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최근 집회·시위 소음 기준 위반을 법으로 엄정히 다루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시위자들의 ‘꼼수’ 경고 회피와 법망 미비로 속수무책인 것으로 16일 나타났다. 현행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시위 소음의 책임은 주최자에게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주최자에게 실시간으로 소음을 줄이라 경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주최자에 대한 직접 경고는 어렵다고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까지 나서서 집회 소음을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소음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지난 2월 28일 광화문 등 서울 도심 일대에서 열린 민노총 대규모 집회에서 소음 기준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집회 소음을 수시로 측정했는데, 평균 소음이 75dB(데시벨)을 넘었다고 한다. 집시법에 따르면 주거지역과 학교, 병원 인근의 주간 평균 소음 기준은 65dB, 그 밖의 지역 주간 평균 소음 기준은 75dB 이하다. 경찰이 10분간 측정한 평균 소음 시간이 기준치를 넘으면 제재 대상이 된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집회선 최고 소음이 100~130dB으로 수차례 측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집회 중 주최 측 인사에게 ‘소음 유지 명령서’를 발부했다. 법령에 규정된 기준 이하 소음을 유지하라는 명령서다. 하지만 집회 주최 핵심 관계자들은 “경찰의 소음 유지 명령서를 직접 받지 못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주최자들이 경찰을 회피하거나 혹은 대규모 군중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음 유지 명령서를 직접 전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경찰이 무리하게 집회 현장에 들어가다간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 수 있어 위원장 등 주최 당사자가 아닌 국장급 연락 책임자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경찰은 “소음 명령이 윗선에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조사 중”이라며 “이 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부 집회·시위자는 이와 같은 점을 간파하고 집회 중에 아예 경찰의 연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총뿐 아니라 보수 집회 역시 소음 기준을 넘을 때가 있지만, 주최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한다.

경찰은 소음과 관련한 처벌 규정이 약하고 법원도 솜방망이 판결만 내리는 경향이 강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고 있다. 최근 6년간 형이 확정된 소음 기준 위반 사건 19건을 살펴보면, 이 중 14건(73%)이 벌금 20만~50만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관련해 성남지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자 이 대표 지지 단체와 보수 성향 단체 맞불집회가 열렸는데, 양측은 경찰의 소음 중지 명령에도 집회를 계속했다. 이에 경찰은 지난 2월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집시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민노총 건설노조 집회 경우처럼 소음 기준을 강화하더라도 주최 측이 소음 중지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뾰족한 처벌을 할 수 없는 제도적 허점은 여전히 남는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