 것도 아니고 통째 갖다가 들이붓는데, 한 번 그랬을 때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뒤에도 나오고 또 나옵니다. 구마 의식 장면에서 뭔가 더 보여줄 게 없다 싶으면 예잇 받아랏 물을 들이붓습니다. 악마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도 물고문 당하고 검은 연기 내뿜을 때고요. “저렇게 물 부어서 악마 퇴치 될 거면 나라도 하겠다” 싶더군요. 구마 의식 중 악령과 대치하며 조성되는 근원적 공포도 없다시피 합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물리적인 폭력에서 옵니다. 애가 수녀한테 달려들어서 목을 조르거든요. 신체에 위해를 가해서 무섭게 하는 건 오컬트가 아니라 조폭영화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저는 이 영화 감독에게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내가 꼭 보여주고 싶은 오컬트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보여주고 싶은게 여성연대였다면, 장르를 오컬트로 선택한 게 패착입니다. 여성 주인공 두 명이서 손잡고 뭔가를 해내는 영화는 많고 많은데 그걸 오컬트에서 보여주려면 장르적 특성과 매력에 더 방점을 뒀어야 합니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있으면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 2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인물들에게 부여하고 싶은 개성, 말하게 해주고 싶은 대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니 반복이라는 구태의연이 등장합니다. 물고문 성수통만큼이나 “수녀가 무슨” 대사도 수시로 나옵니다. 그리고 담뱃불. 첫 장면에서야 인상적이었지 유니아 수녀는 뭔가 대사 처리를 해야할 대목에 마땅한 대사가 없다싶으면 수시로 담배를 피웁니다. 담배는 무당(여성)도 피웁니다. 후반부에 뭔가 그녀가 한마디 해야할 거 같은데 대사 대신 피워무는 담배.
악령의 저주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 반복되는 점도 말씀드려야겠네요. 구마 의식에서 보여줄 디테일이 바닥났다 싶으면 수녀는 성수를 붓고 악령은 저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럴거면 그 저주가 무섭기라도 해야하는데, 레퍼토리가 별로 없는지,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욕설 수준도 고만고만해요. 욕을 세게 자주한다고 공포가 조성되나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러면 그건 오컬트가 아니라 조폭영화입니다.
잦은 반복은 영화를 한가하게 보이게 만들고, 느슨하게 만듭니다. 장르가 오컬트면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느슨하게 이완된 오컬트. 보고 싶어질까요. ‘검은 수녀들’이 그 위기에 다가가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서 2시간이 짧아야 하는데, 해줄 말이 없어서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저 장면은 덜어내도 전혀 차이가 없겠다 싶은 신도 꽤 많았습니다.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를 보고 “수녀복 입은 문동은이네”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송혜교 본인은 ‘복수에 나선 ‘더 글로리’의 학폭 피해자 문동은'과 ‘악령을 퇴치하는 유니아 수녀’가 상당히 다른 역할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 보면 과연 그럴까요. 문동은과 유니아는 둘 다 철저하게 내면을 절제하면서 강력한 외부의 적을 거꾸러뜨리려는 의지의 인물입니다. 연기 표현 양식에서 표정과 대사톤이 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송혜교도 그렇습니다. 의상 분위기도 비슷하고(수녀복은 특수복이긴 하지만, 문동은의 옷과 색채나 마감이 유사하죠), 심지어 사는 집도 비슷합니다. 둘 다 집은 오직 잠자리일뿐이니까요. 전 유니아 수녀 집 보고 문동은 빌라인 줄 알았습니다.
전여빈이 연기한 미카엘라 수녀는 감독이 만들다만 인물 같았어요. 초반부엔 구마 의식에 동반할 정도로 지식과 지성이 있는 인물로 보여줄 것처럼 하다가 후반부에 가선 ‘쎈 언니 따라다니는 여중생’처럼 나오더군요. 특히 엔딩에서 전여빈이 맡은 그 임무는 왜 필요했는지,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아마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처럼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강동원의 역할은 송혜교에게 넘어가 버려서 전여빈의 산전수전 고생은 왜 했는지 모를 시간낭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게 앞서 말씀드린 ‘내가 보여주고 싶은 오컬트의 세계가 있었는가’로 귀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감독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악의 본질, 그에 대치하는 인물, 그 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없다보니 온갖 데에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게 아닐지. 결국 ‘검은 수녀들’은 기본 설정이 가진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오컬트로도 드라마로도 아쉽게 마무리됩니다. 이래서 ‘영화는 감독의 예술, 연기는 배우의 예술, 드라마는 각본의 예술'이라하는지도요.
그래도 설 연휴에 영화관에 가신다면 ‘검은 수녀들’이 가장 보실 만할 것 같습니다. 다른 설 영화들에 대해선 연휴 때 찾아뵐 ‘그 영화 어때’에서 말씀드릴게요.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