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저버’를 유행어로 밀죠.”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지난 7월 10일 기자회견을 마치자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저저버’로 떠들썩했다. 이날 홍 감독은 감독 선임의 변으로 “저는 저를 버렸습니다”라고 말했고 이 부분이 귀에 박힌 축구팬들은 이를 밈(meme)으로 사용했다.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자기도 버린 당신을 왜 우리가 받아줘야 하냐”는 글들이 쏟아졌다.
지난 7월 15일 홍 감독은 외국인 코칭스태프 선임 관련 업무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등장해 기자들 앞에 또 한 번 섰다. “내 인생 마지막 도전을 응원해 달라”는 말로 항변했지만 이 역시 차가운 반응이 쏟아졌다. “왜 당신의 개인적 도전을 국민들이 응원해줘야 하냐” “그 자리는 도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축구 팬들은 싸늘했다.
과거 국감 때도 증인 불참해
이 모든 건 불투명한 감독 선임 과정이 빚어낸 참사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민적 관심사고 이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한 자리다. 대한축구협회(축협)는 아시안컵에서 부진한 내용을 보였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지난 2월 경질한 뒤 5개월 동안 새 사령탑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당초 외국인 감독 선임이 목표라고 밝혔으나 지난 7월 7일 홍 감독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비판이 일었다. 외국인 감독 후보들이 거쳤던 프레젠테이션과 심층 면접도 없이 홍 감독이 결정됐고 이 때문에 불공정 시비도 생겼다.
절차적 정당성만큼이나 홍 감독이 현 대표팀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도 논쟁거리다. 그는 이미 월드컵에서 쓴맛을 봤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1무2패로 예선탈락했다. 2015년 중국 항저우 뤼청 감독을 맡았지만 16개팀 중 15위라는 성적표를 받았고 심지어 팀을 강등시켰다. 2020년 12월 K리그1 울산 HD 감독을 맡은 뒤 이끌어낸 2022~2023년 리그 연속 우승을 지도력의 증거로 내세우는 의견도 있지만 울산 HD가 사실상 K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스쿼드로 이루어진 팀이기에 “선수 체급으로 찍어누른 우승”이라는 반론도 있다. 현재 유럽파가 주축이 된 대표팀은 ‘황금 세대’로 평가받는다. 선수들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감독이냐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가 나섰다. 직접 축협을 조사하겠다는 거다. 이번 감독 선임 과정 등을 포함해 협회 운영 전반을 살펴보겠다는 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이다. 축협은 올해부터 공직유관기관에 포함됐고 문체부는 행정적인 부분에 사무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반면 축구협회 내에는 감사는 수용하지만 마뜩잖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관계자는 “최근 공부가 필요해 사적인 자리에서 축협 관계자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내부 개혁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외부의 터치는 반대하는 미묘한 입장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종목 협회보다 콧대가 높다는 이야기가 이런 건가 했다”고 말했다.
축협은 ‘개혁’이라는 단어와 쌍으로 자주 엮인다. 독단적인 행정 처리 등으로 축협이 국내 축구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에 자주 노출돼서다. 협회 사유화 논란부터 밀실 논의, 불투명한 절차, 그리고 제식구 감싸기 등 여러 사태를 겪었지만 협회가 통감하고 자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드물다. 여기에 외부의 개입도 배제한다. 축협은 국제축구연맹(FIFA) 정관 14조 1항을 필요할 때마다 강조한다. 이 조항은 각국 축구협회가 제3자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되며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걸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축협은 2012년 잇따른 비리와 부실행정으로 책임자들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을 때 FIFA가 보장한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조중연 당시 축협 회장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청문회에 불참해 여야 의원들 모두를 분노하게 했다. 당시 축협은 국감 관련 자료제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FIFA의 독립성 요구가 축협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FIFA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징계를 받을 경우 자칫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에 나가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우려를 이끌어낸다.
실제로 FIFA는 정치권의 축구협회 개입을 이유로 징계를 내린 전례가 있다. 이런 사례 상당수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FIFA의 결정이 옳았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2018년 10월 5일 FIFA는 시에라리온 국가대표팀을 국제무대에서 퇴출하는 징계를 내렸다. 정부가 시에라리온 축구협회 이샤 요한센 회장을 해임해서 생긴 일이다. 하지만 당시 요한센은 공금 유용 혐의 등으로 시에라리온 반부패위원회로부터 기소된 상태였다. 결국 징계 8개월 뒤 요한센이 회장으로 복귀한 뒤에야 시에라리온 대표팀은 국제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말리와 케냐 대표팀도 비슷한 징계를 받았는데, FIFA는 그때마다 정치권의 개입을 근거로 댔다. 반면 해당 국가 정부는 나름의 이유를 들었다. 협회 내 파벌 등으로 리그 운영이 혼란스럽고 부패가 만연하는 등 부도덕한 운영이 이뤄져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북한은 월드컵 예선 어떻게 나오나”
반면 정치권이 축구대표팀으로 난리를 쳤던 프랑스는 어땠을까. 프랑스 대표팀은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조 최하위라는 성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 장 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협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대표팀의 분열과 참패에 대해 해명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둘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부는 축구협회에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는 “내부의 일이니 우리가 해결하겠다”며 FIFA의 압박을 불쾌해했다. 뤽 샤텔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국가적인 문제로 부상한 이 사태와 관련해 국회의원들이 진상조사에 나서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고 프랑스 국회의원들은 “FIFA의 역할이 프랑스 국회의원 협박하는 일이냐”며 반발했다. 모든 과정이 끝났지만 FIFA의 징계는 없었다. FIFA 징계의 일관성을 비판하는 대표적 사례다.
정치권에서는 FIFA 징계 주장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 정도로 징계받을 리 없다고 본다. 진상을 알아보는 과정이고 매우 정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이다. 앞선 문체위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으니 올해는 국정감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FIFA가 정녕 외부 개입을 문제 삼는다면 북한이 월드컵 예선에 나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