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요리(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은가?”
지난 7월 26일 북한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여성의 인스타그램에는 북한의 ‘떡국대’라는 상표가 적힌 떡을 이용해 떡볶이를 만드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떡볶이 떡을 이용해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일상을 소개한 뒤, 평양에서의 삶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자신을 ‘비카’(@kisa_inkorea)라고 밝힌 이 여성은 지난 9월 10일 오후 기준 팔로어 5만7000여명의 인플루언서다. 스스로 러시아 출신이라고 밝힌 비카는 프로필에 ‘Видеоблог о моей жизни в КНДР(북한에서의 내 삶에 대한 블로그)’라고 적어놓았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 등 외국인을 앞세워 온라인 선전 활동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김정은 옹호와 체제의 우월함을 강조해 온 이전 행태를 넘어,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각종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해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 유입을 위한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남한 청소년들에게 북한의 왜곡된 정보가 유입될 수 있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돌연 삭제된 평양 거주 ‘유미’와 ‘송아’
북한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온라인 선전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2015년 전후로 여겨진다. 당시 북한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채널을 개설해 미사일 발사나 포격 영상을 게재했고, ‘조선의 오늘’ 채널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선전 만화영화 등이 올라왔다. 인터넷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영상들은 당국의 체제 선전을 위해 편집된 것으로 추측됐다.이후 북한은 빠르게 성장하는 유튜브 시장을 공략했다. 다만 그간 북한이 집중적으로 제작해 온 ‘기록영화’나 조선중앙TV방송 내용 등을 올리는 형태가 아닌, 주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형식의 브이로그(Vlog)나 자신들이 공개할 수 있는 관광명소와 개발된 평양 시내를 보여주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여성과 어린아이를 ‘유튜버’로 등장시켜 이목을 끌었다. ‘Olivia Natasha’라는 채널명을 가진 ‘유미’는 승마를 배우거나 발레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평양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으로 추정된 유미는 지난해 8월 올라온 지하철 소개 영상에서 크리스찬디올의 레이디백으로 추정되는 검정 가방을 들고 등장하기도 했다.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상류층의 모습을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해당 유튜브 채널은 지난해 유튜브 서비스 약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얼마 후 새로운 계정을 다시 만들어 활동했지만 결국 지난 2월 중순 돌연 삭제됐다.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콘텐츠도 있었다. 2022년 자신을 평양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밝힌 유튜버 ‘송아’는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일상생활을 소개하는 브이로그 영상을 연달아 게재했다. 특히 송아가 자기소개를 한 영상은 1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구글 측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채널들을 2023년 6월부터 일제히 폐쇄하면서 송아 역시 자취를 감췄다. 이후 송아는 지난 6월 북한 대외선전매체 ‘내나라’에 재등장했다.
내나라 채널은 지난 6월 12일 지난해 가을 전국 초급·고급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외국어 회화 경연에서 우승한 평양 선교초급중학교 1학년 학생 임송아를 조명하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글에 언급된 임송아는 유튜버 ‘송아’와 같은 인물이었다.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한국의 김치와 만두를 만드는 기술을 보여주겠다’고 등장했다가 사라진 ‘연미(Yonmi)’라는 여성도 있었다. 심지어 2020년에는 ‘수진이’라는 여자 어린이까지 등장해 북한 어린이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수진이네가 거주하는 최신식 타워형 아파트에 최첨단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모습을 담았다. 거실에는 대형 소파와 러닝머신, VR(가상현실) 게임기 등 각종 제품이 즐비한 장면을 영상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북한은 유튜브를 통해 ‘잘 만들어진’ 인물을 동원하고 ‘잘 만들어진’ 환경을 조성한 뒤, 이들이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며 행복해하는 장면들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텅 빈 마식령 스키장의 러시아 여인 ‘비카’
기존에 유튜브를 공략하던 북한은 최근 인스타그램과 틱톡까지도 전선을 넓히고 있다. 특히 외국인을 앞세우거나 공략하는 식으로 그 유형도 달라지고 있다. 앞서 ‘비카’는 지난해 11월 첫 게시글을 업로드한 이후, 지난 8월 말에도 북한의 골프장을 방문해 골프 치는 모습을 올리는 등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평양 김일성광장 앞에서 분홍색 겉옷을 입고 손을 흔들고 있거나, 텅 빈 마식령 스키장에서 개인 스키 강습을 들은 후 호텔로 들어가 수영과 당구를 즐기기도 한다. 그녀의 신상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그녀가 북한 당국의 조종 아래 북한 내부 모습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비카는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한 언론에 답변하지 않기도 했으며, 현재는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막아놓은 상황이다.
이처럼 열악한 북한 인권 상황과 대비되는 영상들이 연이어 올라오자, 비카의 글과 영상을 본 이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영상을 본 한 계정은 “북한의 정책상 인터넷 사용이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정권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비카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골프장 영상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는 반응도 보였다. “당신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하는 계정도 있었다. 반면 “북한이 어떨지 항상 궁금했다”며 “아름답다”고 댓글을 단 계정도 보였다. 비카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하는 댓글 중 일부에는 반박하기도 하면서 일관된 모습으로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강동원 동아대 하나센터장 교수는 주간조선에 “북한 당국이 이전까지는 ‘유미’나 ‘송아’처럼 내부 인물을 통해 선전 영상을 내보냈는데, 이제는 외국에서 온 여행자의 시각으로 북한을 보여준다”며 “마치 정상국가와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외국인 관광 홍보에 목적을 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출신이자 ‘김일성 전기’ 저자인 이휘성(표도르 째르치즈스키) 박사는 “(외국인을 앞세운 영상은) ‘비준과업(김정은 지시)’에 따라 김정은이 스스로 승인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인터넷에 접근이 제한되는 북한의 여건을 고려하면, 최고지도자 직접 승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당국이 배후로 의심되는 소셜미디어 활동은 틱톡에서도 이미 만연하다. 지난 9월 10일 오후 기준 틱톡에 ‘north korean life(북한의 생활)’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다수의 북한 관련 영상을 올리는 계정이 등장한다.
특히 ‘Life in North Korea(@northkoreanlife)’라는 이름을 가진 계정은 팔로어만 305.8K(30만5000여명)가 넘고, ‘North Korea(@movetonorthkorea)’ 계정은 178.5K(17만8000여명)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 계정이 북한 내부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다. 특히 ‘North Korea’의 경우 영상에서 “Who said North Korea doesn’t have restaurant?(누가 북한에는 식당이 없다고 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민들이 고급 식당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북한 당국의 지령을 받는다고 오해를 산 계정도 있다. 자신을 여행가이드(Tour guide)라고 소개한 조이(@zoediscoversnk)는 그간 북한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영상이나 자신이 인공기를 들고 백두산 천지에 오른 사진 등을 올렸다. 조이는 지난 4월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되며 배후에 북한 당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오갔다. 그러나 이는 주간조선 취재 결과 오류로 드러났다. 조이는 북한 거주 여부와 북한 당국과 연관돼 있느냐는 주간조선의 질문에 “나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지 않으며,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올린 북한 내부 사진은)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며 찍은 사진”이라며 “현재 ‘고려여행(Koryo Tours)’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나는 북한 당국과 연관이 없다”고도 전했다. 조이가 근무 중인 고려여행은 1993년 설립된 중국 베이징에 있는 영국인 소유의 여행사로 알려졌다. 해당 여행사는 북한 여행을 주력 상품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코로나19의 여파로 북한 국경이 닫히기 전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SNS를 통한 폭넓은 선전 활동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과 통일부는 지난 9월 1일 ‘국가 사이버안보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한 삭제·차단을 중요 과제로 넣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중국 언론홍보업체가 국내 언론사의 웹사이트로 위장해 친중·반미 콘텐츠를 유포한 사례를 적발하기도 했다.
청소년들, ‘북한 정보 40%’ SNS로 접해
북한의 선전 활동은 외국인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지만, 남한 내 청소년들에게 이 같은 북한의 영향력이 닿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남한 내 청소년들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각종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지난 9월 3일 발표한 중·고등학생 대상 ‘통일여론 조사’ 결과,통일·북한 관련 정보를 접하는 경로 중 ‘유튜브·쇼츠’가 25.1%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인터넷 뉴스 23.8%, TV·라디오 16.6%, 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SNS) 12.7%, 학교 등 교육기관은 11.4% 순이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북한 정보 습득이 40%에 육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이러한 영상물을 통해) 청소년들이 북한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 인권의 열악한 참상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차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유해 사이트 차단 방식”이라면서 “(이를 아는) 북한이 우회 서버로 공략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계속 찾아서 막는 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