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경북 울진군의 한 야산에서 작년 3월 발생한 ‘울진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나무를 베어내거나 파내 폐기물로 버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산불은 작년 3월 4일 시작돼 10일간 1만4140㏊ 규모의 산림과 주택 등 590개 시설을 태웠다. 약 1년이 지났는데도 피해 처리도 다 끝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울진 일대 숲이 산불 이전 수준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최소 3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박상훈 기자

지난 6일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의 한 야산. 2.5ha(약 7500평) 규모의 산지에서 베어낸 나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작년 3월 울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타버린 나무들이었다. 껍질이 검게 변한 나무와 껍질이 벗겨져 새빨간 속살을 드러낸 나무가 뒤섞여 있었다. 현장에선 울진군이 의뢰한 업체가 쌓인 나무들을 크레인 장비로 집어 폐기물 수집 운반 차량에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에 수시로 운반 차량 2대가 교대로 드나들었다. 수거된 나무는 대부분 톱밥으로 쓰인다고 한다. 지금 당장 베어내지 않더라도 산불 피해를 입은 나무는 수액과 송진이 빠지며 서서히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작업반장 민경구씨는 “올해 1월에 이곳에서 벌목을 시작했고 3월 중 나무 운반을 마칠 계획”이라며 “광범위한 지역에 산불이 발생한 데다 산길에 사람과 작업 장비가 드나들 길도 뚫어야 해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작년 3월 4일 발생해 13일까지 계속된 울진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산불 피해 현장은 당시 상흔(傷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무들이 불에 타고 베여 지역 곳곳이 민둥산이 됐고, 울진의 명물인 송이버섯 자생지와 멸종 위기 동물인 산양의 서식지 역시 산불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울진 지역이 산불 이전의 숲을 회복하려면 최소 3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울진 산불은 1만4140ha 규모의 산림과 주택 등 590시설을 불태우고 213시간 만에 진화됐다. 피해액은 1356억원에 달했다. 산림청 통계상 역대 최장기간 지속된 산불이었다.

1년이 지난 산불 피해 현장에서는 벌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묘목을 심는 작업은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었다. 산림청과 울진군 등은 3월까지 벌채를 완료한 다음 본격적인 산림 생태 복원에 나설 계획이다. 산림청은 국유림, 울진군은 사유림을 각각 담당해 생태 복원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산림청은 국유림 부지에 3월 말부터 나무를 심어 숲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울진군 관계자는 “3~4월과 9~10월로 나누어 나무를 심는 등 조림 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송이버섯 농가도 울진 산불로 생계 수단을 잃었다. 울진은 금강송과 해송 등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국내 송이버섯 주산지다. 울진군산림조합에 따르면, 군민의 20%에 달하는 1만여 명이 송이 채취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하지만 울진 산불 당시 송이버섯 서식지인 북면·죽변면·금강송면 등이 모두 피해를 봤다. 이 때문에 송이 채취량은 산불 이후 크게 줄었다. 울진군산림조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울진에서 채취한 송이 생산량은 3227kg이다. 산불이 나기 전인 2021년 채취량 1만2159kg보다 약 73% 줄었다. 남동준 울진군산림조합장은 “송이 산지가 불에 타면 송이 포자 생성이 어려워져 최소 30년 이상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울진군은 송이 채취 농가를 선별해 지난해 575세대에 보상금 530억원을 지급했으며 이달 중 69억원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산양 서식지 역시 회복이 요원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울진 산불에서 피해를 입은 산양 서식지는 총 4353ha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따르면, 2019년 울진 지역에서 확인된 산양은 총 126마리였다. 그러나 산불 이후엔 산양들이 흩어져 개체 수를 다시 조사하고 있다. 산불 때문에 서식지가 피해를 입어 먹이가 부족해지면 산양은 다른 서식지로 이동한다고 한다. 이 경우 산양 간 생존 경쟁이 심화돼 개체 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동 과정에서 로드킬 등 사고를 당할 위험도 높다고 한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우동걸 박사는 “울진산양보전협의체를 운영해 산불 피해지에 산양 먹이를 공급하고, 개체를 구조하는 등 산양 보전에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산불 이재민은 1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컨테이너형 임시 조립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8일 기준으로 이재민 181가구 중 164가구가 여전히 조립주택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64가구 중 68가구는 주택 신축을 추진 중이지만 96가구는 형편상 신축을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면 신화2리 이재민 이모(88)씨는 “골방 같은 곳에 갇혀 답답하다”면서 “늙어서 집 없이 떠도는 것이 서럽다”고 말했다. 전기료와 가스비 인상 등도 이재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죽변면 화성2리 이재민 반분옥(74)씨는 “지난달 전기료가 28만원이 나왔다”면서 “난방 틀기가 무서워 가족끼리 벌벌 떨면서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불 피해는 한순간이지만 산림 회복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권춘근 박사는 “산불 피해를 입을 경우 숲 회복엔 30년, 포유류 회복엔 35년, 흙 속의 미생물 회복엔 100년이 걸린다”며 “산불 발생 원인 95%가 실화(失火)인 만큼 국민 모두가 산불 예방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등 정부 부처 5곳은 이날 ‘산불 방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산불 예방을 당부했다. 정부는 최근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자 3월 6일부터 4월 30일까지를 ‘산불 특별 대책 기간’으로 지정하고, 지난 6일부터 산불 경보도 ‘주의’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 발령했다.

/울진=이승규·권광순 기자