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28)씨는 10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그가 세상에 나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0년간 5번에 걸쳐 취업을 했지만 얼마 다니지 못하고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20대 초반 헬스장에서 처음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정씨는 갑자기 찾아온 감정기복을 이기지 못해 일을 그만두고 재은둔을 택했다. 정씨가 일을 시작한 지 11개월 만이었다. 이후로는 일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졌다. 화장품 판매점에서 6개월, 병원에서 3개월, 약국에서 1주일, 그리고 가장 최근 취업했던 병원에서는 단 하루 만에 실직했다. 5번의 실직은 고스란히 정씨에게 실패경험이 됐고, 그는 실직 때마다 자신감을 잃고 1~2년씩 다시 은둔했다.
10년 동안 5번의 취업과 5번의 재은둔
‘경력이나 자격증이 필요 없는 쉬운 일 위주’로 지원했고, 일을 하면서 ‘재밌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정씨를 재은둔으로 이끈 건 고질적인 대인기피증과 계속 스스로 ‘잘하고 있나’ 의심하며 위축되는 피해의식이라고 했다. 그는 “20대 초반에는 재밌게 일했던 때도 있는데, 20대 후반이 되니 일을 잘하고 있는데도 눈치가 계속 보였다. 그게 심해져서 그만두겠다고 했고 그 뒤로 다시 도전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현재 은둔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의지는 충만한 상태지만, “다시 (은둔 상태로) 들어가는 중인 느낌이다”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사회에 적응할 방법을 스스로 찾지 못했고, 장기 은둔으로 인한 관성에 이끌려 방황하는 것이다.
고립·은둔청년 앞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용기내어 방 밖으로 나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다. 사회인으로서 직업을 갖고 자아를 실현하는 건 그다음 단계다. 고립·은둔에서 탈출했다고 해서 바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사회 복귀에 실패한 청년들은 다시 용기를 내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청년재단의 ‘2023 재은둔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씨의 사례처럼 고립·은둔을 탈출했다가 재은둔·재고립 상태에 빠지는 청년들이 절반이 넘는다(58.8%). 이 고립·은둔청년이 ‘고립·은둔을 중단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던 기간’은 1년 미만(40.3%)이 가장 많았는데, ‘재고립·재은둔 기간’은 바깥활동을 한 기간보다 훨씬 긴 1년 이상~2년 미만(39.8%)이 가장 많았다.
주간조선은 지난 7월 12일부터 24일까지 구직 활동을 했거나 일경험이 있는 7명의 고립·은둔 청년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구직 과정에서 왜 재은둔·재고립에 빠지는지 살펴보고 전문가들에게 해결책을 자문했다.
이들이 은둔에서 벗어나고도 좌절하는 이유는, 우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앞서의 정씨는 현재 은둔에서 벗어나 청년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정부로부터 주기적으로 일자리 사이트 안내 등 취업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혼자 일하는 사무직’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지금껏 한 번도 사무직에 지원하지 못했다. “꿈이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고. 제가 집에 있던 공백기가 되게 길잖아요.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막상 일을 하려고 하면 손을 아예 못 대겠어요.” 정씨는 이와 같은 막막함과 앞서 일에서의 실패 경험을 이유로 재은둔의 기로에 놓인 상태다.
은둔 막 벗어난 청년 앞에 놓인 ‘빈칸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이력서에 채워야 할 ‘빈칸들’이 다음 난관이 된다. 자기소개서 등 서류전형의 경력, 나이, 성장과정란에 적어야 할 이들의 ‘공백기’가 또래에 비해 길기 때문이다. 앞서의 정씨는 “한국 사회는 취업 과정에서 공백기나 나이를 물어본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회사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명문고등학교 출신인 김모(25·2년 은둔)씨는 “친구들은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는데 나 혼자만 멈춰 있다 보니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8년간 고립과 재고립을 반복한 노모(36)씨는 이 ‘빈 이력’을 채우기 위해 창업까지 했다. 노씨는 “서류 전형부터 통과하기 어려웠다.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아서인 것 같다”며 “온라인 소액 창업을 했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류 전형에서 제대로 된 경력이 있다고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조차도 수익이 별로였어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백의 벽’이 가시화되는 건 면접전형에서였다. 고립·은둔청년들은 취업과정에서 공백기를 직접 묻고 평가하는 질문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 대학 재학 기간 5년간 은둔에 빠졌었던 강모(29)씨는 물류 현장직 면접에서 ‘대학 졸업 시기가 왜 이렇게 늦냐’ ‘대학교 때 동아리를 왜 안 했냐’라는 서류 기반 질문을 받고 불합격했다. 강씨는 “방황한 시기를 숨기거나 직종이 바뀐 것을 설명해야 하니까 태도부터 움츠러든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자퇴 이후 10여년간 은둔생활을 한 윤모(32)씨는 카페, 공장 등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을 때마다 ‘그동안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윤씨는 “중학교 이후 학력이 없으니 말할 내용이 없었다. 채용이 되더라도 동료들이 물어보는 게 불편해 그만뒀다”고 말했다.
결국 이제 막 고립 은둔에서 벗어난 이들이 쉬지 않고 스펙을 쌓아온 또래들을 평균으로 두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에는 너무나도 큰 압박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이 꼽은 고립·은둔을 ‘처음’ 하게 된 계기 1순위는 ‘취업 어려움, 실직’(36.9%)이다. ‘재고립·은둔’ 이유 1순위는 ‘첫 고립·은둔의 원인 미해결’(32.9%)이고, 2순위는 ‘사회생활 적응의 어려움’(22.9%)이다.(‘재고립·재은둔 실태 설문조사’·2023·청년재단)
어렵사리 면접에 통과해 일을 하게 되더라도, 취업 초기에는 사회성이나 일 수행능력이 비교적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랜 은둔 기간으로 정신적·신체적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몇 년 만의, 혹은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년간의 은둔기를 지낸 주모(35)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을 때 담배 이름을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손님에게 찾는 담배에 대해 되묻거나, 손으로 가리켜달라는 등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하루는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아 그 어떤 업무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주일간 아르바이트를 한 주씨는 다시 2년간 은둔에 빠지기도 했다.
앞서의 강씨는 현장직 일에 뛰어들었지만 오랜 은둔기간으로 인해 체력이 부족함을 느꼈고,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여전히 정신과 약을 먹고 있었던 상태라 때때로 졸리거나 예민해지기도 했다. 강씨는 “반응속도나 이해도가 떨어지니까 실수를 많이 했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청년들의 56.1%는 ‘신체 건강이 좋지 않다’(‘매우 좋지 않다’ 포함)고 답했으며, 정신건강 상태 역시 63.7%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2023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보건복지부)
‘전보다 괜찮아 보이는 상태’도 이들을 재은둔으로 몰아넣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고립·은둔청년이 하루이틀 방 밖으로 나오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주변인들의 기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이것이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온다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지하 18층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오고 있는 아이들인데, 그 속을 모르는 부모들은 욕심이 나서 지상 1층까지 끌어올리려 하게 된다. 이 같은 주변의 반응 때문에 나오려던 아이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더욱 깊은 재은둔에 빠지기도 한다”며 “애초에 고립·은둔청년이 가지고 있던 맥락을 이해하고, 천천히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재은둔에 빠지게 된 이들은 대체로 ‘내 탓’을 했다. 앞서의 윤씨는 ‘스스로 왜 취업과정에서 불합격했다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사장이라도 안 뽑는다. 성실하길 하나, 의욕이 있길 하나. 나는 패배자였다. 도망간 거다. 누굴 욕할 수 없다. 그저 내가 진 거니까”라고 자책했다. 또한 “그전까지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잠만 잤다.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사회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합격이 어려웠다”며 자신의 불합격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앞서의 노씨는 작년부터 50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도 5군데 보는 등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일반 청년에 비하면 적은 이력서”라고 스스로를 낮췄다. “일반 청년들은 훨씬 많이 지원하고, 그 와중에 스펙도 쌓아서 이력서를 발전시킨다고 하는데, 이력서를 넣는 것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스펙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라는 그의 답변에서 그가 겪고 있는 또래 압박이 여실히 드러났다.
단계별 훈련과 맞춤형 일자리 필요
전문가들은 이들을 고립·은둔으로부터 끌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단계별 훈련과 맞춤형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은둔형외톨이 지자체 지원조례 제정을 최초 제안한 오상빈 광주광역시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은둔 전문 케어러’가 은둔청년 생활에 밀착해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고 말문을 열게 해야 한다. 이후에 맞춤형 사회성 훈련이 필요하다. 욕구조차 표현할 줄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처음부터 직장을 연결해주기보다는 사회 기술 훈련을 세세하게 해서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 김재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는 “직무 기술은 좋은데 사회성만 떨어지는 친구들도 많다. 은둔청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해 연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은둔을 염두에 둔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둔 전문 케어러’의 전담 기간을 길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4년간 은둔생활을 한 임모(25)씨는 혼자서 마트 물류,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에 지원했을 때 각각 3개월, 하루 동안만 일을 지속했다. 그러나 성남시 학교밖청소년배움터 ‘일하는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충분히 잘하고 있고 괜찮으니 같이 해보자’라는 응원을 듣게 된 이후에는 9개월 동안이나 카페에서 일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일하는학교 관계자는 “내가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은둔을 벗어나 직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상희 대표는 “일본에서는 은둔 당사자 출신이 24시간 돌아가는 온라인 익명 상담 플랫폼을 개발했다. 전문 상담사 1000여명이 상주하며 외로움이나 고민이 있는 이용자들의 채팅을 기다린다. 이렇듯 소셜미디어가 10~20대 젊은 연령대의 맞춤형 사후 관리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