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시 가운데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한 도시가 나왔다.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비유가 붙은 도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안겨준 이 고전은 부산 앞에 수식어로 붙을 때 불명예스러운 뜻을 내포한다. ‘바다’는 부산의 자랑이지만 그 앞에 ‘노인’이 붙으면서 부산은 늙고 생명력이 떨어진 도시가 됐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라는 수식어를 단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고령화 정도가 높은 부산의 현실을 빗댄 지 시간이 오래 흘렀단 뜻이다. 그리고 이제는 ‘소멸’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6월 28일 발간한 ‘지역산업과 고용’에서 이상호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0%로 8개 특별시·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소멸위험지수값은 0.490이었다. 소멸위험지수는 1.5 이상이면 소멸저위험지역, 1.0〜1.5이면 보통, 0.5〜1.0이면 주의, 0.2〜0.5면 소멸 위험,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한다.
본래 지역 소멸의 개념은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일본 총무상이 이끄는 일본창성회의가 2014년에 낸 ‘마스다 보고서’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마스다 보고서는 현재의 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2040년까지 일본의 절반에 해당하는 896개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한다고 경고했다. 이 내용은 한국에 ‘지방소멸’이라는 제목을 달고 번역돼 출간됐다. 이 보고서의 분석 기법을 참고해 개발된 게 ‘지방소멸위험지수’다. 한 지역의 20~39세에 해당하는 여성 인구(가임 여성)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부산의 젊은 여성들
이번 조사에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한 부산과 달리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서울은 0.810, 경기도는 0.781, 인천은 0.735를 기록했다.
부산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6년 12월 주민등록 인구가 349만8529명을 기록해 처음 35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4년 뒤인 2020년 9월에는 340만명 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난해 10월에는 330만명도 지키지 못했다. 10만명씩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통계청은 2022년 ‘장래인구 추계 시도편(2020~2050년)’ 보고서에서 부산의 인구 300만명 붕괴 시기를 2034년(298만2000명)으로 전망했다. 불과 10년 뒤에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제2의 도시’라는 자부심도 곧 인천에 내줄지 모른다. 통계청은 2035년을 부산과 인천의 인구가 역전되는 해로 전망했다.
소멸 지수 공식을 고려할 때 고령화 지수가 높은 부산은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게다가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젊은 여성의 이탈이다. 특히 20대 여성의 이탈은 지역 사회가 당최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1997년생 김지혜씨는 ‘서울러(서울 사람)’가 된 지 4년이 됐다. 그녀는 부산토박이였다. 부산의 한 사립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부모님은 부산에서 김씨가 정착하길 원했다. 하지만 ‘독립하려면 서울 정도는 가야 허락하실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로 부산에서 취직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녀는 ‘인서울’을 꾀했다. 현재 그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한다. 1인 가구가 많은 마포구에서의 삶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지혜씨처럼 부산을 빠져나간 20대(20~29세) 여성은 1만8935명이다. 같은 기간 다른 시도에서 부산으로 전입해 온 20대 여성은 1만7400명이다. 합해보면 2023년에만 1535명의 20대 여성이 부산에서 줄었다.
1535명의 감소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간을 늘려보자. 지난 10년(2014~2023년)간 이동을 통해 줄어든 부산의 20대 여성 인구는 총 1만7693명이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숫자는 더 커진다. 부산의 20대 여성 이탈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20대 여성 이탈↑,혼인·출산↓
빠져나간 이들이 어디로 향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순 없다. 단 이 기간은 서울로 전입해 오는 20대 여성 인구가 늘어난 때다. 20대 여성의 부산 이탈이 두드러지는 지난 10년간 서울의 20대 여성 인구 순이동(전입인구에서 전출인구를 뺀 숫자)은 모두 양수를 기록했고 그렇게 증가한 숫자만 22만3006명이다. 20대 여성이 전국에서 대거 서울로 이주했다는 뜻이다.
애초 인서울 대학 입학으로 20대 초반(20~24세)이 이끌던 여성 이주 행렬에 20대 중후반(25~29세)이 가세한 건 2017년부터다. 이때부터 25~29세 여성의 서울 입성이 큰 폭으로 늘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과거 패널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부산을 떠나는 20대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남성은 일자리가 있는 울산이나 경남 창원으로 이동하는 수가 꽤 되는데 여성의 경우는 대부분 수도권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최근 10년(2014~2023년)간 부산의 인구이동 데이터를 성별, 연령별(5개년)로 톺아보자. 20~24세 여성은 지난 10년간 전입이 전출보다 3443명 많았다. 반대로 25~29세 여성의 경우 10년간 부산을 빠져나간 인원이 들어온 수보다 2만1136명 더 많다. 20대 중반을 기점으로 두 그룹의 인구 이동 모습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25~29세는 대학 졸업 뒤 취업에 매진하거나, 더 좋은 직장을 찾아다니는 시기다. 동시에 혼인에 더 가까운 나이다.
20대 여성, 특히 20대 후반 여성의 이탈은 부산이 당면한 고민을 보여준다. 부산이 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한 건 20대 여성 인구가 부족하다기보다는 부산에 눌러앉아 살 여성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인구 구성상 아이가 늘어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보통 지방에서는 20대 여성 인구의 유출 원인으로 ‘일자리’를 꼽는다. 20대 여성이 찾는 일자리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몰려 있고 그래서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부산 역시 마찬가지인데 지표는 꽤 심각하다. 지난해 부산의 고용률(생산가능인구인 15세 이상 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57.7%로, 17개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낮았다. 17년째 고용률 전국 최하위 도시다. 특히 남성은 67.4%, 여성은 48.8%였는데, 울산(48.4%)에 이어 여성 고용률이 가장 열악했다. 그나마 울산은 ‘중공업 도시’라 남성 친화적 일자리가 많은 곳이다.
고용률이 열악하다는 건 부산이 여성 일자리가 부족한 곳이라는 걸 방증한다. 그러니 부산 밖으로 이탈한다. 지난해 2월 부산연구원의 최청락 책임연구위원은 ‘부산지역 청년 여성의 첫 일자리 실태와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에 따른 고용한파가 청년 여성에 집중된 부산의 현실을 언급한 바 있다. 최 연구위원은 “코로나19에 따른 고용 충격이 전국 청년 여성보다 부산 청년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2021년 1분기 기준 코로나19 발병 이후 1년 동안 부산 취업자 수 감소 인원의 87.9%가 여성인데 20대와 30대가 부산 전체 여성 감소인원보다 더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20대 여성의 이탈은 여러 다른 결과와 연동된다. 코로나19로 미뤘던 혼인이 늘어나면서 전국 혼인 건수가 12년 만에 1.0% 증가했다는 2023년, 부산은 1만303건의 혼인 건수가 있었는데 전년보다 오히려 3.0% 감소했다. 부산보다 인구가 적은 인천(1만1621건)보다 혼인 건수가 적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도 3.1에 불과해 경남, 전북과 함께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은 지역이 됐다. 가장 결혼하지 않는 도시다.
지난해 부산에서 태어난 아기는 1만2900명으로 전년 대비 8.7%, 1200여명이 줄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뜻하는 ‘조출생률’도 3.9명으로 전국 8개 특별시·광역시 중 가장 낮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66명으로 0.7명 선이 무너졌는데 이는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2023년 부산의 3대 출생 관련 지표는 모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산의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20대 여성을 머무르게 할 것인지를 묻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여성의 이탈과 지역의 인구 감소, 그리고 소멸 위험 등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최 연구위원은 “고용한파가 청년 여성에 집중된 부산의 현실을 고려할 때 청년 여성의 안정적인 일자리 진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출산하면 이렇게 지원합니다”라는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단계가 됐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