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국내 최초로 AI 법률상담 챗봇인 ‘로앤봇’을 만들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로앤봇이 출시된 지 4개월이 넘어가다 보니 최근에는 사람들이 AI 변호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묻는다. 로앤봇은 지금까지 7000건이 넘는 법률상담 질의에 대해 답변을 하였고, 조만간 1만건을 돌파할 예정이다. 이에 이번 칼럼에서는 로앤봇에 실제로 어떤 질의응답이 오고 갔는지 그 이용 양상에 대하여 처음으로 공개해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AI 변호사를 찾았고, 어떤 내용을 물어보았을까. 사실 처음 로앤봇이 나왔을 때 법조계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더 많았다. 가장 큰 우려는 변호사를 찾아갈 의뢰인을 AI가 뺏어간다는 것이었다. AI가 무료로 법률상담을 해주면 변호사의 먹거리(상담, 사건수임)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였다. 또 인간 변호사들마저 결국은 무료 상담으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도 심했다.
두 번째 우려는 부정확한 답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었다. 법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AI의 잘못된 답변에 따라 법적 대응을 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이 두 가지 우려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하는 바였다. 이에 최근 설렘 반 걱정 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난 7000여건의 질의응답을 살펴보았다. 정말 내가 만든 AI가 변호사의 먹거리를 뺏어갔을까. 또 일반인을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을까.
10대 자녀들의 부모 이혼 상담 많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매우 놀랐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고 이내 숙연해기까지 했다. 가장 많은 상담이 이루어진 이혼 분야에서는 놀랍게도 10대 청소년들의 질문이 많이 등록되고 있었다. 미성년자의 경우 변호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변호사와 상담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절박한 문제가 있더라도 도움받을 창구가 부족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종종 등록된다. “부모님이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수시로 폭행을 행사하여 부모님이 이혼하게 된다면 엄마와 같이 살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다. 실제 원문을 보면 가슴 아픈 내용이 많다. 법조인들은 이혼 상담이라고 하면 당연히 남편 또는 아내를 떠올리는데,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는 자녀들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로앤봇은 법률시장의 소비자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러한 미성년 자녀들에게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로앤봇은 이렇게 알려줬다. “이혼 절차에서 양육권 결정 시,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이는 자녀의 정서적 안정, 학업 진행,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합니다. 당신이 17세라면, 당신의 의사도 양육권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당신을 때린 적이 있고, 이로 인해 당신이 엄마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이 사실을 법원에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당신의 복리를 위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상황을 고려하면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로앤봇에 남겨진 이후의 후속 질의응답을 보고 나니 이들의 걱정과 궁금증이 얼추 해소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미성년자들은 보통 상담료를 내기도 어렵고 또 향후 변호사를 선임할 일도 없으니 법률시장에서 그리 환영받는 손님이 아니다. 그러나 AI는 이들이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걱정만을 털어놓아도 여전히 상세하고 친절한 답변을 제공했다. 적어도 AI 변호사에게는 의미 없이 시간을 잡아먹거나 실질적으로 비용 지불의사가 없다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특이한 점은 혼인기간이 30년 내외의 연령 높은 이용자들의 질의가 의외로 많았다. 이러한 이용자들의 질의는 또 다른 양상을 띠었는데, 마치 법률상담인 듯하면서도 심리상담인 듯하다는 것이다. 법적대응에 필요한 객관적인 질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인생사를 감정적으로 풀어놓는 질의들이 상당수 있었다. 필자도 법률구조공단에서 1년4개월간 변호사 업무를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업무 중에 감정적인 얘기를 계속 듣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AI 변호사는 이용자가 아무리 말을 길게 하고 감정적으로 써도 변함없이 응대했다. 그래서 더 계속해서 자기 얘기를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질의응답이 이루어진 시간이 심야나 새벽 시간이 많은 것 또한 인상 깊었다. 그 내용을 보면 아마도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심야나 새벽에 퇴근하면서 이용하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법률시장서 소외된 사람들이 AI 찾는 이유
필자는 이러한 질의응답을 훑어보면서 숙연해졌고 또 반성했다. 필자를 포함하여 법조계는 AI가 미칠 영향에 대해 평가할 때 주로 ‘변호사의 먹거리’ 또는 ‘법률시장의 주도권’과 같은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앤봇은 인간 변호사와 경쟁하면서 법률 소비자들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법률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한 당직 변호사 같기도 했다.
리걸테크를 둘러싸고 많은 대립과 논란이 있는 지금,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법률서비스의 궁극적인 존재 의의에 대해서다. 법률서비스와 그 공급자인 법조인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법률은 사회질서로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변호사는 그중에서 ‘법의 적용’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법률은 다른 서비스와는 달리 즐거움을 위해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모두의 일상생활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면서 불가피하게 받아야 하는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법률 서비스는 시장 또는 변호사의 관점보다는 일반 국민이 느끼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즉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법률서비스의 궁극적 존재 의의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법률 AI 또는 리걸테크에 대한 접근에서도 잊혀서는 안 된다. 과연 AI를 통해 법률시장이 커지거나 변호사의 업무가 편리해졌는가라는 관점에 앞서서, 과연 더 많은 사람들이 법적 도움을 더 많이 받게 되었는가라는 관점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법률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과거에 비해 변호사 수는 많아졌지만, 사건의 특성이나 의뢰인의 사정에 따라 변호사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법률 문제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 법률 사각지대는 비단 경제적 극빈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변호사들의 도움이 미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법률시장의 매출이나 통계로 드러나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의 일부이고 우리가 반드시 더 개선해야 하는 영역이다.
실제로 필자가 법률 플랫폼(로앤굿)을 운영해보면 법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플랫폼에는 매월 20만명(연간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지만 변호사에게 제대로 사건을 문의하는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일부만 변호사를 선임한다. 20만명의 방문자들이 검색한 키워드들을 보면 분명 법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방문자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해보면 본인의 사건이 어떤 문제인지 또는 변호사가 필요한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변호사라는 존재는 TV에서나 보는 직업이라고 멀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로앤봇이라는 AI 변호사를 통해 그들 중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그 질의응답을 살펴보면 이들이 왜 지금까지 인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상담비용 또는 착수금과 같은 경제적 부담, 변호사를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공간의 제약, 굳이 변호사가 필요할까 생각하는 심리적 거리감 같은 것들이 원인이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이러한 한계들이 바로 소외된 사람들이 AI를 찾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인간 변호사를 보완해줄 가능성
최근 AI에 대한 법조계의 가장 큰 화두는 ‘AI는 과연 법조인을 대체할 것인가 또는 보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로앤봇의 실제 질의응답 내용과 그 이용자 분석은 이 질문에 대해 ‘AI는 인간 변호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AI 상담챗봇은 기존의 법률시장이 보듬어주지 못했던 사각지대의 국민들을 위해 기초적인 상담을 제공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일반 국민의 사법접근성 강화, 나아가 사법의 민주화라는 가치에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대국민 AI 법률서비스가 더 발전하면 단순 상담뿐 아니라 법률문서의 초안을 작성해준다거나 더 깊은 법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 법적 대응이 필요한 의뢰인들은 AI를 이용하면서도 여전히 인간 변호사들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AI 변호사가 아무리 똑똑해도 법정에 나가서 당사자를 대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 나가지 못하므로 당연히 변호사로서 법률문서를 최종 완성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AI 변호사는 의뢰인들을 인간 변호사에게 이끌어주는 친절한 안내자로서 기능할 것이다.
또한 AI 법률서비스는 변호사가 수행하는 법률업무를 도와주는 방향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AI는 산재해 있는 사실관계를 찾아주고 정리해줄 것이며, 광범위한 법률정보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아주고 이를 문서로 작성해주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이를 통해 한 명의 변호사가 처리할 수 있는 법률 업무가 훨씬 늘어날 것이고, 나아가 과거에는 시간이 많이 들어서 맡지 않았던 작은 사건들도 변호사에 의해 손쉽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AI 변호사는 변호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비서로서 기능할 것이다.
정리해보겠다. 우리나라에 AI 상담 변호사가 등장한 지 4개월이 되었다. 4개월간의 상담내역을 보니 놀랍게도 기존 시장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이 오히려 이 AI 변호사를 많이 이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법률 AI에 대하여 접근할 때 ‘일반 국민의 법률서비스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함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용 양상을 통해 법률 AI는 변호사를 위협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과제이다. 법률 AI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아마 어젯밤에도 로앤봇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변호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