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3시간 전쯤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으로 불러 ‘계엄 작전 문건’을 전달할 당시,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에게 직접 지시해 두 청장을 안가로 데리고 온 것으로 14일 파악됐다. 경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군 뿐 아니라 경찰 지휘부에도 ‘국회 봉쇄’ ‘정치인 체포’ 같은 명령을 하달한 증거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두 청장은 지난 3일 오후 6시 30분쯤 “대통령께서 급히 찾으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연락은 대통령경호처에서 온 것으로 전해졌다. 두 청장은 삼청동 안가 부근 지점까지 가서,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과 함께 삼청동 안가로 들어갔다고 한다.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이 직접 마중을 나오자,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경찰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라고 처음에 생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호처장은 경찰 출신으로 두 청장의 경찰대 선배다. 박 경호처장은 경찰대학(2기)을 수석 졸업했다. 조 청장은 경찰대 6기, 김 청장은 경찰대 5기다. 박 경호처장은 2013년 어청수 전 경호처장 퇴임 이후 11년 만에 임명된 경찰 출신 경호처장이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부장, 충남지방경찰청장, 경찰청 기획조정관, 경찰청 차장을 끝으로 지난 2011년 퇴임했다.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2015년 대통령경호처 차장을 역임한 바 있다.
두 청장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안가 식당으로 바로 갈줄 알았는데, 회의실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이게 뭔가’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이 안내 후 자리를 뜨자, 이윽고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반국가 세력 척결” 등 취지로 계엄 정당성을 브리핑했고, 그 사이 김용현 전 장관이 두 청장에게 국방부 형식의 ‘계엄 작전 지휘서’도 전달했다. 이 문건엔 ‘2200(오후 10시, 이후 연기) 계엄령 선포’ 등 시간대별 ‘계엄 상황 시나리오’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5분 이상 일방적으로 작전 세부 사항과 계엄의 정당성을 브리핑했고, 참석자들은 거의 듣고만 있었다.
조 청장은 경찰 조사에서 “당시 지휘서가 정식 문건이라고 보기엔 조악한 형태로 타임라인이 적혀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청장은 대통령의 이런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계엄 지휘서’도 찢어버렸다고 진술했다. 김 청장 역시 이 문건을 문서 파쇄기로 없앴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문건이 없더라도 당시 두 청장의 증언이 구체적인 점, 당시 삼청동 안가에서 회동이 있었다는 것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뿐 아니라 박종준 대통령경호처장도 직접 목격한 점 등을 근거로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입증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3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됐다. 조 청장은 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직무정지 상태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는 내란죄 구성요건으로 ‘폭동을 조직·지휘·통솔하는 우두머리나 지휘자, 음모참여자 이외의 자’로서 중요한 책임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적용된다.
한편 경찰 특별수사단에 투입됐던 서울경찰청 임경우 수사부장, 이충섭 금융범죄수사대장 등 간부 2명은 지난 13일을 끝으로 수사단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 중 ‘경찰 조직의 내란 가담 혐의’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해왔다. 둘은 특별수사단 내 팀장 역할을 맡아왔다.
그동안 ‘셀프 수사’ 지적을 받아온 경찰 조직 입장에선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청장을 둘러싼 내란 혐의 수사가 향후 수사 향방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특별수사단장)은 지난 8일 검찰과의 합동수사 대신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금융범죄수사대장 등 경찰 내부 인력을 추가로 투입, 경찰 지도부에 대한 수사를 맡겼다. 서울경찰청 임경우 수사부장은 서울 경찰 내 일반 수사 실무를 총지휘하는 핵심 요직이다. 이충섭 금융범죄수사대장은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장 등을 거쳐 대표적인 수사통으로 꼽힌다. 경찰청장ㆍ서울청장이 동시에 구속된 사상 초유의 일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서울 치안 공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각에 나오면서,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금융범죄수사대장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사단에서 나와 일선 경찰로 복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