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을 고르고 있다. photo 뉴시스

소설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타전된 것은 지난 10월 10일이었다. 목요일 저녁, 바로 그 순간부터 출판업계는 미증유의 일시적 대호황을 맞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겠다는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존 물량이 순식간에 소진됐고, 이후 출판사들은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쇄소를 가동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서량이 제일 적은 한국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100만부’라는 표현이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열기에서 지역의 군소 서점은 소외됐다. 대형 서점에는 한강의 책이 원활하게 공급됐지만 동네 책방에는 물량이 돌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소매와 공급 총판(도매)을 겸하는 교보문고가 지역서점에 일부러 공급을 줄이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국 1000여개 지역서점이 가입한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서련)는 지난 10월 17일 “교보문고가 서점들이 주문을 넣을 수 있는 자사 유통서비스의 주문을 막았다”며 “15일부터는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17일까지도 교보문고로부터 한강 작가의 책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논란이 이어진 끝에 교보 측이 자사 소매 판매량을 제한하기로 하며 사태가 진정되어 가는 듯하지만, 출판업 관계자들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출판업계의 그늘을 드러냈다고 입을 모은다. 교보를 포함한 대형 총판 몇 곳이 우리나라 도서 공급망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데, 도서를 어느 곳으로 얼마나 공급하느냐는 오로지 이들 총판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대형 서점으로 물량이 우선 공급되고, 지역서점은 차선이라는 구조가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상 후 일주일, 지역서점엔 가뭄이었다

지난 10월 18일 저녁 찾은 경기 수원의 ‘임광문고’는 조승기(63) 대표가 25년째 운영 중인 지역서점으로 6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강 작가의 책은 이날에야 소량이 들어왔다고 한다. 조 대표는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교보문고 유통서비스를 통해 한강 작가의 책을 발주했다. 당시에는 50부가량의 주문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10일 목요일 발표 후 11일 금요일부터 인쇄소가 돌아갔을 테니, 그전 물류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를 선착순으로 받은 셈”이라며 “아마 그 순간 전국의 모든 서점이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교보문고 유통서비스를 통한 발주가 막혔다고 한다. 실제 교보문고는 10월 14일까지 ‘도서 1종당 10부로 주문량을 제한하여 접수를 받겠다’는 공지를 띄우기 전까지 발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조 대표는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발주를 계속했으나, 18일 오전에야 소량이 도착했을 뿐이라고 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주문한 도서는 바로 다음날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 대표는 “오전 ‘회복하는 인간’ 10권, ‘소년이 온다’ 2권을 받았고, 오후엔 ‘채식주의자’ 3권, ‘작별하지 않는다’ 3권, ‘소년이 온다’ 5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총판인 웅진북센에서는 소량이나마 한강 작가의 책을 계속 공급받았고, 이날 오후에도 ‘소년이 온다’를 20권이나 받았다고 한다.

이러는 사이 교보문고는 10월 10일 밤부터 17일 오후 5시까지 한강 작가의 책 40만2000부를 판매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의 책 판매 부수는 100만부가 넘는다. 시장을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3사를 합쳐 10월 16일 오전 9시 기준 103만2000부다. 판매량을 공개하던 대형서점들은 지역서점들의 항의 이후 판매량을 더 이상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임광문고에서 10월 11일부터 18일까지 팔린 ‘소년이 온다’는 단 19권이다. 그 가운데 4권은 기존 재고다. 수상 이후 받은 책은 15권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손님이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곳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금요일이었던 18일까지 아직 한 권도 받지 못한 서점도 있고, 주말에는 도서 공급이 되지 않는다. 이날까지 책을 받지 못한 서점은 노벨상 발표 이후 열흘을 공쳤던 셈이다.

비판이 빗발치자 교보문고는 이후 한강 작가 책의 소매 판매를 제한하기로 했다. 10월 22일부터 10월 말까지 교보문고가 공급받는 물량 가운데 1일 2000부만 광화문점 등 오프라인 매장 8곳과 온라인에서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임광문고의 조승기 대표도 지난 23일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어제(22일)와 오늘, 2~3일 정도 팔 수 있는 물량이 교보문고에서 들어왔다”며 “발주한 대로 다 들어오지는 않은 것 같지만 한강 작가의 책이 200권 정도 입고됐다”고 했다. 조 대표는 “책을 사든 안 사든 한강 작가의 책을 뒤적거리고, 필요하거나 읽어보지 않은 책을 사 가는 일이 생겼다”며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16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강의 책들. photo 뉴시스

공급총판 호의에만 의존해야

교보 측이 늦게나마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기 있는 도서 분배의 우선순위 결정이 순전히 공급총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책의 유통 과정을 살펴야 한다. 출판사는 책마다 ‘공급률’을 설정해 총판으로 넘긴다. 공급률이란 정가 대비 다음 유통단계에 요구하는 공급가격이다. 공급률이 높으면 출판사에, 공급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서점이나 총판에 이득이다. 여러 변수는 있지만, 문제집이나 수험서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서의 공급률은 65% 안팎에서 정해진다. 정가가 1만원이라면 출판사는 6500원을 받고 도매상으로 넘기는 셈이다. 총판은 다시 70~75%의 공급률로 지역서점에 넘긴다. 이때 총판은 자신들이 출판사에서 구매한 도서를 자체적으로 분배한다.

이렇게 도서를 전국에 공급하는 총판은 크고 작은 50여곳이 있지만 사실상 4곳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웅진북센, 교보문고, 북플러스, 한국출판협동조합 등인데, 특히 웅진북센과 교보문고의 시장점유율이 다른 두 곳을 압도한다. 대부분의 서점이 기껏해야 총판 2~3곳에 의존하고, 심지어 단독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베스트셀러’에 기대는 출판업계 특성상 총판의 ‘호의’가 없다면 치명적인 것이다.

대형 공급 총판이라고 해서 분배에 대해 내부적 메뉴얼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인기 도서가 아니고서야 기껏 1000부, 2000부 찍는 수준인데 체계가 따로 있었겠느냐”며 “이번 사건에서 교보는 쏟아지는 소매 주문을 쳐내느라 지역서점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고, 다른 총판은 소매를 하지 않으니 그나마 나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매 판매를 주력으로 하던 교보문고가 도매 사업에 뛰어든 것은 ‘상생’이 목적이었다. 교보는 설립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개별 영업점 단위로 서점 납품을 하다, 몇 년 전 한국서련과 손을 잡고 ‘지역서점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도매 사업을 넓혔다. 시작은 중소 서점 연합체인 한국서련 측의 요구였다고 한다. 교보문고가 보유한 서적의 종류가 방대하기 때문에 주문하고자 하는 책을 때에 맞게 공급받고 싶어하는 서점계의 수요가 있었던 것이다.

당초 지역 서점들의 반응은 좋았다고 한다. 먼저 판매 시스템 구축 등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앞선 임광문고의 조 대표도 “교보문고가 가지고 있는 책 데이터를 활용해 검색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며 “포스(POS) 단말기 등도 교보문고에서 구축해준 것”이라고 언급했다. 3~4개 총판과 거래하던 그는 이런 점을 고려해 교보와 웅진북센 두 곳을 남기고 다른 곳은 정리했다고 한다. 현재 임광문고는 전체 책 발주량의 70%를 교보문고와 거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매 서점이 주목한 것은 마진을 적게 남긴다는 ‘5%’ 약속이었다고 한다. 교보문고에 입고되는 책의 공급률에 정가의 5%만 붙여 서점에 넘긴다는 것이다. 한국서련의 조민지 정보화사업팀 팀장은 “도서 정가의 5%만 가져간다는 약속 때문에 교보문고와 단독거래하는 서점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5%’ 정책으로는 이익을 거의 낼 수 없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교보문고가 지금보다 더 독점적 위치가 되었을 때를 우려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출판사 마케팅 관계자는 “지금처럼 ‘호의에 기대는 상생’은 한계가 있고, 이번 ‘노벨상 대란’이 그 단면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며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다시는 이번 노벨상과 같은 기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 측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으로, 금번 도서 수급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며 “공급자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금번의 판매중단 조치와 지역 서점 우선 공급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서점 살리기 예산은 감소세

이런 와중 지역서점 관련 지원 예산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서련에 의하면 올해 집행됐던 4억원 규모의 ‘지역서점 상생협력 활성화 사업’이 내년 예산안에서는 전액 삭감되었다고 한다. 이마저도 1억7600만원 규모의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 사업’과 4억5000만원 규모의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이 전액 삭감되었다가 작년에 일부 복원되었던 것이다. 대부분 지역서점에서 저자를 초청해 강연 등의 활동을 벌이는 데 지원되는 예산이다.

서적 유통에 관한 통계가 ‘깜깜이’인 구조부터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를테면 영화는 전국 관객이 몇 명인지 집계되지만, 책은 판매 부수를 창작자가 알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서점이 출판사에서 책을 받고, 팔리지 않은 책을 반품하는 과정에서 재고 상황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서점과 지역서점이 집계하는 전산 시스템도 다르다. 정부가 주도해 만든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 있지만, 출판계에서는 사용을 꺼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도서 통합전산 시스템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일본의 ‘JPO’, 캐나다의 ‘북넷캐나다’ 등이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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